묏자리 챙긴 아버지, 그 마음 알길이 없네요

[기사공모-나의 아버지] 우리는 모두 진짜 '아버지' 될 자격이 있을까

등록 2013.05.22 11:30수정 2013.05.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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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샐녘입니다. 아버지는 소매 끝이 모자라진 군청색 내복을 걸친 채 낡은 여닫이문을 엽니다. 밤새 사로지다 황소가 푸르륵거리는 소리에 잠이 막 깬 뒤입니다. 멀리 동남편에 맞바라기로 서 있는 동네 앞산이 잔뜩 웅크린 야차(夜叉)처럼 두 눈을 파고듭니다.


우리 동네는 남쪽을 빼면 모두 산입니다. 북쪽에 있는 별봉산은 동네 바람막이 산으로 맞춤합니다. 그곳에서 아랫녘으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가 셋입니다. 꼭대기 좌우의 산줄기 두 개는 부챗살 모양으로 동네를 감싸며 남쪽을 향해 비스듬히 내리닫습니다. 그것들은 능선 안쪽의 두 골짜기 물이 크게 합수지는 아랫동네 복찻다리에 이르기까지 기운을 잃지 않고 쭉 뻗어 있습니다. 가운데 줄기는 제법 따란 대밭에 이르기까지 좌우로 논틀밭틀 거느린 채 동네 뒤쪽으로 내리닫다가 대밭을 지나고 용 머리 형상으로 불끈 솟아오른 곳에 이르러 기운을 잃고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동네는 가까운 곳에 지리산이 멀지 않은, 전라도 동부 내륙에서도 오지 산골에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도 일찍 찾아옵니다. 무시로 된서리가 내리고, 사늘한 기운에 바깥 출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날에도 아버지의 아침 헛기침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날도 늙은 아버지께서는 그 찬 기운에 놀라 숨을 들이쉬며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요.

아버지는 마당 한쪽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두 눈으로 마당 한켠 강담 언저리에 선 배롱나무 세 그루가 유난스럽게 들어옵니다. 이제는 농사를 짓지 않아 잡초밭이 된, 동네 안뜰 서 마지기 논에 있던 놈들을 제가 수년 전에 옮겨다 심어 놓은 것들입니다. 처음에 어른 다리만한 키였던 배롱나무들은 문실문실 잘도 자라 그즈음엔 벌써 어른 키를 훌쩍 넘어가 있었습니다.

엷은 햇귀가 나지막한 재를 품은 동편 산등성을 타고 넘어와 당산 괴목(槐木)의 우듬지 사이로 어지러이 비칩니다. 햇발은 뗏장 같은 매지구름 서슬에 불그스름합니다. 아침 놀 저녁 비라는데, 그 기세로는 당장이라도 한바탕 거세게 작달비라도 내리쏟을 듯합니다.

잠시 후 아버지는 허름한 점퍼를 걸치고 나옵니다. 마당가로 온 아버지는 삽을 들고 강담 아래 화단에 있는 백일홍 네 그루를 바지게에 캐 담습니다. 아버지는 배롱나무가 담긴 지게를 지고 아랫녘 길섶의 묵정밭으로 갑니다. 지게를 받쳐 놓고 모닥모닥 모아 놓은 마른 망초대며 딸나무를 한데 모아 불을 붙입니다. 이어 풀대가 뽑힌 밭을 눈어림으로 훑어본 후 땅을 팝니다. 배롱나무 네 그루는 그렇게 빈 묏자리에 서서 아버지보다도 먼저 땅 임자가 됐습니다. 어느 쓸쓸한 늦가을 아침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배롱나무 들고 어디로 가셨을까

몇 년 전이었습니다. 집에 있던 배롱나무 몇 그루가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여쭸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묏자리에 가져가 심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허리는 조금 굽으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지게를 진 채 밭에 다니시고, 논틀밭틀 두렁에 있는 잡초를 쳐내곤 하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묏자리라니요. 동네 어귀에 있는 밭을 부모님 묏자리로 쓰기로 해놓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말씀은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황망함을 감출 길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벌써 그때부터 예감을 하셨던 걸까요. 몇 년 후, 아버지께서는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병의 전조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하여 무심한 일곱 형제들은 그걸 거의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은 후 병원에서 울부짖던 그 고통에 찬 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수술 후 버쩍 기력이 약해지신 아버지께서는 결국 그 이듬해를 채 못 넘기고 재작년 8월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해에 비가 가장 많이 쏟아진 날이었습니다. 조문을 하러 온 직장 동료들이 혀를 내두르고 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억수로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저는 내내 아버지께서 당신 묏자리에 스스로 배롱나무를 옮겨다 심으신 그날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 쓸쓸한 가을날을…. 당신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신 걸까요.

어떤 것도 바라지 않던 '당신들'

'구구구' 멧비둘기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새하얀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하비며, 찬 서리 모진 바람이 두 뺨을 할퀴더라도, 아버지의 아침은 늘상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면 시작됐습니다. 해가 긴 여름이면 이른 새벽에 바지게에 산더미 같은 꼴 한 짐을 거뜬히 해오셨습니다. 아둑시니같은 겨울 새벽이라도 나무청에서는 아버지께서 도끼로 통나무를 뻐개는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온 동네에서 부지런함으로 아버지를 당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 눈으로 제가 캐다 놓은 배롱나무가 들어오셨겠지요. 아버지께서는 홀로 그 나무를 캐서 지게에 옮기셨을 것입니다. 꽃나무를 좋아하던 아버지셨으니 그럴 만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동네 당산 둘레에 개나리를 심으셨습니다. 꽃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지요. 그렇다고 당신 묏자리에 나무를 옮겨 심다니요.

하지만 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삶이 대개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자식들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제 아버지처럼, 많은 '당신들'은 자신의 죽음조차도 스스로 준비하셨습니다. 스스로는 헐벗고 굶주려도 자식들에게만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던 '당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냈는데도 자식들은 제 앞가림에만 바쁩니다. 그래도 '당신들'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것을 '당신들'의 삶의 길로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죄스럽기만 합니다. '당신들'에게, 이제 마흔다섯인 저는,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해 드린(릴) 게 없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버거워서일까요. 내 한 몸은커녕 가족들, 자식들 건사하는 일도 벅찰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세끼 밥은 먹고는 살면서도 늘상 무언가 부족하다고들 아우성입니다. 그럴수록 묵묵히 각자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당신들'이 그립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할까요. 저는 제 묏자리를 스스로 챙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 묏자리의 땅속에 누워서 보게 될 꽃나무를 옮겨다 심을 뜻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럴 용기가 도대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들'과 달리 우리에게 죽음은 너무나 낯섭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아버지들인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이 어지러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정녕 진짜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일기장』출간 기념 기사 공모] 글입니다.
#아버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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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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