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문 여는 술집이 지천에... 한국은 천국!

[말라가 교환학생 적응분투기⑥] 피소, 그리고 파티

등록 2013.04.24 12:05수정 2013.04.2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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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까떼드랄(Catedral)이 보이는 센트로 알라메다 거리 근처에 집을 잡았다.

까떼드랄(Catedral)이 보이는 센트로 알라메다 거리 근처에 집을 잡았다. ⓒ 김정현


지난주 화요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9시. 내일은 아침 8시 반 실험수업이라 일찍 일어나야 할 날이다. 그런데 벨이 울린다. 왁자지껄 사람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올라! 께 딸?(¡Hola! ¿Que tál?, 안녕, 잘 지내?)"

'아휴. 오늘도 한바탕 벌이겠네. 자기는 글렀다' 생각하면서 방 밖으로 나가서 말한다.

"올라~! 엔깐따도(Encantado, 만나서 반가워)!"

교환학생들의 안식처, 공동 생활공간 피소(piso, "flat"이라고도 부름)는 카멜레온 같다. 낮에는 학생들이 밥을 먹고 빨래를 하는 생활공간이다가도 밤에는 파티의 무대로 바뀌곤 한다. 낮에 아파트에서 뛰어만 다녀도 주민신고가 들어오는 사회에서 살던 내겐 문화충격이다.

2월 말, 처음 살던 집을 떠나 시내중심 센트로(Centro) 한복판, 알라메다 거리(Alameda Principal) 바로 뒤로 피소를 옮겼다. 페이스북 '말라가 한인회' 페이지의 가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파티와 축제를 즐기고 싶다면 센트로에 집을 잡으세요.

처음 내겐 그저 '아 문화를 느끼기 참 편하겠다!'라는 말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살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여러 의미가 녹아 있는 문장이라는 걸 말이다.


a  평소엔 조용한 집이 파티의 무대로 바뀐다

평소엔 조용한 집이 파티의 무대로 바뀐다 ⓒ 김정현


이사 온 첫 주. 거실에서 꼼빠녜로(룸메이트, Compañero)들이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했다. 뭐 뺄 게 있다고. 거기다 공짜 술인데. 기꺼이 좋다고 했다. 게으른 집 중개업자 때문에 불이 나간 채로 있는 집. 갓등을 켜고, 칠흑같이 어두운 응접실에서 "Alhambra(알함브라, 그라나다의 유명한 이슬람 고궁)" 맥주 닷 병을 땄다. 나를 포함해 다섯이 살고 있고, 그날은 여자 둘, 남자 하나와 다른 집에 사는 친구 녀석이 함께했다.

꽤 큰 편인 나만큼 키가 커서 날 놀라게 한 여자 꼼빠녜로 필리스(Phyllis)는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몸이 다부지고 머리를 시원하게 민 흑인 녀석은 에드(Ed). 그와는 정반대로 머리를 땋고 마른 흑인 여자 꼼빠녜라(Compañera)는 에바(Eva). 그리고 다른 집에서 온 백인 친구 녀석은 필립(Philps).

셋 다 캐나다 퀘백(프랑스 식민지 전통으로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에서 와서 그런지 영어보다 불어를 더 많이 했다. 필리스와 내가 "왜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냐. 좀 이해되게 해 봐라"고 주절대면 역으로 스페인어로 대화해서 나를 당황시키곤 한다.

a  맨 오른쪽이 에드, 오른쪽 세번째가 필리스. 그리고 다른 집에 사는 교환학생 친구들. 맨 왼쪽이 나.

맨 오른쪽이 에드, 오른쪽 세번째가 필리스. 그리고 다른 집에 사는 교환학생 친구들. 맨 왼쪽이 나. ⓒ 김정현


대략 자기소개를 하고 안주로 우리가 사는 집을 까고 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이었다.

"갓등 하나만 켜고 있으니 짜증난다."
"그러게. 내일까지 등 안 갈아주면 그냥 갈고 돈 받아야겠어."
"책상도 작아! 여기서 다섯이 술을 어떻게 먹으라고."
"이케아(IKEA, 가구전문 대형매장) 가서 사고 돈 모으자."


이곳의 피소는 법망을 피해 변칙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그래서 계약금도 집주인이 아닌 중개인이 월말마다 선불로 직접 걷으러 다녔다. 그래서인지 중개인이 계약서도 안 써주려 했지만, 돈 문제만은 철저하라고 배웠지 않는가. 난 기어이 사인이 있는 종이쪽지 하나를 받아냈다.

내 중개인은 2월 초와 같은 그 사람, 레인(Reyn)이다. 달마다 보는 그는 말라가의 모든 열쇠를 다 갖고 있는 듯했다. 처음엔 인상이 좋았지만, 점차 믿질 못할 지경이다. 한 달 뒤 우리가 직접 등을 갈았지만, 그는 바쁘다면서 아직도 돈을 안 줬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중개인을 욕하는 게 주요한 일상이 됐다.

a  응접실(거실) 전경. 꽤 넓다.

응접실(거실) 전경. 꽤 넓다. ⓒ 김정현


"그래도 뭐, 나쁘진 않아. 집 앞엔 메르까도(Mercado, 말라가 재래시장)가 있고, 바로 앞에 학교 가는 정류장이 있으니까."
"그래 뭐, 3대륙의 모든 사람이 여기 있어! 오늘은 한국음식도 먹었잖아."
"근데 세시다. 디스코떼까(Discoteca, 한국으로 치면 '클럽') 가자."
"그래 가자. 안토니오(내 스페인 이름) 너도 갈래?"


이런. 졸려 죽겠는데 클럽이라니! "기사 마감이 있다"고 피해가면서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속으론 '여기는 술집도 없나. 술집이라면 한번 밤도 새보겠는데' 하면서. 사실, 그럴 수도 없었다. 그땐 몰랐는데 이곳에서 대부분 술집은 밤 12시면 문을 닫는다. 오후 9시에 해가 겨우 지는데도 말이다.

알아보니, 말라가는 시 조례에 따라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술을 팔지 못하게 되어 있다. 12시나 그 이후까지 여는 술집은 법을 피해 팔고 있던 것이다. 다른 한국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인데, 한국에선 밤새 문을 여는 술집이 지천에 깔렸다고 하니 외국 친구가 "그런 천국이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a  이 술병을 보라. 파티의 흔적

이 술병을 보라. 파티의 흔적 ⓒ 김정현

다시 지난주 화요일로 돌아가자. 뭐, 피곤하긴 하지만 집에서 노는 건 언제나 보기 좋다. 나도 가끔 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좀 정도가 지나치다. 새벽 3시가 됐는데 거실에서 애들이 뛴다. 옆집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건 아닐까?

한번은 초대를 받아 다른 외국인 피소에서 하는 파티에 간 적이 있었다. 5명 남짓 사는 집에 50명이 왔다. 그때는 새벽 2시였고, 우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실컷 떠들었다. 잠시 후 경찰이 왔다. 주민 신고로 경찰이 온 것이었다. 다행히 벌금이나 구류가 아닌, 주의조치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경찰은 오지 않았고, 3시 반에 친구들은 디스코떼까를 갔다. 다음 날,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꼼빠녜로가 내게 말했다.

"어제 잠 제대로 잤어? 난 오늘 에드에게 이야기 좀 하려고. 파티 하는 건 좋은데 어젠 좀 심했어"

아, 모든 외국인이 다 그런 건 아니구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뻔했다.

a  맨 오른쪽부터 에드, 나, 필립. 그리고 오늘 처음 본 친구들. 모두 퀘벡지방 출신이다.

맨 오른쪽부터 에드, 나, 필립. 그리고 오늘 처음 본 친구들. 모두 퀘벡지방 출신이다. ⓒ 김정현


물론, 분위기가 그렇게 심각해지진 않았다. 외국에서도 일반적인 상식이라는 건 똑같았다. 5명이 사는 집이다 보니 눈치껏 서로를 배려한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웃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갔다. 아직 세 달 남짓 남았다. 이 피소에서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또바기미디어(http://ddobagimedia.tistory.com)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말라가 #교환학생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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