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당하는 국정원, 바리케이드 안쪽 접근금지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정치개입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4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 국정원 정문앞에는 수십명의 기자들이 압수수색을 마치고 나오는 검찰 수사관들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권우성
첫 번째 쟁점은 국정원의 심리정보국장도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교적 싱겁게 정리되었다. 게다가 국정원장의 이른바 '지시사항'이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번 사건이 국정원장의 지시사항과 어떤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두 번째 쟁점에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 작성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는 국정원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단히 궁색한 변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북심리전을 국내의 평범한 사이트에서 진행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문제가 된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 북한을 찬양하는 북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것은 그야말로 '오늘의 유머'에 오를만한 얘기다.
변명이 궁색해지자 국정원은 해당 사이트가 '종북 사이트'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생각하는 종북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백 번 양보해서 그 사이트에 종북적인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국정원의 말이 최소한의 논리를 가지려면 대북심리전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남심리전'을 했다고 말해야 한다. 즉, 국정원이 스스로 인정한 바에 따르면 이번 댓글 사건의 본질은 일국의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기 국민들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펼친 사건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느 새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국가 정보기관의 심리전 대상이 되어버렸다. 북한 같은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 남한에서,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버젓이 자행된 것이다.
국정원에 의한 헌정 유린 사건 그렇다면 이번 댓글 사건은 정치개입행위에 불과한가 아니면 선거개입에도 해당하는가? 경찰은 정치개입 혐의만 인정하고 선거개입 혐의는 인정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선거개입 혐의가 입증되려면 댓글 행위 또는 반대추천 행위가 특정후보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한 행위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일단 국정원 직원 김씨가 단순한 의견개진 차원에서 댓글을 작성하거나 반대추천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정원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심리정보국장까지 개입된 '심리전'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씨의 댓글작성 작업은 일과시간에 이루어졌다. 김씨가 사용한 계정이 무려 11개(처음 밝혀진 것만)인 것도 평범한 개인의 일상적인 인터넷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김씨의 댓글 상당수는 북한체제 비판과 MB정권 찬양에 할애되었으나 야당 후보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가 전체 글의 몇 퍼센트냐가 아니라 그런 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이다.
이 사실만 하더라도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피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번 민변의 조사결과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양상이 훨씬 더 치밀하고 조직적인 여론조작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국정원의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이 무려 73개에 달해 이전의 16개(김씨 11개, 일반인 보조요원 5개)를 훨씬 넘는데다, 최소 4명 이상 총 8개 그룹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중앙일보 온라인판 보도에 따르면 검찰이 확보한 국정원 의심 계정이 50여 개에 달한다.
관련기사: 검찰, 국정원 직원 댓글 의심 ID 50개 추가 확보 )
이처럼 많은 계정은 특정 게시물의 반대추천에 동원되었다. 반대추천은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아예 조사도 하지 않은 사안이다. 반대추천은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는 글에 집중(734회)되었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돋보이게 게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야당 후보에게 유리한 게시물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았으나(366회), 북한 관련 게시물에 대한 반대는 고작 3회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조직을 동원해 추천수에 영향을 준 것은 가장 손쉬운 여론조작의 사례이다.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민변이 밝혀 낸 국정원 연루 계정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글도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직 모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여론조작을 일삼았는지 짐작조차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