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경기는 개판"... 박근혜 '민생경제' 어디로?

[창조경제 100일①] 인수위 네 달 전 찾았던 영천시장 가봤더니

등록 2013.06.05 15:01수정 2013.06.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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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 김동환


"새 정부요? 시장 바닥은 그대로에요. 경기도 개판이고."

박근혜 정부 100일째인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만난 청과물 가게 상인 이옥주(가명)씨는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묻자,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이씨는 "박 대통령이 재래시장 살린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마트 생기는 것도 더 막고, 사람들이 차 몰고 재래시장 올 수 있게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영천시장에서 만난 상인 십여 명은 모두 이씨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들은 "여자 대통령이니까 엄마들 마음을 더 잘 알거고 앞으로는 더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박근혜 정부 들어 민생경제에 나아진 점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근혜 강조했던 '재래시장 활성화'... "달라진 것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가장 즐겨 찾았던 곳 중 하나가 재래시장이다. 박 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틈나는 대로 재래시장 활성화와 민생경제를 강조해왔다.

이같은 기조는 당선 후에도 그대로였다. 새 정부의 국정 로드맵을 만들었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경제 1분과에서도 민생정책 반영을 위한 의견 청취를 한다는 이유로 지난 2월 1일 이곳 영천시장을 방문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좋아진 것은 없었다. 이곳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서희진(가명)씨는 '뭐가 달라졌다고 느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대로"라고 답하며 계산대 한 쪽에서 주·정차 과태료 용지 다섯 장을 꺼내보였다.


"이게 차에서 떡 내리고 실으면서 받은 '딱지'에요. 시장에 주차장이 없으니까 도로에서 물건을 내리는데 단속 카메라가 수시로 찍어대니까 이렇게 딱지가 나와요. 인수위원들 2월에 왔을 때 이런 것 좀 어떻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는데 여전히 이렇게 장사합니다."

손님은커녕 상인들도 마음 편히 자가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는 것이다. 서씨는 "요즘 손님들이 얼마나 불편한 걸 싫어하는데 이런 걸 감수하면서 재래시장에 오겠느냐"면서 "누가 시장 문제 물어보면 상인들이 첫 번째로 꼽는 게 주차장인데 선거철 되면 '만들겠다' 말만 나오지 실제로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텐데..."

4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의 한 정육점에서 시식코너를 운용하고 있다. ⓒ 김동환


이날 만난 상인들은 "경기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밑바닥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됐다는 얘기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윤주(가명)씨는 전날인 3일부터 점포 한켠에 고추장 불고기 시식코너를 만들었다.

박씨는 시식행사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 "경기 안 좋은데 재래시장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사람들이 시식하면 인정상 안 사갈 수 없어서 그런지 통 먹질 않아서 고기가 그냥 마르고 있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박씨는 "근처 식당에서 가끔 시장 와서 고기를 끊어가는데 그것도 많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족발집 주인 이경민(가명)씨는 "경기도 나쁜데 시장 건너편 동네까지 재개발 때문에 텅 비면서 매출이 많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이씨의 점포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월 매출이 평균 200만 원가량 떨어졌다.

"재래시장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요즘 서민들이 돈이 없어요. 전에는 손님들이 밤 12시 넘게 늦게까지 술이랑 드셨는데 요즘은 오후 9시만 되면 땡이야. 우리집은 족발만 10년 해서 외부에서 사러 오는 분들도 많은데 예전에 3개 팔렸다면 지금은 1개 팔려요. 맛은 똑같은데 그만큼 경기가 안 좋아."

이씨는 "상인들이 자체 노력을 많이하고 있고 그 때문에 재개발 때문에 이사 간 사람들도 영천시장에 매주 찾아온다"면서 "물건이 경쟁력이 있으니까 멀리서도 오는 건데 정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시장이)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 혹하는 좋은 일자리 만들어달라"

서대문구 영천시장의 한 신발가게. ⓒ 김동환


상인들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막연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제가 하루 아침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니 1년 정도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상인들은 "박근혜는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사람인데 민생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으니 반드시 될거라고 본다"는 반응도 보였다.

구체적으로는 소상공인이 인근 사회 속에서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달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경민씨는 "재래시장은 먹을거리 장사가 많다"면서 "(시장에서 잘 사먹는) 젊은 사람들 일자리를 특히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든 사람들은 일용직이든 뭐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구미에 맞는 일자리 아니면 일을 안 해버리잖아요.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혹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경기도 좀 살지."

문구점을 운영하는 박영달(가명)씨는 "몇 년 전부터 학교가 문구 업자들에게 직접 납품을 받으면서 동네 문방구가 다 죽어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천시장에만 문구점이 3곳 있었지만 이젠 자신밖에 없다"면서 "업자들 몇 명만 배불리지 말고 동네 문방구들이 경쟁해서 학교에 직접 납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줬음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래시장 살리기의 방편으로 내놓은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에 정부 및 지자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시장상인 100%의 동의가 필요한데 사실상 비현실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재근 영천시장 상인회 총무는 "영천시장이 천막 덮개라 여름 되면 더워서 손님들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시설현대화가 꼭 필요한 상황인데 상인 동의률이 90% 수준이라는 이유로 진행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100% 동의를 받기는 어렵다"면서 "정부에서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정책적인 해법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영천시장 #재래시장 #민생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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