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자라면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서평]호림 윤장섭의 오롯한 문화재 사랑 들려주는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등록 2013.01.05 17:04수정 2013.01.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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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림,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겉표지

<호림,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겉표지 ⓒ 눌와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눌와 펴냄)를 읽으며 일제강점기의 간송 전형필 선생과 경주 교동의 최부자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진짜 부자는 많이 벌어 많이 가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진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인데, 책을 통해 만나는 호림 윤장섭 선생 또한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들과 같은 그런 진짜 부자이기 때문이다.


국권상실과 함께 사람들의 삶은 물론 이 땅의 수많은 것들이 위태롭기만 하던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 우리의 문화재들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고귀하다. 그런 헌신과 소명 덕분에 우리의 중요한 유물들이 그나마 외국으로 덜 넘어갔고, 덕분에 우리의 지난 역사를 어느 정도나마 추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수많은 유물들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그러나 60~70년대에도 이 안타까운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유물들이 해외로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애들 교육이나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자리를 잡았을 때였지요. 최순우, 황수영(기자 주: 두 사람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두 분이 찾아와서는 잡지를 내는 것을 좀 도와달라고 그래요. 그게 아주 가난한 잡지였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번 발간하는데 그때 돈으로 아마 몇천 원쯤 들었던가? 몇만 원도 아닐 거예요. 그 비용을 좀 지원해주쇼. 그래서 해준 거예요. 학자들이 돈이 없으니까"

윤 회장이 기억하는 대로 <고고미술>은 잡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허름한 출판물이었다. 본문은 등사판에 철필로 긁어서 인쇄하고 사진은 인화하여 풀로 붙이는 등 조악했다. 잡지는 그런 상태로 제본되어 나오고 있었다. 가난한 학술 잡지를 돕는데 큰돈이 드는 건 아니었다. 마침 사업도 자리를 잡아가던 때라 경제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기왕이면 부와 여유를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나눠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윤 회장은 선뜻 잡지의 발간 비용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에서

<고고미술>은 간송 전형필(1906~1962년)선생과 미술사학자 김원륭(1922~1993년) 교수 등, 우리 유물에 남다른 애정과 소명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고고미술 동인회'로 활동하면서 발간한 동인지다. 1960년부터 발행한 이 잡지는 고미술 학술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로 지난날 우리의 문화재 보존과 유물 연구 등에 지대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고고미술>은 발간비용이 없어 늘 쩔쩔매곤 했다고 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살아있을 때는 선생의 후원으로 어려움 없이 발행됐었다. 그러나 선생이 급성 신우염으로 돌아가신 후 후원자를 만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뜻은 좋지만 먹고 살기 워낙 빠듯했던 시절이라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고미술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런지라 잡지를 후원하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여하간 1969년 어느 날, 발행 비용을 고민하던 최순우, 황수영은 당시 성보실업 회장인 호림 윤장섭 선생을 찾아가 부탁을 하게 되고, 선뜻 후원 약속을 하게 된 것이다.


a  호림박물관 소장 <청자상감동채연당초용문병>(보물 제1022호)과 <백자주자>(국보 제281호)

호림박물관 소장 <청자상감동채연당초용문병>(보물 제1022호)과 <백자주자>(국보 제281호) ⓒ 호림박물관


"해외 반출 문화재는 일본에 있는 것만 6만 1000여 점이며, 모두 10만점이 넘는 유물이 고국 밖을 떠돌고 있다.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이 문화적 정통성을 유지하고 집단 기억을 공유하는 밑바탕이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반드시 되찾아와야 한다. 불법적으로 강탈당한 것은 정부가 협상을 통해 환수하고, 싼값에 팔려나간 유물은 돈을 주고 다시 사들여야 한다. 국가가 할 수 없다면 개인 수집가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에서

이를 시작으로 <고고미술> 동인들과의 각별하고 특별한 인연은 시작된다. 당시 최순우나 황수영, 김원륭, 진홍섭(1918~2010년, 당시 이화대학교 박물관 장) 등 <고고미술> 동인들은 우리의 문화재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고고미술>을 통해 이처럼 호소하곤 했고, 이들과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소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초, 청자 1점을 시작으로 기업인 윤장섭은 유물수집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윤장섭 개인의 어떤 성취감을 위한 그런 수집이 아니었다. 유물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그들 사이를 대책없이 떠돌거나, 외국으로 흘러나가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오롯한 소명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이제까지 그가 수집한 유물은 무려 1만 5천여 점(국보 8건(16점), 보물 46건(51점),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9건 포함) 후원 때문에 알게 된 최순우와 황수영, 진홍섭 등은  <고고미술>을 후원은 하지만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명만 우선 앞설 뿐, 우리 유물이나 고미술을 거의 모르는 윤 회장이 문화재를 사는데 조언이나 감정 등을 하는 등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호림박물관은 전문가와 문화재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다소 인지도가 낮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광고나 홍보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문화재를 한 점 더 구입하는 것이 낫다'는 호림선생의 의지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호림 선생은 언론에도 꺼리는 것을 지금까지 직접 당신을 인터뷰한 문화부기자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문화재를 사랑하고….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오윤선(호림박물관장) 발간사에서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는 이런 인연으로 시작되어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사립박물관으로 거듭나기까지, 호림 선생의 문화재 사랑과 그를 바탕으로 개관된 호림박물관 30년(2012년)을 알수 있는 책이다. 호림 선생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명과 남다른 애정을 바탕으로 개관된 호림박물관이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박물관이 되기까지를 들려준다.

a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제222호)와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보물 제1451호)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제222호)와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보물 제1451호) ⓒ 호림박물관


책은 호림 선생의 문화재 사랑을 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1974년 당시 서울 외곽의 집 20~40채를 살 수 있었던 4천만 원이란 엄청난 돈을 주고 산 <백자청화매죽문호>(국보 제222호), 현재 시가 20억 원에 달하는 <백자청화송매문호>를 비롯하여 <백자주자>(국보 제281호),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주자>(보물 제1451호), <금동탄생불>(보물 제808호) 등과 같은 유물들에 얽힌 이야기까지 들려줌으로써 우리 문화재 관련 다분한 지식들까지 갖게 한다.

이중 특히 감동 깊게 읽은 일화는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제211호)에 얽힌 사연이다.이 유물은 생전에 흘리듯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유언으로 남겨 돌려보낸 장석구란 한 재일교포 수집가와 그의 아들, 호림 윤장섭, 황수영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명이 한데 모아져 400여년을 해외에서 떠돌다 우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약탈해 갔을 거라고 추정하는 이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600여 년 전에 사경된 고려유물로 발견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런 유물 중 하나로 그 자료가치가 높다. 여하간 다시 한 번 펼쳐 읽었을 정도로 묵묵한 감동과 아름다운 여운으로 오래 기억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었으면 하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몇몇 문화재 전문가들이 국보나 보물 등과 같은 국가지정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30점을 선별해 들려주는 30꼭지의 유물 이야기도 나름 의미 있는 글들인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혀 모르고 볼 때와 이런 글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볼 때의 차이는 무척 크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돈은 물려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대신 공부는 하고 싶은 만큼 해준다고. 왜 그랬느냐. 글쎄요.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배웠으니까 배운 대로 실천을 해야겠다. 그렇게 결심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성보중고등학교를 세웠고, 유물을 모은 뒤에는 혼자 갖지 말고 공개해서 여러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는 그대로 해본 거지요. 좋은 의복을 입거나 좋은 음식 먹는 걸 삼가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한번 해본 거예요."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에서 호림 윤장섭

90세의 호림 선생은 예나 지금이나 이면지 한 장도 흘려버리지 않고 활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자택에서 혜화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이용해 소공동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1주일에 한 번(토요일) 호림박물관 신사 분관에 갈 때에도 강남구청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한 다음 신사 분관까지의 1km 남짓만 자가용을 이용한다고 한다.

재산을 자식들의 안위만을 위해 무턱대고 물려주지 않고 마땅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이런 정신과 몸에 밴 근검절약이 오늘날의 호림박물관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런지라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난날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았던 우리나라 경주 교동의 경주 최씨 부자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떠올랐던 것이고.

동시에 이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자임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의 몇몇 내로라하는 부자들 또한 생각났음도 말해야겠다. 이들처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 청춘과 몸을 아끼지 않는 노동자들까지 외면하는,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극한의 궁지로 내몰고 있는 그들 부자들 말이다. 

덧붙여, 호림박물관은 개관 30주년을 기념, 책과 같은 제목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보와 보물 등이 무려 54건이나 전시되는지라 우리 중요 문화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전시회라고 한다. 이 특별전은 2013년 4월 27일까지 열린다.
덧붙이는 글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ㅣ호림박물관 (지은이) | 눌와 | 2012-10-13ㅣ정가 18,000원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호림박물관 지음,
눌와, 2012


#호림박물관 #호림 윤장섭 #문화재 #간송 전형필 #경주 최씨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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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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