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안쓰는 '현직 기자', 여기 있었네

[서평] <달콤한 로그아웃> 독일 기자의 6개월 체험기

등록 2013.02.15 11:54수정 2013.02.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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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고, 땅끝마을과 섬까지 PC방이 없는 곳이 없다. 그 뿐인가. 이제는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됨으로써, 건물 밖을 벗어나더라도 우리는 늘 인터넷에 접속한 '로그인' 상태가 될 수 있다. 2013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손 안에서도 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로 지인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뉴스를 볼 수 있다. 10년 전에는 미처 짐작하기 힘들었던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다. 삶은 더욱 편리해졌고, 업무처리는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더욱 편리해졌다는 게 과연 더 행복해졌다는 뜻일까? 우리의 환경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하기 쉬워진 만큼, 그것은 또한 생활에서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외출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보유한 스마트폰 배터리 만큼의 자신감과 집중력을 겸비하고 있는 듯하다. 배터리 용량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불안함을 느끼지는 않나. 누구나 온라인에서 연락을 주고받고 삶을 이어가는 시대에서, 길거리 한복판에서 오프라인화 된다는 것은 곧 '고립'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잠시라도 인터넷을 이용하기 힘들어져도 불안해지는 요즘, 만약 '인터넷을 완전 차단하고 살기'를 목표로 잡는다면 어떨까?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말이다. 놀랍게도 그러한 도전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 있다. 바로 독일 신문 문예편집부 기자 알렉스 륄레의 이야기다.

6개월간 인터넷 없이 살기... 2주 만에 찾아온 '인터넷 금단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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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로그아웃>의 표지 ⓒ 나무위의책

글쓴이는 현직 기자이다. 하루에 수십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알렉스는 놀랍게도 6개월간 인터넷 없이 지내기로 결심한다. 바쁜 기자생활 와중에도 '인터넷 중독'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인터넷 없는 삶'을 체험하며 일기를 통해 적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출장을 갈 때에는 부모님의 '피처폰'을 빌리기로 하고, 평소에 쓰던 스마트폰을 대리점에 맡기고, 종이로 된 우편물을 주고받으며, 업무용 컴퓨터에서는 IT부서에 연락하여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을 모두 없애고,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여 부재중 설정을 하고, 지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계획의 실행을 알린다. 이메일이나 SNS 대신 집과 직장의 유선전화로 연락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처음 며칠간은 직장동료들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원시인처럼 살아가느냐', '계단을 이용하지 엘리베이터는 뭐하러 이용하냐'는 조롱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큰 난관이 아니었다. 진짜 고비는 인터넷을 끊은 지 2주 만에 극심해진 '금단 증상'이었다.

지금 내 앞에는 컴퓨터 화면이 놓여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언제든지 이 화면 넘어 영화처럼 화려하게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세상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은 단지 나를 향해 미소 짓는 하얀 백지에 불과하다. 그 너머 어디로도 헤엄쳐 갈 수 없는 종이 한 장 말이다(본문 중에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진동되는 '환각'에 시달리고, 잠깐이라도 트위터에 접속해보고 싶은 욕구가 밀려든다.

'인터넷'과 함께 사라진 '편리함' 그리고 되찾은 것은...

가장 심각한 것은, 글쓴이는 매일 기사를 써야하고 그를 위해 실시간으로 온갖 정보를 수집해야만 하는 기자라는 점이다. 그는 평소 스마트폰으로 쉽게 연락하던 취재원, 평론가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따로 적어놓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건·사고를 접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종이로 된 신문을 사고,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찾아야 했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 그가 '구글 검색'을 통해서 간단하게 해내던 일들이다.

편리하게 정보를 얻던 도구가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글쓴이는 처음에 매우 당황한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할 때 느끼던 불안함이 더욱 증폭된 것이다. 또한 인터넷을 멀리한 지 17일 째에 느끼는 '최악의 지루함' 역시도 그가 적응기에 느낀 불편함 중 하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몇 달이 지나면서 그가 되찾은 것은 더욱 길어진 하루다. 탑승객들은, 바깥의 풍경이 흘러가는 것만을 보고 열차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동안, '로그인' 되어 있는 상태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시간 패러독스'다. 인터넷 사용시간을 줄임으로써, 하루를 더욱 길게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알렉스는 '인터넷 금단증상'을 벗어난 뒤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아내나 자식들에게 "잠깐만 있어봐" 하고 말하거나 다른 일을 미루는 일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온라인 삶에 매달리느라 소홀히 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되찾았으며, 손편지를 비롯한 소소한 아날로그의 묘미 또한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본문에 실린 "인터넷 장기 사용의 가장 큰 폐해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 내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라는 프랑크 쉬어마허의 지적처럼, 인터넷에 쏟아지는 수많은 게시물들은 무차별적이고 쉴 틈이 없다. 필요 이상으로 인터넷을 오래 사용하는 사람이나 온라인 생활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긴 사람이라면, <달콤한 로그아웃>이 인용한 검색엔진 창시자의 조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라.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 에릭 슈미트(구글 창립자)
덧붙이는 글 <달콤한 로그아웃(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가)> 알렉스 륄레 씀, 김태정 역, 나무위의책 펴냄, 2013.01, 1만4000원

달콤한 로그아웃 - 인터넷은 우리를 어떻게 바보로 만드는가

알렉스 륄레 지음, 김태정 옮김,
나무위의책, 2013


#달콤한 로그아웃 #인터넷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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