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회담 앞둔 북한의 '현충일 깜짝 발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첫걸음이자 시험대

[해설] 북한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에 담긴 뜻과 정부의 과제

등록 2013.06.06 20:23수정 2013.06.0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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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6일 오후 10시3분]

 북한이 6일 조평통 특별담화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교류사업 재개를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다. 사진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59일째로 접어든 5월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방북 신청이 불허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와 직원들이 되돌아 나오는 모습.
북한이 6일 조평통 특별담화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교류사업 재개를 위한 당국 간 회담을 제안했다. 사진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59일째로 접어든 5월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방북 신청이 불허된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와 직원들이 되돌아 나오는 모습.유성호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하던 당국 간 회담을 거부하던 북한이 전격적으로 회담에 응해오면서 오는 12일 서울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국 간 회담을 열자는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6일 특별담화가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핵 무력과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비판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북한의 회담 제안 배경에 의구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이란 병행노선은 병행할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고립만 자초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루 속히 고립과 쇠퇴의 길을 버리고 남북한 공동발전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했다. 이전에도 밝혀온 '북한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런 내용의 정부 입장이 나올 때마다 북한은 정부를 비난하며 '무장해제하고 대화 테이블에 앉으라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민간단체에는 얼마든지 북한을 방문하라면서도, 당국 간 회담을 요구에는 철저히 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황적으로 정부가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기색이 전혀 없었음에도 북한이 전격적으로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해온 것이다. 현충일은 6·25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어서 북한으로서는 남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도 어색한 날이기도 하다.

"미·중 정상회담 앞서 북한문제 전향적으로 논의해달라는 메시지"


이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 시점에 당국 간 대화에 응해온 것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연다.

김 교수는 "(북한) 자기들이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걸 미국과 중국에 보이기 위한 행동"이라며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 북·중 관계를 풀어가기 어렵다는 게 미국과 중국의 입장인 것을 확인한 만큼, 이런 유화적인 행동을 통해 북한은 대화를 원하며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를 나눠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하면서 북한이 언급한 대화 주제가 포괄적이란 점도 눈에 띈다. 개성공단 완제품·원부자재 반출 문제에 초점을 맞춰온 정부의 당국 간 회담 제안과는 달리, 북한은 ▲ 개성공단 정상화 ▲ 금강산관광 재개 ▲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문제 ▲ 개성공단·금강산관광지구 기업가 방문 ▲ 남·북 민간 교류 촉진 ▲ 6·15 공동선언, 7·4 공동성명 남북 공동 기념행사 등 여러 가지로 제시했다.

특히 1972년 7·4 공동성명 기념행사를 언급한 점이 눈에 띄는데,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것으로,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때 이룬 남북의 합의를 살려가자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에 대해 유화적인 자세를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6·15 공동선언은 물론 7·4 공동성명 등 남북 간 기존 합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창수 한반도 평화포럼 기획운영위원장은 "북한이 7·4 공동성명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앞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전향적으로 끌고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고 말했다.

막혔던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산가족 상봉, '한번에'

북한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나서면 남한도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아울러 민간교류 촉진을 강조한 부분은 이번 회담에서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남북의 인적·물적 교류를 중단·축소한 5·24 조치를 해제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풀면서 남북 사이의 여러 현안을 한꺼번에 풀자는 것. 그동안의 강경했던 입장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북한에서도 강경파가 득세하다가 강경 입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대화파가 입지를 회복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추측했다.

당국 간 회담이 열리게 된 만큼, 이번 대화를 통해 남북 현안에 진전을 이뤄내야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을지연습이 8월에 예정돼 있는 만큼 그 전에 북한과의 대화에서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대화 내용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게 되면 북측이 을지훈련을 빌미로 남한을 비난하고 나서는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뢰 프로세스 첫걸음... "융통성 발휘하고 기존 합의 존중부터 시작해야"

북한이 당국 간 회담에 전격적으로 응하면서 열리게 된 이번 회담은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선 이명박 정부 때에도 남북간 실무협의를 한 적이 있지만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다"며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이번 회담을 통해 상황을 풀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북한과의 대화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처럼 금강산 현지조사를 고집하는 것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면 대화의 진전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부에서 악화됐던 남북관계가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악화되고 있던 상황인데, 처음으로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결과가 아닌 신뢰를 쌓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니 7·4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 등 기존의 합의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북회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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