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여원 투자했는데, 500만 원 받고 나가라니...

상가임대차보호법과 도시정비법에 발목 잡힌 마포 서교동 카페 12PM

등록 2013.03.01 17:37수정 2013.03.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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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대낮, 마포구 서교동 사거리에서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문제의 장소는 서교동 372-6 번지 빌딩 1층에 위치한 카페 12PM. 문제는 지난 2011년 9월 문을 연 카페 12PM이 개업 1년도 안 된 2012년 7월에 건물주로부터 건물이 재건축 된다며 9월 30일까지 건물을 비우라는 통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건물주는 같은 해 8월에 카페 12PM에 대하여 체불된 월세를 근거로 법원에 명도소송을 제기하였고, 같은 달 법원은 "재건축 예정인 부동산에 대하여 그 점유를 타인에게 이전하거나 또는 점유명의를 변경하지 못한다"는 집행관 명의의 고시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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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재건축 공시문 건물주가 2012년 5월 재건축 승인을 받았고 8월에는 법원명령으로 카페 12 PM 은 부동산 명의를 타인에게 넘길 수 없게 되었다. ⓒ 고영철


카페 12PM는 개업 직후 한 달 만에 인근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50% 수준으로 하락, 월세를 제때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최대 2기(1기는 30일)의 임대료를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건물주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2년간의 영업기간을 보장하지 않고도 명도소송을 통해 임차인의 가게를 강제로 철거할 수 있다. 현재 건물주는 카페 12PM에 대한 명도소송에서 월세체납을 근거로 승소했음을 들어 강제철거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카페 12PM의 주인 부부는 가게를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하여 초기 인테리어 비용과 보증금 일부를 회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건물 소유주가 명도소송을 제기하기 이전에 재건축 허가를 받음으로써 카페 12PM 주인부부가 가게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카페 12PM의 주인부부는 보증금의 잔액 여부에 관계없이 월세를 체납할 경우 상가임대차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법조항과 재건축이 확정된 건물은 기존 임차인이 타인에게 명의를 양도할 수 없다는 조항에 잇달아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 법대로라면 체납된 월세로 인해 보증금은 물론 카페를 개업하기 위해 들였던 초기 투자비용을 포함해 약 1억 3천만 원 가량을 잃고 가게마저 강제로 문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카페 12PM 주인 권구백씨와 김현주씨는 부동산 계약체결 당시 빌딩 재건축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최소한의 가게 이전 비용을 건물주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의 중재 협상에서 건물주인 김석철씨의 대리인으로 출석한 이향림씨가 제시한 보상금은 500만 원이었다.

이 금액은 카페 개업을 위해 소요된 보증금과 인테리어비용 그리고 이전 세입자에게 지불한 권리금의 합계 금액인 1억3천만 원의 5%를 조금 넘는 수준. 전세자금으로도 부족하여 소상공인 대출까지 받는 등 전 재산을 카페 창업에 투자한 이들 부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2월 27일 법원의 집달관이 명도집행을 위해 인부들을 동원, 강제철거에 나섰다. 이에 세입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전해들은 마포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관계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현장에 몰려들면서 1차 철거시도는 무산되었다.


1차 철거시도가 있었던 당시 현장에서는 40여명의 시민과 집달관 측에서 고용한 인부들이 맞서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현장에 파견된 법원 측 관계자를 통해 "30분 내에 철거용역이 투입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자칫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철거용역과 세입자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간의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을 통제해야 할 경찰병력이 대치가 시작된 지 한참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사전에 강제철거 사실을 인지했는지를 확인하고자 마포구 경비과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은 의무경찰은 "(담당) 계장이 자리에 없어 세부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고 개인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담당자와 언제 통화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한편 명도집행을 담당하는 법원 집달관은 강제철거 일정을 묻는 통화에서 "세입자의 딱한 사정은 충분히 들었지만 이미 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명도집행(을 위한 강제철거)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명도집행 일자는 세입자는 물론 누구에게도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밝혀 언제든지 강제철거가 시도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1차 철거시도 당시에 우려되었던 충돌사태가 언제든 재현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카페 12PM을 둘러싼 분쟁에서 주목할 사항은 건물주의 재건축 신청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재건축 허가가 나기 직전까지 약 5년간 서교동 건물에 입주하여 의상실을 운영했던 서아무개씨는 재건축 추진 여부를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입주하여 있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재건축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며 "재건축을 위해 2개월 안에 이사를 나가라는 통지를 받은 시점에서야 건물이 재건축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카페 12PM이 입주한 건물의 소유주이자 예술의 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로도 유명한 아키반도시건축연구원 김석철 대표와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전화가 연결된 김석철 대표 비서실에서는 "재건축 이야기가 나온 것은 세입자 입주 이전이 아니라 (카페 12PM의) 세입자가 이미 7개월 가량 월세를 연체한 시점에서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세입자가 주장하는) 재건축 계획이 있음에도 카페를 세입자로 받았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세입자의 재협상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인) 다른 세입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추가 협상에 나설) 계획은 없다"며 법원에서 나온 명도소송에 따라 건물에 대한 강제철거를 진행할 뜻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건물주 측이 법원에 제출한 명도소송 기소서류에 따르면 "피고는 2012.2.1부터 원고들에게 이 사건의 임대차계약에서 임대금과 관리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재건축 허가를 신청하기 불과 3개월 전부터 월세를 미납한 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으로 건물주가 제기한 명도소송의 원인이 월세체납이 아닌 재건축을 용이하게 진행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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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의 명도소송에 법원의 공판서류 중 일부 법원의 판결문 속 내용에 따르면 명도소송의 월세체불 기준 시점은 재건축 신청 3개월전인 2012년 2월이다. ⓒ 박수진(헤럴드경제)


한편 마포구 지역의 단일건물 재건축 인허가를 담당하는 마포구청 주택과 담당 공무원은 "(카페 12PM이 위치한) 마포구 서교동 372-6 번지 건물은 2012년 5월에 재건축이 신청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재건축 신청이 없었다"며 "(단일건물 재건축의 경우에는) 신청 후 허가까지 짧게는 1~2주에서 길게는 1개월 가량 소요된다"고 밝혔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건물주와 세입자간의 명도분쟁을 파악하고 있는지 묻자 "(주택과는) 재건축 신청시에 신청자가 건물과 대지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뿐 세입자 이주문제는 구청이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카페 12PM의 권구백 사장은 "7개월 연속으로 월세를 연체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2012년 5월에 재건축을 신청했다면 명도소송 서류에 나와있듯이 실질적으로 3개월 정도의 월세를 연체한 시점에서 재건축을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권씨는 마포구청에 "재건축을 사전 고지하지 않고 세입자를 받은 건물에서 재건축을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는 것에 대해 마포구청 현장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접수해 향후 마포구청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포구에 당사가 위치한 진보신당에서도 카페 12PM이 처한 상황에 우려를 표시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28일자 공식논평을 통해 "동절기에 장사가 안 되어 미납이 되었을 뿐이고, 전세금이 미납금의 배 이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용산참사 이후 수 많은 세입자 대책이 있었고, 홍대 앞 두리반 사건으로 재건축 사업의 문제점들이 그렇게 지적되었지만 버젓이 이런 '못된' 재건축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에 앞서 슬픔을 표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직접 취재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홍대 #재건축 #카페 #12PM #강제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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