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음주단속 하는데 에로영화 찍어?"

[공모-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아내는 자동차와 대화도 합니다

등록 2013.04.06 11:49수정 2013.04.0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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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로 인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애마를 소개합니다.

나로 인해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애마를 소개합니다. ⓒ 신광태


'쾅!'


굉음과 함께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전쟁이리도 난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차 안이다. 부리나케 차 밖으로 나와 보니 가관도 아니다.

나의 애마는 가드레일 위에 올려진 상태. 금방이라도 파로호에 빠질 기세다. 다시 차량 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에어백이 다 터져있다. 화약 냄새의 원인이 이거였구나! 

그놈의 메기가 문제였다

지난해 화천군 어느 산골마을 이장으로부터 밤 메기낚시 제안을 받았다. 긴 나뭇가지에 낚시 바늘을 연결하고 커다란 산 지렁이를 달아 바위틈에 밀어 넣으면 커다란 메기 달려 나온다.

그렇게 잡은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 놓고 수다를 떨다보니 오전 3시 가까이 된 듯했다. 자고가라는 이장님의 성의를 무시한 게 문제였다. 늘 다니던 길이라 눈을 감고도 운전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졸면서 액셀을 밟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애마가 저렇게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애마가 가드레일 위에 올라가 있다니... 깊은 산속 오전 3시가 넘은 시각. 구원을 요청할 차량도 없다. 초췌한 몰골로 도로 한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오전 5시께 카센터에 구조 요청을 했다.

"이제부터 차량 압수다!"


300만 원이 넘는 차량 수리비를 통보받던 날, 아내는 차 키를 달라고 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빼앗았다. 졸면서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돈으로 산 차인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키를 빼앗겼다.

음주단속기에 '하~'... 경찰관은 '폭소'

"어! 왜 이렇게 터널이 어둡지?"

터널을 지날 때 운전 중인 아내는 분명히 터널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캄캄한 게 이상해 옆에 탄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명쾌한 답을 내놨다. "엄마, 선글라스 벗어."

아내는 초보운전자다. 운전면허를 1980년대 후반에 땄으니까, 나보다 대선배다. 그런데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운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면허증이 무슨 가보인양 장롱 속에 깊숙이 보관해뒀다가 5년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경미한 사고 한 번 낸 적이 없다. 모범운전자다.

어느 날 아내는 음주 단속에 걸렸다.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괜히 경찰관 앞에서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긴장하는 아내다.

"자, 여기에 대고 불어보세요."

경찰의 말에 아내는 '하' 하고 불었다. 옆에 탄 아들이 한마디 했다.

"엄마, 무슨 에로영화 찍어? '하'가 뭐야, '후' 하고 불어야지."

아들의 말 한마디에 경찰관도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애착 때문일까,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a  밤새 내린 눈을 뒤집에 쓰고 있는 나의 애마가 애처롭다.

밤새 내린 눈을 뒤집에 쓰고 있는 나의 애마가 애처롭다. ⓒ 신광태


"잘 잤니? 밤새 춥진 않았고?"

아내는 차와 대화도 한다. 겨울철이면 스노우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시기에 맞춰 미션오일과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것도 아내가 한다. 내게 기회를 주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내 애마는 고장이 난 적이 없다. 그렇게 아내가 애지중지 하는 차를 졸음 운전 때문에 망가뜨려 왔으니... 차 키를 빼앗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애마는 아반테 2005년식이다. 유독 내 물건에 집착을 하는 성격 탓인지 아내처럼 차와 대화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애착이 간다.

어느 날 겨울밤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앨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함박눈이 탐스럽게도 내리고 있었다. 차량을 쭉 둘러보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기절할 뻔했다. 내가 방에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분명히 여기 서 있는데 또 다른 내가 자고 있는 게다.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꼈고 아침에야 눈을 떴다.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밖에 눈 오니?"
"글세 어제 저녁만 해도 날씨가 맑았었는데, 이상하게 눈이 많이 왔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내에게 '눈이 왔는지'를 묻자 아내는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고 했다. 또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지난 새벽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아침상 앞에서 내가 겪은 일을 가족들에게 말했다.

"아빠 그거 유체이탈이라고 하는 거래. 근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들의 말은 뭔가에 심하게 집착을 하게 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내 애마를 상처 입힌 것에 대한 미안함이 무의식 중에 그렇게 표출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 다음에 차 바꿀 때 뭘로 바꿀까?"
"그 이야기는 그때 가서 하자"


어차피 어느 정도의 기간이 경과하면 바꿀 차인데 아내의 코가 빨개진다. 눈물을 흘릴 전조다. 수습이 필요했다.

"그래, 바꾸긴 뭘 바꿔. 커다란 창고하나 사서 이 차 잘 모셔두고 새 차 사면되지."
덧붙이는 글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일 응모글 입니다.
#나의 애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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