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찾은 지상 최고의 직장

[서평] 박상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등록 2013.03.28 17:50수정 2013.03.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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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밥벌이가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취미처럼 일을 즐기면서 적당한 수익도 올릴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아성취나 자기만족보다는 가족의 부양과 금전적 수익을 쫒아 스트레스와 불만을 가득 안고 평생을 직장이란 쳇바퀴 속에 갇혀 산다. 마음의 평화, 삶의 여유를 퇴직 후로 유예시켜 놓은 채 매일 매일을 다람쥐처럼 살아가면서 행복을 꿈꾸는 것이 온당하며 가능한 일인가.

중년을 넘어선 직장인들은 매월 들어오는 고정수익을 떨쳐버리고 직장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을 두려워하게 된다. 새로이 맞게 될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동안 지켜온 삶의 궤적과, 함께 해야 할 가족들 때문에 그들은 자유와 꿈을 접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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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in Eden on Earth 부차트 가든의 한국인 정원사 이야기 ⓒ 임경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의 저자 박상현은 안정적인 직장, 그동안 쌓은 명예와 익숙함을 모두 뒤로 하고 평소에 꿈꾸던 '자연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일을 간절히 소망하며' 중년의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부차트 가든(The Butchart Gardens) 최초의 한국인 정원사가 되었다.

이 나라의 386세대로 태어나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 유학까지 다녀와 언론과 방송사에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40세가 되던 어느 가을날 이민을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꿈을 접지 않고 이민을 결행했기에 지금은 사계절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지상 최고의 직장을 얻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입사 5년차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숙련된 저자는 계절마다 변신하는 부차트 가든의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가며 우리에게 꽃과 나무를 하나씩 소개한다. 장미, 해바라기, 백합, 국화, 철쭉, 수선화처럼 익숙한 것부터 블루포피, 아뷰투스처럼 우리가 만나기 힘든 것들까지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에 대한 정보와 함께 정원사들이 식물을 심고 가꾸는 소소한 과정들을 흥미롭게 이야기해준다.

꽃과 나무가 가진 저마다의 특성과 모습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깨달은 것들, 이를 통해 반추한 삶과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고향에서 겪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전한다. 정원의 울타리로 쓰이는 측백나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꽃부터 뿌리까지 모두 주는 국화에서 장모님의 성품을, 자기애의 상징인 수선화에서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떠올리고, 토양의 성격에 따라 다른 색의 꽃을 피우는 수국을 닮은 어머니를, 백합 같은 한국의 친구들을 정원 곳곳의 예쁜 사진들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먼 이국에서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하며 인생의 소박한 가치를 찾아가는 저자로서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장미 한 송이, 철쭉 한 그루, 데이지 한 포기와 함께 써내려간 내 가슴속에 공존하며 살아 있는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이라고 말하며 평화로운 삶의 단상을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해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과의 만남은 정원사로서 덤으로 얻는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나이 마흔에 남의 나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난 그에게는 문화차이로 겪게 되는 불편과 실수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수용하고 적응해 나간다. 나이와 직함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인 동료들, 손수 만든 한국음식으로 그들과 친분을 쌓고 함께 즐기는 바다낚시, 봉사와 기부에 익숙한 문화,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웃들과의 관계 등이 사십 년 가까이 그가 한국에서 살면서 겪어온 경험과 기억들하고 상치되면서 이민의 행복을 더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모든 생명체에는 수명이 있다. 사람의 머리카락의 경우 남녀의 차이는 좀 있지만 3~5년이면 그 수명이 다 되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빠진다고 한다. 사람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100년을 살지 못한다. 건강수명은 그보다 훨씬 짧다. 우리는 모두 금세기 안에 죽게 된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명예라는 이름의 권세와 여유라는 이름의 물욕을 쫒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자살자는 1만5566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31.2명, 하루 평균 42.6명이 자살한 셈이다. 이 같은 자살률은 OECD 회원국 평균치인 12.8명의 2.4배에 이르는 것이다. 2003년 이후 8년째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제는 너무 아등바등 각박하고 삭박하게 살지 말자. 어린아이들을 조기교육, 선행학습이란 명목으로 학원으로 그만 내몰고, 청소년들을 이제 그만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자. 필살기 보다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경쟁보다는 화합하는 사회를 만들자.

우리 모두 부차트 가든 정원사는 되지 못하더라도 이 봄에 베란다에 수선화 한그루, 팬지 한송이 정도는 기를 수 있는 마음의 화단을 가꾸며 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 부차트 가든의 한국인 정원사 이야기

박상현 지음,
샘터사, 2012


#부차트 가든 #정원사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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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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