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에게 받은 편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대 후반 백수가 '꼭 투표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

등록 2012.12.18 09:46수정 2013.05.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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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3년 5월 1일]

나는 대한민국의 20대 후반 백수다.

'심해어'처럼 사회의 밑바닥에서 조용히 활동하지만, 백수도 대선이라는 파도에 영향을 받는다. 최근 나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투표 독려 전화를 돌렸다. 카카오톡 프로필도 투표에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으로 바꿨다. 지난 주 있었던 외할아버지 제사에서는 "뭣하러 나 같은 사람까지 그런 걸"이라며 펄쩍 뛰는 외할머니를 열심히 설득했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신 할머니는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문재인 후보를 가리켜 '영감님'이라고 칭했다. 푸하~. 흰머리 때문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영감님인줄 아셨던 것이다.

투표하러 먼 길을 나서야 하는 시골 할머니도 아닌데, 가끔 투표 꼭 해야 하느냐는 사람을 만난다. 주로 또래인 20대 젊은이들이다. "백수가 무슨 대선에 관심이 그렇게 많니"라는 은근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꼭 할 일 없는 애들이 댓글 달면서 설친다"라거나 "가짜 평화를 좇지 말고 진짜 평화를 위해 네 먹고살 궁리나 해" 정도의 맥락으로 감춰진 뜻을 풀이해볼 수 있을 듯하다.

백수와 대통령 선거 사이가 멀 것 같지만 예상 외로 연결 고리가 있다. 시간이 많은 나는 얼마 전 양지바른 곳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 하나를 기억해냈다. 중학교 때 내 꿈은 무려 대통령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공무원' 같은 게 꿈인 애들은 별로 없었다. 대통령이 장래 희망으로 그렇게 튀는 시절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인데? 그래, 나는 나름 정치적인 소녀였지. 기억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김근태에게 받은 편지

그 기억 끝에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얼굴. 20대 젊은이들이, 적어도 20대 젊은이들만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김근태. 


여고생 시절, 나는 GT의 팬이었다. GT는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알파벳 머리글자를 딴 별칭이다. 영화 <남영동 1985>이 개봉하면서 최근 다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는 바로 그분. 정확한 계기가 뭐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생 때 나는 그분을 꽤나 열렬히 사모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우유도 '맛있는 우유 GT'만 마셨다. 교복 치마가 유난히 허리를 옥죄는 야간자율학습 시간,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는 글귀를 노트에 끼적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동의안이 한민공조속에 통과되자, 김근태 원내대표와 임종석 의원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옆에있던 정동영 의장과 김희선 의원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동의안이 한민공조속에 통과되자, 김근태 원내대표와 임종석 의원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옆에있던 정동영 의장과 김희선 의원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종호


막 고3이 된 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다. 그때 그분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아수라장 속에서 내 눈길은 일편단심 그분을 좇았다. 사방에서 욕설이 난무하고 단상에 구두가 날아갈 때, 그분은 구석에서 울고 계셨다. 아, 산전수전 다 겪은 그분의 눈물…….


아수라장이 지나간 뒤, 나는 그분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나름 활발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던 'GT클럽 희망'이라는 팬클럽 사이트에 공개서한을 띄운 것이다. 저는 고3 여고생입니다, 힘내세요, 당신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메인 화면에 커다랗게 그분의 답장이 걸려 있었다. 편지 잘 받았다, 고맙다, 편지를 읽고 나니 더 잘해야겠구나 싶어 어깨가 무거워진다……. 다정한 문장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줄줄 외고 다니던 그 답장의 전문은 기억에서 흐려졌지만, 마지막 문장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희양과 같은 청춘들의 힘으로 세상은 조금씩 바뀝니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 이렇게 주어졌다

<남영동 1985>를 봤다. 아니, 절반만 봤다. 절반은 도저히 볼 수가 없어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 용서와 복수, 그 헤아릴 수 없는 심연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겠다. 하지만 피부에 전해져오는 더없이 분명한 실감이 하나 있었다. 그분이 그때 저렇게 고문당해서 우리는 지금 고문당하지 않고 사는구나.

a  양손에 포승줄을 한 채 밝은 미소를 짓는 김근태

양손에 포승줄을 한 채 밝은 미소를 짓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1951년 영국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다리는 건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걸 바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고 한다. 그 말에 그분은 모멸과 분노를 삼켰다고 했다. 대학 시절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하다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7년 넘게 수배자로 쫓겨 다니는 동안, 기어이 장미꽃을 피워 내리라는 각오로 그 시간을 버텼을 것이다. 신군부 정권 아래 남영동에 끌려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워져서는 안 될 22일' 동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면서, 그분은 "무릎을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를 원한다"라고 부르짖었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는 그렇게 우리 손에 쥐어졌다. 그분이 젊은 시절 그런 일을 감내했기에, 그런 일을 감내한 많은 젊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20대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 여전히 많은 것이 엉망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젊음을 발산할 때 고문의 공포에서 자유롭다. 칠성판에 묶이는 것에 비해 투표하러 가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물며 당신이 20대라면, 젊은이라면, 김근태를 생각하면서 꼭 투표해야 한다. 내 코가 석자라고? 누구를 뽑은들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투표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액션이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2012년을 점령하라. 오로지 참여하는 자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투표 #20대 #김근태 #남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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