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된 딸, '독립'을 선언하다

딸아이의 '경제적 독립 선언', 참 기특합니다

등록 2013.02.12 14:39수정 2013.02.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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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인독립선언식 지금 딸이 친척 앞에서, 특히 할아버지·할머니 영전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성인으로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내용이다. 딸의 등 뒤 의자에 부모님의 사진이 놓여 있다. 좀 전에 부모님의 추도식을 하고 있었다.

성인독립선언식 지금 딸이 친척 앞에서, 특히 할아버지·할머니 영전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성인으로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내용이다. 딸의 등 뒤 의자에 부모님의 사진이 놓여 있다. 좀 전에 부모님의 추도식을 하고 있었다. ⓒ 송상호


내 딸, 올해 스무 살이 됐다. 대학도 간다. 그동안 딸이 이십 평생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말이 있다. "넌 스무 살 되면 성인이고,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무 살이 된 딸. 어렸을 적 그런 이야기를 나로부터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던 딸.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딸. 요즘은 그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 특히 경제적 부분을 책임진다는 무게 말이다. 고교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딸은 그걸 실감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경험한 게다.

내 형제의 조카들 중 내 딸은 제일 맏이다. 한마디로 우리 집안에서 조카 서열 중 첫 번째로 성인이 되는 게다. 둘째 동생네 조카들도 이젠 모두 중학생, 막내 동생네 조카는 아직도 4세, 막둥이 아들은 이제 중학생이다. 삼형제 집안의 맏이로서 내 딸의 행위는 선례가 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 11일, 딸은 형제들 앞에서 성인독립선언식을 치렀다. 처갓집에 다녀온 동생네들 덕분에 설 다음 날에 이 행사가 치러진 것. 이날을 잡은 건 형제네 식구들이 다 모인다는 점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해마다 형제와 조카들이 치러온 부모님의 추도식도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축복 속에서 식을 치루는 게 의미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추도식을 먼저 했다. 사실 추도식 순서 안에 딸의 성인독립선언식을 넣었다. 드디어 딸의 선서가 거행됐다.

"성인독립선언문, 저 송하나는 2013년부터 어른이 됐기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로 했음을 친척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저의 이 길을 축복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2013년 2월 11일 송하나."


"누나 힘내! 응원할게 파이팅!"

a 추도식 사진은 작년에 우리 형제들과 조카들이 부모님 영전에서 추도식을 치르는 장면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안의 중요한 이벤트다.

추도식 사진은 작년에 우리 형제들과 조카들이 부모님 영전에서 추도식을 치르는 장면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안의 중요한 이벤트다. ⓒ 송상호


박수가 나왔다. 네살배기 조카부터 16세 조카까지. 두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나와 아내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네 살 조카의 박수가 우리 모두를 웃게 한다.


거기에 있는 10명(둘째 동생네 4명, 막내 동생네 3명, 우리집 3명)이 돌아가면서 각자 딸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각자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다 보니 진한 정이 오간다. 둘째 제수씨의 격려는 순간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지나온 20여 년 동안 조카와 쌓아왔던 정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딸보다 어린 조카들은 "누나 힘내! 응원할게 파이팅!"이라는 내용의 격려를 던진다.

사실 딸은 20세가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도 국립대학으로 원서를 넣었다. 모두 등록금이 싸기 때문이다. 경기도 권에 있는 국립대학 7곳을 골라 원서를 넣었다. 그것은 자신의 꿈인 디자인학과 진학이 이유다. 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해도 등록금이 비싸면 벅찰 건 분명하리라. 그래서 합격한 대학이 공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다.

a 부모님 사진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 한 장의 부모님 사진. 어머님이 돌아가 실 때 태풍 피해로 인해 집이 무너졌기에 우리 가족 사진이 없다. 다행히 막내 동생이 이 사진을 건져서 두고 두고 영정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모님 사진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 한 장의 부모님 사진. 어머님이 돌아가 실 때 태풍 피해로 인해 집이 무너졌기에 우리 가족 사진이 없다. 다행히 막내 동생이 이 사진을 건져서 두고 두고 영정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 송상호

아무리 그래도 대학 첫 등록금은 내주기로 했다. 이번에 대학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 이런 횡재가! 국가장학금 140여만 원과 성적우수장학금 50만 원까지. 등록금을 실제로 지불한 금액은 30만 원 정도. 나머지 차액인 190만 원은 딸의 독립 정착금으로 주기로 했다. 시골 농협조합원에게 주는 자녀대학입학 축하금 50만 원까지 합치면 약 240만 원의 돈이 된다.

딸은 이미 대학 생활 계획, 특히 경제적 자립 계획을 세워 논 상태다. 고교시절, 디자인과 단짝 친구와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다. 돌잔치에 들어가는 디자인과 돌잔치 설계를 해주는 비즈니스다.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요즘 딸아이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포장지를 블로그를 통해 판매하느라 바쁘다. 거기다가 대학 준비까지. 이런 자녀교육 이야기를 담은 내 책이 올 3월 중에 출간될 계획이다. 바로 '자녀독립만세'(삼인출판사)다.

하여튼 이런 딸을 내 형제들과 조카들이 축복해주고 있는 게다. 거기다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해마다 치루는 추도식엔 두 분의 사진을 우리들 앞에 둔다. 두 분을 모시고 대화하듯 우리는 추도식을 치르곤 했다.

맘이 짠하다. 이런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는 두 분이 오늘 따라 그립다. 살아계셨으면 당신들의 손녀가 이렇게 훌륭하게 독립하는 장면도 보실 텐데 말이다. 하지만, 고맙다. 딸의 독립을 축하해주는 동생네와 조카들이 있어 고맙다. 이런 독립을 맞이하는 딸이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축복을 받으며 독립한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늘에 계신 두 분의 미소가 느껴진다.

"이제 스무 살이 되는 딸아. 모든 면에서 서툰 딸아. 우리는 너를 믿는다. 이제 인생 앞으로 GO! GO!"

추도식·선언식, 이렇게 진행됐다
추도식순서
1. 묵념 - <세월이 가면> 노래들으면서 두 분에 대한 그리움 되새기기.
2. 노래 - 예수 사랑하심은(생전에 좋아하시던 찬송 같이 불러보기)
3. 두 분에게 드리는 말 - 송준영 (<아침이슬> 노래 들으면서, 손자가 두 분에게)
4. 두 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생전 고인들의 뜻을 다같이 따라하며 되새기기)
- 사람 집에 사람이 와야 한다.
- 이웃에게 인사하고 살아라.
- 나누며 베풀고 살아라.
5. 이름 한자로 말해보기 - 두 분의 이름으로 풀어보는 인생 되새겨 보기.
어머니 - 목숨 명, 착할 선 : 착한 인생으로 살아라(선한 기운).
아버지 - 봄 춘, 푸를 벽 : 푸른 봄처럼 살아라(즐기면서).
6. 감사의 말 - 인도자의 말을 다같이 따라하기
송춘벽 김명선 / 당신들이 있어 / 우리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7. 송하나의 성인독립선언문 낭독(20세 성인식)
8. 하나양에게 독립정착금 전달
9. 하나양 각오의 한마디와 어른들의 격려의 한마디
10.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제창
11. "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제창하며 서로 안아 주기
- 2013. 2. 11 설 명절에 즈음해 금광면 양지편 집에서

<성인독립선언문>
저 송하나는 2013년부터 어른이 되었기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로 하였음을 친척들 앞에서 선언합니다. 저의 이 길을 축복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2013년 2월 11일. 송하나.

#성인독립선언식 #추도식 #더아모의집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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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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