꽹과리 들고 시드니 거리로? 다리가 '후들후들'

[버스킹 여행기②] 거리 공연 허가증과 호된 신고식

등록 2013.01.25 17:18수정 2013.01.25 17:18
0
원고료로 응원

타운홀로 가는길 ⓒ 고상훈


드디어 버스킹(거리 공연) 허가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호주에서는 버스킹을 각 도시 타운홀에 신청하면 정해진 몇 개의 장소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대신, 허가 없이 버스킹을 하면 엄격하게 처벌한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가방 안에 꽹과리 하나 상모 하나를 넣고선 시드니 타운홀로 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청이다. 시드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계탑도 있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도 많다.

갑자기 멀리서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버스킹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기타 소리를 따라 냅다 달린 그곳에는 한 기타리스트가 의자 하나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긴 머리 휘날리는 이 아저씨, 보통 실력이 아니다.


긴 머리 휘날리며 ⓒ 고상훈


그런데 이 아저씨, 이렇게 기타를 잘 치는 아저씨 곁에 관객이 몇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작은 공연장을 그냥 지나치기만 한다. 눈길 한 번 안 준다.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멜로디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시끄럽기만 한 우리 국악도 이렇게 외면당하는 건 아닐까? 하긴, 버스킹 정책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이 도시 사람들의 듣는 귀와 보는 눈도 높아져 있겠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아... 우리 어떡하지? 할 수 있을까?"
"그냥 지나칠 것 같아... 솔직히 처음 보면 '뭐야?' 하지 않을까?"

일단, 버스킹 허가를 받으러 가자. 허가 먼저 받고 걱정하자. 관객은 그렇다 쳐도 소리 때문에 아예 허가를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타운홀로 향했다. 전날 밤 연습했던 우리 국악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영어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혔다. 번호표를 뽑고 여권과 우리 음악에 대한 설명과 내 신분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 버스킹 신청서를 내밀었다. 말없이 직원은 열심이다. 내 머릿속은 언제 꽹과리를 꺼내서 보여줘야 할지 소리 크기에 대해서 또, 우리 국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복잡하다.

시드니가 발급하는 버스킹 허가증 ⓒ 고상훈


그런데, 옆에 나보다 먼저 번호표를 뽑은 친구가 멀리서 버스킹 허가증을 머리 위로 흔든다. 또, 우리의 괜한 걱정에 민망함이 몰려든다. 그렇다.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드니 버스킹 허가증은 간단한 신청으로 이루어졌다. 오래 걸리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간단한 신청서 작성과 사진 촬영을 하고 나니 금방 버스킹 허가증이 나왔다. 복잡해진 머리가 하얗게 번졌다.

마지막 친구까지 버스킹 허가증이 나왔다. 카드를 만들어주는 기계가 고장난 탓에 조금 길어졌지만 애초에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고 들어선 곳이라 괜히 시간을 번 것 같아 좋았다. 카드에는 내 얼굴과 이름 그리고 'Busking Permit, CITY OF SYDNEY'가 분명히 적혀 있다. 시드니라는 도시가 우리를 인정해줬다는 기분에 또, 그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국악 거리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기분에 어깨에는 괜히 힘이 들어가고 마음은 한 근 더 무거워졌다.


나한테 집중하라고! ⓒ 고상훈


"이게 바로 버스킹 신고식이지!"

버스킹 허가증을 담아 훨씬 무거워진 지갑을 들고 나온 우리의 귀에 다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댄스팀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몰려들어 있는 걸 보니 버스킹으로 이미 꽤나 유명한 팀인 듯싶었다. 아까 기타를 치던 아저씨와 같은 장소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버스킹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킹 허가가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어 시간을 번 우리도 좋은 자리를 잡고 보기로 했다. 자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열정적이고 신나는 춤에 모든 사람들이 열광했다. 버스킹을 즐기고 리드할 줄 아는 팀이었다.

각자 춤 개인기를 신나게 보여주더니 이내 관객들을 둘러본다. 관객을 자신의 무대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 워낙 사람이 많아 '설마 나를...?'이라고 방심한 순간 내 손목을 잡아챘다. 호돼도 너무 호된 버스킹 신고식이 될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해서 무대로 끌려나온 다섯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음악을 끄더니 이 팀의 리더로 보이는 친구가 나에게 손짓했다. 앞으로 나오란다. 괜히 떨렸다. 돌아보니 나를 보고 있는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은 좋다고 실실댄다.

play

시드니에서의 버스킹 신고식 ⓒ 강진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춤을 따라하는 것.(물론, 춤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재미난 동작을 따라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버스킹 신고식이라고 생각하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더 과장해서 따라했다. 이런 내 모습에 많은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폭풍 같았던 버스킹 신고식이 끝이 나고 그들의 모자에 동전을 던졌다. 여기 호주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잘 봤다'는 의미로 돈을 넣는다. 버스킹 용어로 Donation이라고 하는데 그 돈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준 버스킹 팀에 대해서 예의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도네이션 문화가 얼마나 활발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나 역시 나에게 즐겁고 호된 버스킹 신고식을 치러준 그들의 공연에 '가치' 있는 예의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 호주의 동전을 던지려 모자를 보니 이 팀, 지폐도 꽤나 많이 받았다. 갑자기 또,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인다. 돌아서 다른 친구들 표정을 보고 나니 내 생각과 그다지 다른 생각이 아닌 듯싶었다.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 또다시 무겁고 걱정되는 신고식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이들처럼 아니 이들 반만큼이라도 이렇게 열정적이고 멋있게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회의를 했다. 당장 내일부터 진행될 우리의 버스킹을 어느 장소에서 할지, 몇 시에 할지 또 누가 어떤 악기를 칠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회의 중간 중간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이 이런 질문을 계속 한다.

"우리 진짜 해? 내일부터 하는 거 맞지...?"

허가증 받고 돌아가는 무거운 발걸음 ⓒ 고상훈


덧붙이는 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사랏골 소리사위 26기 상훈, 행문, 동호, 하영, 진실 다섯 명이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을 들고 호주로 떠난 버스킹 여행 이야기입니다.
#버스킹 #길거리 공연 #사물놀이 #호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4. 4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5. 5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