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거실이야 찻집이야"

찻집하는 이 여성이 세상과 소통하는 법

등록 2013.03.09 18:35수정 2013.03.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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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해도 이렇게만 한다면 참 좋겠다.'


이게 내가 그녀를 만나고 온 소감이다. 안성 우남아파트 옆에서 찻집 하는 조종희씨. 남들은 입지조건 별로라는데, 왜 하필 거기서? 무엇보다 자신이 그 아파트에 산다. 장소 정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그 이유가 우선하였으리라. 그녀는 아이 셋과 남편이 있는 가정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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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희씨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차에 들어가는 레몬을 다듬다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여기 대부분의 차들은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 ⓒ 송상호


이 시대에 여성이 맞벌이를 한다는 거 녹록치 않다. 그것도 자녀를 셋이나 둔 여성이라면. 물론 종희씨의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라긴 했다. 아들 둘(5학년, 6학년)에 딸(중3) 하나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다. 그런 면에서 종희씨는 참 현명하다. 두 마리 토끼를 집근처 찻집에서 잡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퇴근 시간이 되니 그녀의 아이들이 드나든다. "엄마, 아빠가 차키 달래"란다. 그녀의 아이들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든다. 평소 거기서 손님의 필요만 아니라 자녀의 필요와 남편의 필요도 챙긴다는 이야기다.

손님들은 찻집 입구에 표시해 둔 글씨(크지 않은)를 세심하게 봐야 한다. 조그만 쿠션에다 새겨 놓은 글씨다. 앞엔 '문 열었어요'와 뒤엔 '문 닫았어요'가 새겨져 있다. 이 표시를 종종 사용한다. 남편이 퇴근하고 왔을 때, 잠시 밥 차려 주려고. 아이들이 집에 와서 급하게 뭔가를 요구할 때도. 그녀는 쿠션 하나로도 그렇게 세상과 소통한다.

자신의 집 거실을 찻집으로 옮겨와


이 찻집, 시작 동기부터 '가정스럽다'. 뭐라도 해야 할 상황에서 그녀가 생각해낸 기준, '내가 뭘 잘하지, 뭘 좋아하지'였다. 평소 자신의 집에 손님이 오는 걸 무척 좋아하는 종희씨. 다도를 7년씩이나 배운 것도 집에 찾아온 손님과 나누는 게 좋아서였다. 그녀는 손님이 집에 오면 뭐라도 챙겨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여성이다. 이웃이 '즐겨 찾기'하는 곳이 그 집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 거실을 여기로 옮겨 놓으면 되겠네'. 이게 바로 그녀의 창업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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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장식 여기의 실내 장식들은 일반 가정 거실과 비슷해보였다. 그릇을 유난히 좋아하는 주부가 거실에 장식해놓은 듯. ⓒ 송상호


10평 남짓한 공간의 인테리어도 여느 거실과 비슷하다. 여기서 파는 차는 거의 그녀가 직접 만든다. 자신이 만들 수 없는 것 빼놓고. 오미자차, 레몬차, 복분자차, 고구마와 단호박 라떼 등도 직접 만든다. 각종 전통차도 직접 덖거나 우려낸다.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서다.


다식도 항상 챙긴다. 집에서 만든 누룽지 등을. 잔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 빤히 아는 손님이라 가능하다. '어제 저 손님에게 저 잔을 줬으니, 오늘은 이 잔을 한 번 드려 볼까.' 이게 바로 그녀의 세심함의 결정체인 듯.

진심은 통했다. 그녀의 손님들이 언제부턴가 나눠먹으려고 찻집으로 막 나르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시골집에서 가져온 김치, 장아찌, 젓갈, 간장게장 등을. 그녀가 한 가지씩 종류를 말할 때마다 말이 가볍게 통통 튄다. 이런 말하는 그녀는 엄친아 아들을 둔 엄마가 자식 자랑 하듯 신나 보인다.

인근 주부들의 라이프사이클, 그대로 반영돼

이 찻집이 아파트 아줌마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웬만한 아파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여기가면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자녀들에 대한 정보다. 누구누구 집 아이가 피아노 대회 나가서 장려상 탄 거까지.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여기에 축척되다보니 자연스레 서로 상담도 된다. 무엇보다 세 아이를 키우는 그녀로선 상부상조가 따로 없다.

인근 주부들이 여기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건 그녀의 친절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들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추기 때문이다. 저녁 6시부터는 손님이 거의 없다. 왜? 바로 남편과 아이들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다. 주부가 밥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면 종희씨도 종종 밥하러 간다. 물론 '문 닫았어요'로 돌려놓고. 

'문 열었요가'가 내걸릴 시간이면 거짓말처럼 주부들이 하나둘 모여 든다. 저녁 10시가 넘으면 주부들의 나들이가 또 시작된다. 자녀들 재워놓고 짬난 시간이다. 이 찻집의 문 닫는 시간이 11시다. 그녀들을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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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다식 이 집 차엔 꼭 다식(누룽지와 과자)이 따라온다. 다도를 7년간 해오면서 터득한 '차 마시기'를 손님에게도 제공하는 게다. 이 집엔 커피도 정성스레 나온다. ⓒ 송상호


가게의 투명 유리창을 통해 그녀는 본다. 어느 집 아들이 미술학원 마치고 가는지를, 어느 집 아줌마가 헬스 갔다가 오는 길인지를. 주변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도 웬만하면 꿰고 있다.

여기엔 '충동출입'도 잦다. 계획하지 않고 눈에 보이니 즉석으로 구매하는 걸 충동구매라 한다면 말이다. 지나가다가 누구 엄마 있으니까 들어오는 경우다. 그녀가 열어놓은 투명 유리창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내 유리창은 투명한가. 청소를 하지 않아 여러 가지 얼룩으로 음침한가.'를 돌아보게 하는 그녀. 그녀는 오늘도 그 집에서 맛있는 차향을 가득히 날리며, 투명 창 앞으로 지나가는 철수 엄마와도 미소 인사를 나누고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7일 안성 우남아파트 앞에 자리한 조종희씨의 찻집에서 이루어졌다.
#찻집 #다도 #수다 #차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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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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