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논층층이 계단처럼, 쌓아 올려진 모습이다.
곽동운
옛말에 벼농사는 '팔십팔(八十八)', 즉 88번의 손이 간다고 할 만큼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영농의 기계화로 말미암아 그 수고가 훨씬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벼농사는 막걸리와 줄담배를 떠올리게 하는 고된 작업이다.
벼농사는 그동안 우리 땅에서 농업의 근간으로 받들어져 왔다. 하지만 형편없는 식량 자급률과 그보다 더 형편없는 농협 수매가가 말해주듯 그 근간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 현상, 농촌 인구의 감소, 농업 생산성 저하 등. 이런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을 필자까지 나서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한 가지는 언급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여행 프리랜서이기에 그동안 많은 지역을 탐방해 왔고, 현지에 있는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에는 귀농하신 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귀농자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벼농사를 짓겠다는 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존부터 농촌을 지켜오던 분들은 물론 신규 진입을 원하는 분들도 벼농사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도시가 변해가듯, 농촌도 변해가기 마련이다.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아 농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 건 조선 후기부터였지만, 지금은 주곡의 개념부터가 완전히 바뀐 시대다. 탐관오리들이 놋그릇 하나까지도 수탈해 가던 시대는 역사책으로 존재할 뿐, 지금은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각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시대다.
그렇듯 변화의 물결은 농촌에도 불어 닥쳤고, 그 변화로 인해 벼농사 감소 추세는 더욱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변화의 추세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가천 다랭이논의 명승지 지정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농사를 짓던 땅을 명승지로 지정하여 보전해야 될 만큼 이제 벼농사는 그 입지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