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짜 호주 가긴 가는 거냐?"

[버스킹 여행기①] 장구, 북 가지고 호주로 떠나기

등록 2013.01.22 19:16수정 2013.01.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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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KERS의 입간판 ⓒ 고상훈


때는 2010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난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의 신입생이었다. 여러 가지 꿈이 많았다. 신입생이 되면 누구나가 꿈꾸는 그런 류의 꿈이었다. 그 꿈 중 하나가 동아리였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육대학에도 여러 동아리가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사랏골 소리사위'라는 교육대학 내에서는 꽤 큰 규모의 국악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 동아리는 과장을 조금 더해서 내 대학생활의 반을 차지했다. 학기 중은 물론이고 방학까지 반납하면서 공연 연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세 번의 방학을 반납하고 2011년 겨울이 되었다.

조금 억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방학마다 진행되는 살인적인 연습 스케줄(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에 방학 때는 동아리 연습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어떻게 하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학교 게시판에 '테마별 세계교육기행' 선발 공고가 올라온 사실을 알았다(우리 제주대학교에서는 매년 '테마별 세계교육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약 13개 팀의 세계교육기행을 지원해주고 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 다녀온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순간, 테마별 세계교육기행에 동아리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공연' 국악 거리 공연을 테마로 해서 지원하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동안 내가 동아리의 바친 시간들을 멋지게 보상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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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중인 BUSKERS ⓒ 고상훈


나와 같이 동아리에서 세 번의 방학을 반납한 두 명의 남자 친구들과 함께 팀이 꾸려졌다. 우리는 먼저, 선발 가능성과 거리 공연 가능성 두 가지를 고려해야했다. 탈락을 해서도 동아리를 이용하지 않아도 안 됐다. 그 결과 우리의 선택은, 호주였다. 작년 경쟁률도 양호했고 거리 공연에 대한 호주의 정책도 확실했다. 그렇게 우리는 BUSKERS(BUSKING은 거리 공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BUSKER는 거리 공연자라는 의미를 가진다)라는 이름으로 테마별 세계교육기행에 지원했고 2012년 여름, 다섯 번째 방학을 반납하고 있는 동아리 연습실에서 선발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진짜 호주가긴 가는 거냐?"
"몰라… 비행기 티켓은 있으니까 가긴 갈 걸?"
"우리는 도착하고 장구랑 북은 다 부서져 있으면 어떡해?"
"몰라… 잘 가길 바라야지 뭐."

2012년 12월 30일은 금방 찾아왔다. 호주로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여행사나 인솔자 없이 대학생인 우리가 계획하고 만든 여행이라 무서웠다. 호주에 제대로 도착은 할 수 있는지, 수화물로 실어 보낼 장구랑 북은 부서지지 않을지. 또, 거리 공연 허가는 받을 수 있을지 소리가 시끄럽다고 욕이나 먹지 않을 지 등. 불안 요소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또, 우리가 거리 공연하러 호주에 간다는 소식에 같은 동아리 친구인 두 명의 여자 친구들이 자비를 털어 우리 여행에 동참했는데 호주로 가는 비행기가 우리 세 명과 편이 달라 둘은 또 다른 불안에 떨고 있었다. 혹시나 남자 친구들이 없는 사이에 나쁜 일이라도 당할까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게 인천 공항 근처 찜질방에서 다섯 명 모두 불안이라는 놈과 함께 잠이 들었다. 모든 게 잘 풀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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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 고상훈


12월 31일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아침 비행기라 새벽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두 여자 친구들이 아침 비행기로 멜번으로 떠나고, 우리는 오후 한 시쯤 멜번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틀간의 제주-김포-인천-광저우-멜번-시드니로 이어지는 긴 이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을 떠난 지 약 17시간, 멜번의 건조하고 더운 공기가 나를 마주했다. 일단 호주에 다섯 명이 모두 도착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제 또 다른 위기가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장구와 북 양쪽 편의 동물 가죽 때문이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 한 블로그에서 호주는 동물성 제품에 대해서 규제가 심하다는 게시글을 보았던 것이 불안의 이유였다. 장구와 북을 반입하려면 신고는 물론이고 길게는 15일, 짧게는 7일 정도가 소요되는 가죽부분 검역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다. 우리 여행이 11일간의 일정인데 7일에서 15일이 검역으로 소요된다면 거리 공연은 둘째 치고 악기를 빌려준 우리 동아리에 배상을 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일단, 우리는 우리 다섯 명 중 한 명이 대표로 신고를 하기로 하고 검역을 받기로 했다. 역시나, 신고를 할 것이 없었던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심사대를 무리 없이 빠져나왔지만 대표로 신고를 한 친구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먼저 빠져 나온 우리는 그대로 반대편 출구로 향했다. 그렇게 1분이 지났나? 대표로 신고했던 친구가 당당히 장구와 북을 들고 나왔다. 기뻤지만 괜히 허탈했다. 정보의 바다 시대에서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한다는 뻔한 이야기가 스쳤다.

"야, 뭐래?"
"이거 음식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냥 'Just instrument'라고 했더니, 가라던데?"
"끝이야?"
"응."

끝이었다. 케이스를 열어 북과 장구의 상태를 살피니 멀쩡했다. 지나치게 걱정한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 덕분에 검역이 길어지면 멜번에서 시드니로 향하는 국내선을 제 시간에 탈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도 민망해졌다. 국내선 출발은 한 시쯤이었고 다소 싱거운(?) 검역이 끝난 지금은 열시였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시드니행 국내선 수속을 마치고 군것질도 하고 사진도 찍었지만 우리는 또 게이트에서 국내선 출발을 기다려야했다.

"오늘까지 우리 하는 꼴을 보니까 이거 편한 여행은 아닐 것 같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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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에서 시드니행 국내선을 기다리며 ⓒ 김하영


덧붙이는 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버스킹 #길거리 공연 #사물놀이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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