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대신 '개엄마' 선택한 사연 들어봤더니...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⑥] 17살에 창업에 뛰어든 임지아 대표

등록 2013.03.11 18:04수정 2013.03.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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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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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표 사업의 시발점이 된 애완견 아름이와 폭시, 그들은 가족이었다. ⓒ 김영숙


IMF 이후 우리나라에는 한동안 벤처 열풍이 불어 많은 젊은이들이 회사를 창업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최근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퇴직금을 가지고 창업하지만 열에 아홉은 망한다는 뉴스가 자주 들린다. 또한 동네 상가에 물건을 사러 가보면 개업한 지 일 년도 안 된 매장들이 업종을 바꾸는지 시끄럽게 공사하는 것도 자주 본다.

사회의 이런저런 사건들을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며 살아온 나에게 창업이란 매우 위험한 모험이란 생각이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안정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년 전 평범한 한 여중생이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고 창업에 뛰어들어 현재 애완용품 업계 전문가로, 제조업체 사장으로 열심히 자리매김하고 있다기에 그녀가 궁금해졌다.

17세에 창업하다

임지아 대표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키우고 있는 개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을 '개엄마'라고 했다. 그녀는 아기 때부터 강아지들과 사탕을 같이 빨아먹으며 함께 자랐다. 처음에 캠핑장을 열게 된 계기도 엄청 커버린 개를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 시작되었다.

"중3 말엔 온라인상으로 탐색만 했습니다. 개와 함께 묵을 수 있는 캠핑장을 하면 사람들이 올까 고민하다 가능할 것 같았고, 삼촌도 괜찮겠다고 해서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했죠. 고등학교 진학 안 하고 사업하겠다고."

학교와 집에서 이를 반겨줄 리 없었다. 그녀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학교에선 선생님께 따귀도 맞고, 가출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부모님 또한 강경했다. 어느 정도 반대는 예상했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같이 고민해줄줄 알았는데 한 번에 딱 잘라 거절해버리고 심하게 반대하자 점차 오기가 발동했다고 한다.

"왜 꼭 고등학교를 가야합니까? 중학교까지 다녔으면 대학으로 곧바로 넘어가도 문제 없습니다. 고등학교는 대학에서 원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한 양성소로 전락했습니다. 사회로 나오기 전에 보호받으면서 조직생활을 경험하는 등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키는 곳인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풍노도를 겪으며 혼란스럽던 어느 날 "힘들지?"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자신이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구나 싶어 부모님께 사업계획서를 보여드렸다. 더 구체적인 계획서를 만들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페이지 짜리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자립한 뒤 대학에 가겠다는 약속을 한 후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얻었다.

17살 미성년자가 사업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을 수 없어 삼촌이 운영하는 연수원부설로 매출집계를 잡아가며 했고, 강남에 있는 동물 병원을 혼자 다 돌며 홍보했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여름엔 의자에 앉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계속 뛰어다녔다. 다른 직원들은 안 바쁜데 어린 사장이 일을 다 한 것이다.

"사장이 자리에 맞게 일을 못하는구나 싶어서 바뀌고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누구 일 시키는 법, 명령과 권위에 대한 경계를 찾는 것 등 인터넷에서 CEO와 연관된 것 다 다운받고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2년간 캠프장을 운영하며 손님이 찾아와주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찾아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품개발을 시작했다. 빗자루질하듯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는 제품인 스쿠퍼를 개발하고 개인적으로 특허를 내기 위해 변리사를 찾아갔지만, 어리다고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2007년 제주 지식재산센터의 지원을 받아 특허를 등록하고 국제 특허까지 획득했다. 19살 때 일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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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표가 만든 스쿠퍼의 첫 시제품, 이후에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 김영숙


임 대표는 사업을 하며 위기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2009년 서울시 공원 스쿠퍼 납품건은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서울시에서 타사제품을 공원에 설치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날로 스쿠퍼와 관련자료를 가지고 공무원을 찾아가 특허받은 제품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때마침 타사 제품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면서 스쿠퍼에게 기회가 오고 첫 매출로 이어지는 감격을 누렸다.

사회는 그녀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업이 정착되기까지 나이가 어리고 고졸(17살에 창업을 한 뒤 추후 검정고시를 봤다고)이기에 겪었던 고충과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다들 내 뒤에 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많이 울고 세상도 싫었습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대출을 받으려는데 잘 진행되다가 경영자 자질부족이라고 막판에 부결됐습니다. 대학도 안 나오고 경력도 없는데 뭘보고 믿느냐는 식이었죠. 사업계획서를 가져가면 사람들이 안된다, 망한다는 말부터 합니다. 영업사원 없이 불가능하다. 50~60대 남자 사장도 못하는데 웃기지 마라. 관리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데 등등 온갖 구실을 찾아 거절합니다. 나중엔 화가 나서 구매의향서를 만들어 제주도 동물병원, 마트를 다 돌아다니며 사인 받아 제출했고, 그제야 신용보증기금 청년특례보증융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지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슬프고 의기소침해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자만하고 교만해졌겠지요.

작년에 지방 모 대학에서 청년 창업에 대한 강의를 한 적 있는데, 고졸이라고 강사료 10만원 주더라구요. 비행기 값이 얼만데…. 강의 못하겠다고 하면 건방지다고 안 좋은 소리도 하십니다."

그녀는 사업을 확장하여 해외법인을 만든 이후 일과 대학공부를 병행할 예정이다.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해 배우고 싶은데, 요즘은 경영에 관심이 많다. 일본과 미국에 스쿠퍼를 수출하고 있지만, 올해는 내수 위주로 영업을 강화하는데 주력하려 한다. 내수가 강화되어야 수출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한다. 청년 창업가로서 느끼는 현장의 여건은 어떤지 궁금했다.

"아직도 여건이 많이 안 좋습니다. 개척가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매출만 갖고 얘기하는 실적위주의 기업문화가 많은데, 순이익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를 받으면 수시로 실적보고 해야 하고 간섭을 많이 받습니다." 

대학이든 창업이든 스스로에게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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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에 있는 창고 한편에 마련된 멜로디펫 사무실, 그녀는 이곳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김영숙


"작년 초까지만 해도 청년창업에 대해 강의를 하면, 나를 특이한 외계인 보듯하고 당신은 돈 많아서 개 키우지, 우리는 돈 없어 하는 식의 반응이었는데, 작년 중순 이후부터 정부지원 받는 법부터 시작해서 창업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물어봅니다. 사람들 생각이 조금은 더 트이고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 대학보다는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선배로서, 청년 사장으로서 대학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대학 가기 전 고등학교 때쯤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성장통을 겪을 기회를 가져야합니다. 요즘 대학의 희소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배우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세상과 부딪히고 험한 일을 겪다보면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고 후회할 법도 한데 그녀는 후회한 적이 없고 지금 엄청 행복하다고 한다. 그동안 부모님도 학교로 돌아가길 자주 권했지만, 지금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인정해준다.

"사업한다고 그 분란을 일으키고 나왔는데 힘들 땐 혼자 삭이지 절대 돌아가지 못합니다. 벼랑 끝에 있는 것 같은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반대하는 길을 선택했기에 절대 지름길이 아니란 걸 알았지요. 그러나 지금 멈추면 낙오자가 된다. 이거 안되면 나는 죽는다라는 각오가 내 사업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젊어서 좋은 점은 겁이 없었다는 거죠."

요즘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주위 엄마들이 자주 하소연을 하는데, 이토록 딸을 강하게 키운 임 대표 엄마의 양육 비법이 있지 않을까?

"그냥 한 번쯤은 자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난 너 믿어'라고 해주던 말이 좋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도움이 많이 되어 당당하게 클 수 있었습니다. 사춘기 때 엄마랑 싸우면 어떻습니까? 대신 밖에 나가서 안 싸우면 되잖습니까?"

임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17살의 소녀가 10년 동안 사회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참으로 외롭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기회로 삼았고 이제 또래보다 더 강한 자생력으로 이 사회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서 26살 청년의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과 전문 사업가다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자 정부, 금융기관, 중소기업청 등 여러 곳에서 체계적인 지원으로 청년 창업에 힘을 실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중진공에서 지원하는 청년창업사관학교가 운영되고 있고, 중기청에서는 올해 사관학교형 창업선도대학을 선정하여 지원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원받기 위한 경쟁률이 10대 1이 넘고 대학생이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지원 대상자인 경우가 많아 창업에 있어서 차별과 편견이 아직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여성이고 고졸인 임 대표가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사회의 지원이 맞물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직 사회의 지원은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턱 없이 부족하고 임 대표 경우와 같이 불굴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만약 내 아이가 대학이 아닌 창업을 하겠다면 여전히 선뜻 허락하긴 힘들다.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여력이 없을 뿐더러 창업을 하며 겪는 어려움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특한 열혈청년 임 대표를 보면서 창업이 힘든 일이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013년 2월 20일과 2012년 4월19일, 두 번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고곰세 #임지아 #청년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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