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10일 "양심과 신념에 기초한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특전사로 병역을 필한 대선 후보로서 그의 발언에 무게감과 영향력이 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공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20대 초반 층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과 함께 분단이라는 현실에 따른 우리나라의 안보를 고려하지 않은 공약이라는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같은 날 밤 진행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제2차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추운 날씨 속에 국군 장병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며 문 후보의 대체복무제 공약을 견제하는 듯한 발언으로 기조연설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권리 실현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안보 위협이라는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껏 1만7000여명(한국전쟁 이후)에 달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그들의 신념을 권리로서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는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보편성과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문 후보가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시행은 가능한 것일까? 즉, 대체복무제 시행 반대의 최대 명분인 '안보'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시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가 가능한 것일까?
군대, 양심적 병역거부, 그리고 대체복무제를 고민하게 된 계기
2010년의 일이다. 5월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나는 학군단 시험을 봤다. 그 땐 아버지께서 내가 육군 장교가 되기를 소망하셨고 나 또한 군대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마 3차 시험에 해당하는 면접시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6명쯤 되는 응시생들이 나란히 앉아 면접관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차례였다.
질문은 두 가지였다.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그리고 통일은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응시생 모두 "적은 북한이고 통일은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면접관들이 원하던 답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답에 너무나 큰 모순을 느꼈다. 어떻게 북한을 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지 논리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정말 의문스러웠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통일은 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을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 면접관들과 동급생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학군단에 합격했지만 간부들로부터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때 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국가관'이라는 게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위해 국민으로서 희생과 헌신을 다하려는 자세가 국가관일까,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국가관일까?
그것보다는 북한이 아무리 싫더라도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그들과 교류, 협력하고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희생과 헌신하려는 자세가 올바른 국가관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계속 머리에서 그 생각이 맴돌았다. 그렇게 군대라는 곳에 대한 일종의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고 학군단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군대와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권리 존중 차원 이면의 '분단' 문제 볼 줄 알아야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본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았다. 바로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이다. 즉, 이 문제는 개인의 양심과 권리 이면에 근본적으로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다른 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해결방안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현재의 한반도 긴장국면과 갈등해소,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쪽으로 국가 정책의 방향이 나아갈 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문제가 결국 징병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또한 이 징병제는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결코 모병제로 전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학군단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군대라는 곳에 일종의 모순을 발견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군대의 존립 자체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대는 정말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의 통일을 위해 북한과 교류, 협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군사적 도발이 있을 시에는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수준의 군사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많은 수의 군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우리나라는 이미 OECD 회원국 가운데 국토 면적에 비해 가장 많은 군인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실제 군인의 수와 군사력의 증강과 비례관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군대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 군사력의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고자 했던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현대사회는 외교전이다. 얼마나 평화체제를 잘 구축해놓느냐 즉, 전쟁이 일어날 소지를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느냐 하는 외교적 노력이 군사력 못지않게 필요한 시대이다.
대체복무제는 정말 안보에 위협이 될까?
그러나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의 안보가 흔들릴 수 있는 주장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바로 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인 안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법륜스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과연 진정한 안보란 무엇일까? 군사훈련을 늘리고 국방비의 예산을 늘리는 것만이 안보일까? 물론 이것도 안보를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한반도를 평화의 분위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이 갈등과 긴장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오히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증폭시킬 뿐이다. 2010년의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태가 그 적절한 예라고 생각한다.
이런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에서 북한이 도발을 하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그 이유는 우리의 대응으로 인해 저들이 더 큰 도발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판사판이기 때문에 덤빌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만 손해라는 것을 북한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그만큼 더 잃을 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와 달리 남북이 경제연합을 이루고, 문화적으로 교류하며, 최소한 북한의 어린이들이 굶어죽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북한 사회의 외교적 고립 상황을 해결해주는 등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혹여 저들이 도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때는 우리가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래봐야 국지전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쟁을 일으켜봐야 저들은 자신들만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한반도를 평화 분위기로 전환하는 것이 전쟁이 일어날 소지를 가장 궁극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축구에서 최고의 수비전술은 수비시스템을 어떻게 갖추는지가 아니다. 최고의 수비는 바로 공격이다. 상대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우리가 우리 발에 볼을 놓고 경기를 장악할 수 있는 공격이야말로 최고의 수비다. 그렇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할 때 승리할 수 있다. 이처럼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시행에 대한 문제도 우리나라의 안보와 평화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활동 단체에서 대체복무... 양심을 존중하며 안보를 지키는 방법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통일 활동 단체에서 대체복무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평화에 대한 신념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평화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해야 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평화에 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것일 뿐 국가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의무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헌법 4조에 명시된 것처럼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국가이고, 헌법 19조에 명시된 것처럼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국가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통일 활동 단체에서 대체복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헌법의 기본 가치를 동시에 존중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1차원적인 안보라면 한반도를 평화의 분위기로 전환하는 것은 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안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북한과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단체에서 대체복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들의 평화에 대한 신념을 존중하는 길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고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번 대선에서 투표한다는 것은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2012년 12월 현재까지 총 1만7000여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들은 결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병역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닥칠 많은 사회적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대선에서 투표한다는 것은 이들의 용기에 대한 응원이고, 그동안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받은 고통과 가슴앓이에 대한 위로이며, 다시는 내 또래의 청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사표시이다. 또한 1만7000여 명의 행동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내는 선택이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이미 5년 전에 열렸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대체복무제 시행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실제로 2009년부터 이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8년 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기치 아래 폐기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이 길을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꼭 투표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나라의 '안보' 때문에 개인의 '평화'를 잃어간 사람들을 위해 꼭 투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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