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찬양론자'가 박근혜에게 날린 한 방은?

[取중眞담] 5·18 역사 왜곡 사태의 출발점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유임

등록 2013.05.22 11:20수정 2013.05.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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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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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박승춘 보훈처장(박 대통령 왼쪽)이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인천 오페라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시작되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 남소연


"결국 예상대로 사고 쳤네요."

21일 오전 국회에서 한 보좌관과 통화하다가 나온 얘깁니다. 제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유임되면 시끄러워질 거라고 했는데, 결국 사달이 났네요"라고 하자, 수화기 너머로 "그러게요"라며 허탈한 웃음이 들려오더군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전후해 탈이 날 것이라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 참 씁쓸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큰 사고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것을 계기로, 'TV조선'과 '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역사 왜곡 시도가 있었습니다. 소모적인 사회적 논쟁으로 비화됐죠. 결국 5·18 역사 왜곡 시도의 출발점은 박승춘 보훈처장의 유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박근혜정부가 박승춘 처장의 유임을 발표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뜨악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국감이나 상임위에서 보여준 박승춘 처장의 업무 파악능력이나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는 여당 의원들도 질책할 정도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국가보훈처 대변인실 관계자 역시 "유임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꽤나 사고 쳤던 그였기에, '박근혜 보훈처'의 미래가 눈에 그려지더군요. 저는 지난달 4일 '본인도 깜짝 놀란 보훈처장의 이상한 유임, 왜?'라는 기사를 통해 경고음을 울렸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박정희 정권을 찬양하고, 5·18 정신을 훼손하려한 시도가 박근혜 정부에서 재차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위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5년 만에 5·18 기념식을 찾았지만, 역사 왜곡 논쟁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지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처럼 예고된 '인사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 보훈처장에 '박정희 찬양론자'... 돌아온 것은 '뒤통수'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승춘 처장이 유임된 데는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는 게 중론입니다. 4월 취재 당시 청와대 대변인실 관계자는 박 처장의 유임 배경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 "전문성을 중시했고, 경력을 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보훈처장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자격 시비가 거셌습니다.

특히 그가 2011년 8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여단장을 지냈던 '5공 실세' 고 안현태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욕을 많이 먹었죠. 5·18 단체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5·18 왜곡 논란이 예고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또한 박 처장은 '박정희 정권 찬양론자'이기도 합니다. 보훈처는 2011년 말 박정희 정권을 찬양하는 내용 등이 담긴 동영상 DVD 세트 1000개를 제작해 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했습니다. 동영상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신화로 표현했고, 박정희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을 종북세력의 확산이라고도 했습니다. 김기식 의원은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고 민주화운동을 종북세력이라 매도한 DVD를 배포하는 등 그의 정치적인 처신이 유임의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죠.

박승춘 처장이 유임된 뒤 5·18 논란을 예고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5·18 유공자인 고 김종완 전 민주당 의원이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한 일입니다. 저는 고인의 유족을 만나 보훈처를 고발했습니다. (관련기사 : 5·18 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퇴짜, 왜?) 유족 문승원씨는 "국가보훈처는 쿠데타 세력으로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안현태씨는 5·18 단체의 반대에도 서둘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더니, 5·18 유공자인 고인은 안장을 거부했다"고 호소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위해 5·18 기념식을 찾은 것은 박수를 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 왜곡 사태를 바로 잡고 진정한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발언을 들어보시죠.

"5·18 기념식을 앞두고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논쟁을 일으키고 역사적 사실과 정신을 왜곡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퇴를 촉구한다. 박승춘 처장의 과잉 충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어정쩡하고 난감하게 만들었다. 부담을 주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 국민의 목소리에 심각히 귀기울여 조치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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