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장미축제. 4만4천 평방미터 넓이의 장미원에 300만 송이 장미가 펴 관람객의 환호성을 자아낸다
박석철
울산대공원 장미축제가 지난 5일 개막돼 징검다리 휴일을 맞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울산 남구 옥동에 있는 울산대공원 남문 쪽 장미계곡에는 263종류 300만 송이 장미가 활짝 폈다.
울산시와 SK에너지는 5일 전야제에 이어 장미축제 퍼레이드, 어린이를 위한 특별공연, 앵무새 마술 등 여러 프로그램도 마련해 관람객들을 맞고 있고 13일까지 축제가 계속된다. 울산시는 "이번 장미축제는 100만 명 입장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국 최대 규모의 장미 축제"라며 "울산시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이 온다"고 밝혔다.
장미축제가 열리고 있는 울산대공원은 1996년부터 SK그룹에서 10년간 매년 100억 원씩 모두 1020억 원을 출연해 기부체납했고, 울산시도 부지구입 예산으로 500억 원을 투입해 지난 2006년 준공됐다.
울산 석유화학공단에 국내 최대 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인 SK는 석유화학이라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려왔지만, 석유화학산업이 장치산업이라 직원은 2000여 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고용창출은 없고 공해만 배출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자 SK의 고 최종현 회장은 1995년 "1000억 원으로 공원을 만들어 울산에 기증하겠다. 울산에 기반을 둔 SK는 지역 성원으로 얻은 기업 이윤을 주민들에게 돌려 줘야 한다"고 약속했고 1996년부터 매년 100억 원씩 기부했다.
울산대공원은 360만㎡ 규모로 도심 공원으로는 전국에서 제일 크고, 해마다 장미축제가 열리는 장미원은 4만4000㎡로 앞서 전국 최대이던 서울대공원 장미원을 제치고 최대 규모로 등극했다. 울산시는 앞서 이번 장미축제를 위해 예산 50억 원을 들여 울산대공원 장미원을 확장한 바 있다. 이처럼 수백만 송이의 갖가지 장미를 보며 관람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와중에 장미와 울산대공원에 얽힌 진실은 묻혀가고 있다.
SK는 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을까울산 도심에 자리잡은 울산대공원을 벗어나면 곧이어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가 나온다. 남구 여천동, 울주군 온산 등 곳곳에 공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이처럼 SK 등 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공단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검은 연기로 상징되는 공해를 배출해, 한때 '울산=공해도시'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SK가 1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들여 울산대공원을 기증하고 공원이 준공된 2006년부터 장미축제를 열고 있는 것도, 그동안 공해를 배출하며 산업활동을 해온 데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공해를 해소하기 위해 1986년 울산을 '대기오염 특별대책지구'로 지정해 오염물질 배출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1990년부터는 석유화학공단이 가동 연료로 석탄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2001년부터는 고황유 사용도 금지했다. 그 덕에 지난 10년간 울산의 공기가 많이 좋아졌고 공해도시라는 오명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009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울산·온산석유화학공단과, 인접 5개지점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과 중금속 농도를 측정한 결과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대기환경기준치를 10배 가까이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지난해 울산발전연구원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0년 울산시민 사망 원인 중 암이 29.4%로 1위였다. 통계청 자료로는 지난 2008년, 2009년 연속으로 울산의 폐암사망률이 전국 1위였다.
하지만 울산시는 2011년 다시 지난 10년 동안 중지됐던 석유화학공단의 가동연료로 고황유 사용을 허용하는 조례를 강행해, 현재는 다시 석유화학공단의 가동연료로 고황유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이를 두고 당시 환경·시민사회단체는 시민건강 우려와 울산에서 최대 규모 석유화학공장을 가지고 있는 SK가 1000억 원 이상의 이득을 볼 것이라는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연일 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조례는 강행됐다.(관련기사:
고황유 연료사용 허용, 대기업 특혜 의혹 제기)
그렇다면 울산시가 시민들의 반대에도 고황유 허용 조례를 강행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석유화학 업체들이 경제난을 호소하며 울산시에 저렴한 고황유 사용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업체는 그동안 황 함유 0.3% 이하인 저황유를 원료로 사용해왔는데 저황유는 고황유에 비해 가격이 10%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장미축제보다 더 중요한 '대기질-암 발병' 관련 조사조례 통과는 새누리당 울산시의원들이 맞장구를 쳤다. 당시 울산시의회 상임위원장인 통합진보당 이은주 의원은 "울산이 3년 연속 폐암 사망률 전국 1위이며,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인구 10만 명당 암 진료 환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며 "대기질과의 상관 관계를 먼저 확인하자"며 고황유 조례를 보류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의정을 어지럽힌다"며 오히려 그를 징계하려 나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25명의 시의원 중 중 여당과 친여 교육의원은 14명으로 과반수를 넘었다. 2011년 11월 29일 새누리당 소속 시의회 의장은 야당의 반대에도 고황유 허용 조례안을 직권 상정해 다수결로 가결시켰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시의회가 집행부인 울산시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울산의 높은 암 발생률과 대기질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제대로 된 조사나 연구가 진행된 바는 없다. 시에서 수십억 원을 들인 장미축제보다 연구 조사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고황유 조례 허용 후 시민건강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난 5월 29일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이같이 발암물질이 대량으로 배출되는 현실에서도 발암물질에 대한 정보가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발암물질없는 울산만들기'를 발족하고 본격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울산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울산의 대다수 기업체에서 수많은 발암물질을 취급하고 있지만, 이것의 위험과 취급상의 문제는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며 "발암물질 조사사업과 PVC 없는 학교만들기 사업을 펼쳐나가는 한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울산시민들에게 발암물질에 대한 위험성을 적극 알려나가고 발암물질 알권리 조례 제정작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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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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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300만 송이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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