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 사진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세인트폴시네마
이 '낙'은 단순한 재미나 즐거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기쁨, 보람, 그리고 내가 공동체에 필요한 존재라는 어떤 자아감 등이 함축된, 진정한 '나'에 대한 문제다. 아직 노년기를 경험하지 못한 강원도 구성원들(또 우리 사회 모두는)은 이런 노인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노인들에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의 '낙'을 명확히 규명하고 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게 강원도가 노인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업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세 번째 자살 문제의 특성은 바로 강원도의 '조용함'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강원도는 지금 자살문제를 대처하면서 여러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일단, 자살률 높은 지역이라는 오명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한 감정이 존재한다. 이 불편한 감정은 자칫 강원도가 자살 문제를 똑바로 응시하는 걸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살률이 높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년간 증가하고 있는 자살 문제에 적절한 대처 못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강원도의 첫 과제는 바로 이 자살에 대한 지역의 수치감, 그리고 주민들의 오해를 풀어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원도가 뭔가를 추진하고자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지역의 재정상태나 전문가 확보수준이 취약하다. 이러한 면에서 강원도는 마치 손발이 묶인 것 같은 답답함이 있을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광역정신보건센터유치를 통해 도내 자살예방사업에 대해서도 박차를 가하고자 했겠지만, 광역센터와 파트너십을 갖고 사업을 전개할 지자체의 역량들이 각양각색이라 일관된 정책을 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강원도는 의지를 갖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실 자살예방정책은 자살률을 기적처럼 떨어뜨려 "봐라!" 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어렵고, 주민들이 "반드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여겨 "내 세금을 쓰세요"라고 우선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도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하는 기본 의무와 책임에 대해 강원도가 조용해서는 안 된다. 굳이 '의지'와 '결단'이라는 힘 들어간 용어로 강원도에 부담을 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강원도의 의지와 결단에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고 더 나아가 강원도의 미래 생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웃, 이래서 중요하다이 글을 통해 필자는 자살예방을 위한 특별한 정책, 예산 배정, 시시템 구축과 같은 화려하고 꿈 같은 대안만을 전개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살예방을 위해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참여하는 사회문화적 접근, 공동체적 접근이다. 즉 강원도민이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동력을 통해 '생명공동체 질서'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강원도가 잃어가고 있는 본연의 이웃성(neighborhood)을 회복하고, 자살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깨고 함께 "한 번 해보자"는 의지도 중요하다. 재정과 전문가 부족을 핑계대면 끝이 없다.
강원도 사람들을 통해, 강원도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생명문화를 만드는 것. 이런 문화와 주민들의 공감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자살예방정책이 기능할 수 있고, 강원도민 누구라도 죽음을 생각할 때 주저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누구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제공할 수 있는 공동체 회복. 그럴 때 강원도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쉬러 강원도를 찾는 사람이든, 강원도민이든 지금이 바로 강원도의 탄식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격려해야할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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