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수 다섯 병에 전해진 정
고상훈
"사물놀이 소리 듣고 멀리서 봤어요! 이거 드시고 하세요.""진짜 멋있어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이고 뭐고 화상 입지 않았는지 걱정이나 하고 있을 무렵, 한국 유학생이 우리에게 와 생수 다섯 병을 건넸다. 불운으로 가득한 이날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사물놀이를 듣고 멀리서 달려와 지켜보다 우리를 위해서 편의점에서 생수 다섯 병을 사왔단다. 타지에서 듣는 한국어도 한국인도 반가웠지만, 생수 다섯 병에 담긴 뜨거운 정이 정말 반가웠다. 버스킹의 문화에서처럼 동전은 아니었지만, 한국인만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었다. 엉덩이도 마음도 뜨거운 마틴 플레이스의 버스킹이었다. 엉덩이가 뜨거워 정신없는 통에 같이 사진 한 번을 못 찍은 것이 아직도 제일 안타깝다.
"저거 완전 독점 아니야?""저 아저씨는 밥도 안 먹나?"생수 다섯 병을 각자 한 병씩 벌컥 마시고 다시 힘을 내서 타운홀로 향했다. 앞서 오전에 기타 아저씨의 열정에 밀려 공연을 못 했던 아쉬움을 달래고 타운홀에서 공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타운홀에 도착한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 아저씨, 다른 팀도 아니고 그 긴 머리의 기타리스트 아저씨가 그 자리 그대로 기타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 4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말이다. 속상했다. 마지막 버스킹이었기 때문에 더 속상했다. 손에 들린 다섯 개의 빈 생수통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하지만 생업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을 아저씨를 생각하면 우리가 양보해야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사실, 버스킹은 보통 생업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시간도 이동도 애매했다. 더이상 다른 곳으로 가 버스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 우리의 버스킹이 조금은 어색하게 막을 내렸다.
다시 돌아온 타운홀, 4시간째 기타 공연하는 아저씨 "대단"

▲ 버스킹은 너무 피곤해
고상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샤워하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뿐했다. 사실, 버스킹을 한 번 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될 정도로 정말 힘들다. 또, 악기를 들고 다니자니 얼마나 무거운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항상 땀범벅에 가쁜 숨을 내쉰다. 세 번밖에 공연하지 않았지만, 한 명은 종아리에 근육이 뭉치고 또 다른 한 명은 발바닥에 물집이 한가득 잡힐 정도였다. 다른 한 명은 종일 무리한 덕에 코피를 쏟기도 한다. 이날만 해도 엉덩이를 델 뻔 하지 않나, 한 장소에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지 않나. 힘든 일투성이다.
그렇게 사서 고생(?)하면서도 우리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사람들이다. 힘든 버스킹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생수 다섯 병을 들고온 한국인 유학생부터 테일러 광장에서 반전을 만들어준 사진 기사 아저씨까지. 버스킹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이 사람들이 버스킹의 100%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색한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버스킹이었지만, 넉넉한 기분이 드는 이유도 아마 그 사람들 때문이진 않았을까?
"항상 공연하면, 우릴 반겨주고 우리의 짐을 덜어 가주는 그때 그 사람들이 있다. 동호는 골수팬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냥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다. 그때, 그 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 1월 4일 일기 중에서

▲ 그때 그 사람들
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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