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배달 알바, 비행인가 노동인가?

인천지역 청소년, 교사, 노동단체 관계자 집단 토론

등록 2013.01.29 20:41수정 2013.01.2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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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 오후 7시 인천시청소년회관에서 열린 청소년 배달 아르바이트 관련 집담회 모습. ⓒ 장호영


"청소년들이 하는 배달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는 비행일까, 노동일까?"

청소년의 알바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하는지, 배달 알바는 어떤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25일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이날 오후 7시 인천시청소년회관에서 진행한 집담회에는 청소년과 특성화고등학교 교사, 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학생, 인하대 로스쿨 학생, 청소년 인권교육 강사단, 민주노총 인천본부ㆍ인천시청소년회관ㆍ천주교인천교구노동사목 관계자 등 25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먼저 지난해 초 문화방송(MBC) 시사매거진 2580에 보도된 '일하는 아이들' 영상을 보는 것으로 1부를 시작했다. 영상을 본 후 '알바보다 공부가 먼저다'라는 시각에 대해 토론했다.

한 청소년은 "청소년은 공부부터 먼저 해야 앞으로 사회에 나갔을 때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공부가 먼저다"라는 의견을 냈고, 다른 청소년은 "알바를 통해 미리 경험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어, 알바는 진로를 준비하는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청소년이 알바 대가(=임금)를 직접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각과 관련해서는 참가자 대부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일부는 성인보다 청소년의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주는 게 맞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청소년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차별)문제에서는 임금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왜 청소년에게는 임금 차이를 두는 게 맞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청소년을 부려먹기 쉽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 오토바이의 곡예운전은 폭주족의 연장이다'라는 시각과 관련해서 한 참가자는 "동네 치킨가게 앞에 저녁마다 배달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이 있었는데, 주택가 소음의 원인으로 지목받아 치킨가게가 옮겨가는 일이 있었다"며 "배달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의 행동은 반듯한 이미지보다는 비행적인 이미지로 많이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 청소년은 "다른 알바에 비해 시급이 높아서 배달 알바를 많이 한다"며 "한참 문제가 돼서 '30분 배달제'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사장들은 대신 10분 안에 다녀오라고 명령하고 있다. 개선된 점이 별로 없다. 이것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알바는 친구들과 먹고 놀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른들도 술 마시는 데 돈을 펑펑 쓰면서, 청소년들이 알바로 번 돈을 쓰는 쓰임새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네트워크 관계자는 실제 배달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계유지를 위해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오는 등 어른들의 돈 사용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청소년의 소비에 대해 먹고 놀려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달 대행 전문업체, 청소년 노동 착취 심각

2부는 영상 '일하는 아이들'에 나오는 배달 알바의 실태와 문제점을 감상한 뒤 네트워크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배달을 하루 평균 21건 하는데 1건 당 20분 미만이 걸린다. 배달 중 사고를 경험한 청소년은 절반이 넘었으며, 사고로 입원한 경우도 절반이 넘었다. 하지만, 안전교육을 받은 경우는 전무했고,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 사이로 다니는 이유는 자동차들의 위협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사고 후 치료비를 청소년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업주가 대부분이었다. 연소 근로자 고용 사업장의 77.3%는 노동법을 위반했다. 일하는 동안 근로감독관을 본적이 없고 학교에서 알바를 일탈의 시선으로 보며 노동인권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는 청소년들이 대다수였다.

토론 참가자들은 배달 알바의 문제가 되고 있는 '배달 대행'을 중심으로 토론했다. 배달 대행은 '아웃소싱(=기업의 내부 프로젝트나 제품의 생산ㆍ유통ㆍ용역 등을 외부의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 방식으로 청소년을 고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배달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사업주가 모집한 음식업체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한다. 음식업체에서 배달 대행업체에 배달을 요청하면, 사업주가 알바생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알바생은 음식업체에 음식 값에서 배달비(보통 2000원)를 뺀 나머지를 지급하고 배달 후 주문자에게 음식 값을 받는 형식이다.

문제는 대부분 배달 대행업체가 알바생에게 오토바이나 무전기를 빌려줘 대여료를 챙기고, 주유비 또한 알바생에게 전가시킨다는 데 있다. 사고가 나는 경우 치료비나 오토바이 수리비도 알바생에게 부담시킨다.

네트워크나 노동단체들은 배달 대행업체의 청소년 노동 착취가 심각하다며 고용노동부에 실태 조사와 위법 사례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고용관계가 아니라고 판결했고, 고용노동부 또한 배달 대행업체가 알바생을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토론에서도 "법원이 청소년도 사업자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해 고용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고용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어려워 청소년 노동 문제보다는 청소년의 문제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인천본부 관계자는 "배달 알바처럼 법적으로 개인사업자로 구분된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근로자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며 "청소년이라서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보다는 근로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배달 알바를 유해 사업으로 분류해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규제보다는 청소년이 노동인권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참가자들은 "청소년이 스스로 노동인권이나 노동법에 대해 알 수 있게 학교 교육과 이와 관련한 단체들의 홍보ㆍ상담이 지속돼야한다"며 "청소년의 노동은 좋지 않다는 어른들의 시각을 바꾸기 위한 노력과 청소년 고용 사업주들에 대한 교육 등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모으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배달 아르바이트 #배달 알바 #청소년 아르바이트 #인천시청소년회관 #청소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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