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조명이 더 따뜻하게 보인다.
이경모
지난 12월 1일. 나에게도 올해는 참 가파른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매장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봄부터 매일 물을 주며 정성껏 키워 온 율마(꽃말: 성실함 침착함) 열네 그루와 매장 앞 화단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 LED조명을 설치했다. 조명비용은 20만 원, 설치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렸다.
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트리를 만든 동안 내내 내 마음은 참 편하고 행복했다. 트리를 만들면서 올 한 해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트리에 마지막 한 달 남은 12월과 새해에 소망도 매달았다. 숨이 턱까지 차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내일부터 다가올 일들에 대해 나의 바람을 얘기한 것이다.
내 소망은 새해도 우리 가족을 비롯하여 매장을 찾아주신 고객 분들이 늘 건강하시고, 올해 졸업반인 딸 취업과 내년에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아들의 합격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힌 지 12일 만에 내 소망 하나가 이루어졌다.
"아빠, 감사합니다. 저 합격했어요. 회사에서 방금 전화 왔어요.""딸, 축하 축하한다. 정말 고생했다." 딸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이 젖어있다. 나도 눈물이 찔끔 난다. 딸이 지난해에 실습 나갔던 외국해운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가슴 먹먹한 소식이다.
딸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고3을 엄마 없이 잘 견뎌냈다. 그리고 해양대학교 등록 마지막 날 합격통지를 받았다. 시쳇말로 문 닫고 들어간 꼴찌 합격생이다. 그런데 세 학기 장학금을 타고 취업까지 했으니 팔불출이지만 내 딸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눈물 나게 감사하다. 바로 옆에 있었으면 "딸, 고생했다"며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난 가끔씩 세상은 불공평한 것처럼 느끼다가도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오지만 조금 지나면 상처는 남아있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바다는 잔잔해지니까 말이다. 내 마음에 소망을 담아서 따뜻한 불을 밝혔는데 그 소망에 딸이 제일 먼저 답을 해줬다. 오늘따라 매장 앞 크리스마스트리의 아름다운 불빛이 거리를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