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한 땅에 머리 대고 오열... "나를 용서해다오"

[현장] 용산참사 석방자 4명, 숨진 희생자 묘역 참배

등록 2013.02.01 15:30수정 2013.02.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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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열하는 용산참사 석방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는 가운데, 김성환씨가 고 윤용헌씨 묘 앞에 엎드려 오열하고 있다.

오열하는 용산참사 석방자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는 가운데, 김성환씨가 고 윤용헌씨 묘 앞에 엎드려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a 석방 후 아버지 묘소 찾은 용산철거민 이충연 이충연씨가 부인 정영신씨와 함께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석방 후 아버지 묘소 찾은 용산철거민 이충연 이충연씨가 부인 정영신씨와 함께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소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그날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망루에) 같이 올라가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텐데…. 나를 용서해다오."

고 이성수씨에게 용서를 구하는 용산 철거민 김성환(57)씨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아침부터 내린 비와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이 뒤섞여 질퍽해진 땅. 머리를 대고 큰절을 올리던 김씨는 한참을 흐느끼며 일어나지 못했다.

2009년 10월 용산참사 당시 망루 위에 올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로 구속, 1월 31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철거민 출소자 네 명이 당시 현장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묘역에 섰다.

2월 1일 오전 11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를 찾은 출소자 이충연(40), 김주환(49), 천주석(50), 김성환(57)씨는 숨진 철거민들의 무덤 앞에 차례로 헌화했다. 현장에는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70)씨 등 유가족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 관계자 등 20여 명이 함께 했다. 함께 출소한 김창수씨는 아내가 투병 중인 관계로 오지 못했다.

김성환씨 등 출소자 세 명이 희생자 무덤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거민 천주석(50)씨는 "이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얄팍한 사면이라도 받은 것"이라며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용산참사는 사람의 논리로 대해야 할 일을 자본의 논리로만 대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이걸 박근혜 정부가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희생자 고 이상림씨의 아들이기도 한 이충연씨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착잡할  뿐"이라며 "그 억울함을 풀어드릴 때까진 울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 묘역을 참배한 출소자들은 이어 고 이소선·전태일 열사, 박래군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집행위원장의 동생인 고 박래전 열사의 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희생자 분들에 죄스러운 마음 어떻게 씻을 수 있겠나"


a 석방 후 아버지 묘에 헌화하는 '용산참사' 이충연씨 이충연씨가 함께 남일당 망루에 올랐다가 사망한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에 헌화하고 있다.

석방 후 아버지 묘에 헌화하는 '용산참사' 이충연씨 이충연씨가 함께 남일당 망루에 올랐다가 사망한 아버지 이상림씨의 묘에 헌화하고 있다. ⓒ 권우성


a 용산참사 석방자들, 참사 희생자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용산참사 석방자들, 참사 희생자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권우성


경사진 곳에 위치한 모란공원은 아침부터 내린 비로 땅이 얼어 매우 미끄러웠다. 공원 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한 줄로 서서 천천히 걸어가야 했다. 출소자들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잡아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비에 젖은 천주석씨는 "그래도 독방에서 새는 물을 혼자 맞던 것보다는 낫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희생자 분들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평생 안고가야 할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분들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지만,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밝혀낼 수는 있을 겁니다. 그걸 위해 함께 노력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한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이원호 사무국장은 또한 나머지 철거민들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다. 그는 "형이 확정된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회 전 의장과 당시 추락해 부상을 입은 지석준, 김영근씨도 당연히 사면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용산참사 이후 4년이 지났는데 또 다시 철거민을 구속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는 앞으로도 계속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면과 진상규명을 요구할 예정이다.

a 용산참사 석방자들, 참사 희생자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용산참사 석방자들, 참사 희생자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가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철거민 5명(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권우성


a 용산참사 석방자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 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와 동료들이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생전에 용산참사 투쟁에 힘을 보태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용산참사 석방자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묘소 참배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용산철거민 참사 구속자 천주석, 김성환, 김주환, 이충연씨와 동료들이 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생전에 용산참사 투쟁에 힘을 보태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유성애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용산참사 #추모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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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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