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장사에 이제는 토마토까지"... 농민들의 긴 한숨

[현장] '대기업 농업진출 반대' 전국농민대회 열려

등록 2013.05.06 18:05수정 2013.05.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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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농업생산 진출 저지 전국농민대회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열고 대기업의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대기업이 빵 팔아서 골목 빵가게 망하게 하더니 이제는 토마토 생산에까지 진출하는 데 분노합니다."

김하도(73) 대구·경북토마토생산자협의회 회장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동부그룹 계열사의 하나인 동부팜한농이 지난해 경기도 화성시 화옹간척지구에 15헥타르에 달하는 토마토 농장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대기업의 골목 상권 파괴와 연결시켜 설명했다. 막강한 자본과 기술력으로 토마토 시장을 장악한다면 소규모 가족농인 농민들이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이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온갖 특혜를 적용해 동부팜한농에 87억 원에 달하는 'FTA 농민 보전기금'을 몰아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업은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사업이 좌절됐지만 안심할 수 없다. 또 다시 동부그룹과 같은 대기업이 농업 생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지깽이도 일해야 할 농번기에 농민들이 상경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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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농업생산 진출 저지 전국농민대회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열고 대기업의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이런 이유로 '부지깽이'도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할 5월의 농번기에 경찰 추산 1600여 명(주최측 추산 2000여 명)의 농민들이 상경했다. 전남 구례·순천, 경남 진주·합천·함안·거창, 경북 경산·청도, 충남 예산·부여 경기 여주·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모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토마토생산자협의회·가톨릭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로 구성된 '대기업-동부그룹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대기업 농업 생산 진출을 규탄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대기업들은 종자와 비료, 농약은 물론 농산물 가공과 유통 영역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전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며 "농업을 붕괴시키고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농업 생산 진출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농업은 무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투기판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고 국가의 미래를 지속가능케 하는 산업"이라며 "국민 먹거리를 지키려는 농민들은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25년간 토마토 농장을 운영해온 임준택 전국토마토생산자협의회 회장이 무대에 올랐다. 임 회장은 "대기업의 횡포는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협할 것"이라며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대듯이 5000만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이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 회장은 "농민은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며 "다시는 흙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오지 않도록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이마에 '대기업 농업 진출 결사 반대'가 적힌 붉은 띠를 묶고 '동부그룹 각성하라', '동부제품 불매한다', '우리 농업은 우리가 지킨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경찰은 18개 중대 1200여 명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 농심 달래기... "농업은 자동차 생산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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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농업생산 진출 저지 전국농민대회 전국에서 상경한 농민들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열고 대기업의 농업생산 진출 저지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화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농촌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지켰다. 충남 논산·계룡·금산의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의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 광주 서을의 오병윤·전남 순천의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 이정미 진보정의당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이낙연 의원은 대회 무대에 올라 "대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윤을 모은다면 미워하지 않겠다"며 "대기업이 콩나물, 두부 장사를 넘어 토마토라는 농민 밥그릇까지 빼앗는다면 대기업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최고위원은 "농업은 휴대폰,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며 "자본이나 기술로는 수 천 년 동안 국민을 먹여살렸던 농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은 "농민과 농업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거들었다"며 "대기업의 농업진출 저지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농민들과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3미터 높이의 폴리스 라인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이들의 국회 진출이 도로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며 행진을 저지했다. 농민들은 폴리스 라인 앞에서 '박 터트리기'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해산했다. 농민들은 장대에 매달린 박을 향해 콩주머니를 던졌다. 터진 박 안에서 나온 흰 천에는 분홍색 페인트로 '재벌농업 진출저지'가 적혀 있었다.
#전국농민대회 #동부팜한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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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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