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의 '희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신선생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⑪] 묵티나트에서 마르파까지

등록 2013.06.14 09:32수정 2013.06.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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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된 고민은 해발 5416m 쏘롱라를 넘는 것이었습니다. 해발 5000m 높이는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되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어제 무사히 쏘롱라를 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을 경험한 것이지요. 자고나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제 세상 어떤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힌두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묵티나트'


어젯밤에는 함께 고생한 가이드와 포터를 위한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쏘롱라를 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고용한 자와 고용된 자의 관계가 아닌 오랜 시간을 함께한 형과 아우의 마음으로 술과 안주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침에 마을을 산책하였습니다. 해발 3800m에 자리 잡은 묵티나트는 티베트 불교와 힌두교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마을과 계곡 곳곳에는 룽다와 타르초가 나부끼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에는 사원이 있습니다. 종교 간 반목 없이 어우러져 공존하는 모습이 보기 아름답습니다.

a 사원 묵티나트 계곡에 있는 불교 사원 모습

사원 묵티나트 계곡에 있는 불교 사원 모습 ⓒ 신한범


묵티나트를 출발하였습니다. 오늘은 좀솜(2720m)까지 갈 생각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는 묵티나트에서 좀솜까지의 트레일이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안나푸르나(8091m)와 다울라기리(8167m) 사이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칼리간다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것입니다.

마을에는 새로 집을 짓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마을 끝자락에는 지프차 정류장이 있구요. 지프차는 좀솜까지 운행된다고 합니다. 나날이 증가하는 순례자와 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지프차의 유혹이 왔지만 포기하였습니다. 트레킹은 자신의 두 발로 걷는 것이겠지요.

a 신작로와 트레일 묵티나트를 벗어나면 서로 다른 길이 있음

신작로와 트레일 묵티나트를 벗어나면 서로 다른 길이 있음 ⓒ 신한범


최민식의 '희망을 만나다'


마을을 벗어나자 도로와 트레일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삼십 분 쯤 내려오자 황량한 다울라기리를 배경으로 자르코트(3550m)가 있습니다. 마을은 황무지 사이에 섬처럼 떠 있습니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입니다. 마을 위쪽에는 사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a 자르코트 히말라야 바랍이 머무는 곳의 배경 '자르코트' 모습

자르코트 히말라야 바랍이 머무는 곳의 배경 '자르코트' 모습 ⓒ 신한범


자르코트는 2009년 최민식 주연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이 영화는 우연히 동생의 공장에서 네팔 청년 도르지의 장례식을 보다가 그의 유해를 고향에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습니다. 유해를 전달하기 위해 도착한 자르코드에서 도르지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전달하지 못 하고 그간 남기 돈만 건넨 채 며칠을 마을에 머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삶의 의욕을 읽은 남자가 세상의 끝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영상에는 안나푸르나의 거대한 설원, 바람이 휘몰아치는 칼리간다키 강 그리고 퇴락한 성채 같은 자르코트의 모습을 통해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 포스트 최민식 주연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포스트 최민식 주연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 신한범


실제로 이 영화에서 최민식은 현지 사전 답사에 참여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가 산을 오르며 숨을 헐떡이고 구토를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난 후 그는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희망을 만난다."

같은 곳을 걷고 있는 그와 저의 바람이 서로 다른 것은 아니겠지요.

무스탕 왕국의 관물 '카그베니'

자르코트를 지나면 카그베니(2740M)가 나옵니다. 마을 주변에는 보리가 푸른색을 띄며 자라고 있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견딘 어린 싹들이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목을 내민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이 느껴집니다. 물과 빛이 있으면 모진 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싹을 틔우는 것이 생명이겠지요.  

a 카그베니 모습 무스탕 왕국의 관문 '카그베니'

카그베니 모습 무스탕 왕국의 관문 '카그베니' ⓒ 신한범


카그베니는 은둔의 왕국 '무스탕'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무스탕 왕국은 칼리간다키 강이 발원하는 곳으로 히말라야 중부 산악 지대에 있는 가장 오래된 왕국입니다.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이곳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서와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합니다.

카그베니에서 점식을 먹었습니다. 저는 볶음밥을 주문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식욕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몇 번의 트레킹 경험이 있음에도 네팔 음식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식사 때만 되면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여행을 잘하는 방법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인데 먹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a 칼리간다키 강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기 사이의 계곡 모습

칼리간다키 강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기 사이의 계곡 모습 ⓒ 신한범


좀솜까지는 칼리간다키강을 따라 내려가야 합니다. 바람이 점점 거칠어지며 흙먼지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잠잠했던 바람이 오후가 될수록 더 심해집니다. 공항이 있는 좀솜에서는 바람 때문에 비행기도 오전 11시가 넘으면 이착륙이 금지됩니다.

좀솜(2720m)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 관공서, 군부대, 경찰서 등이 상주하는 좀솜은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갑자기 만난 도심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버스나 비행기를 이용하여 트레킹의 종착지인 포카라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이 점점 편리해지고 기간 또한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a 공항 좀솜 공항 모습

공항 좀솜 공항 모습 ⓒ 신한범


가이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As you like it"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트레킹에서 이동과 숙소의 결정은 가이드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경험 많은 가이드는 난이도와 트레커의 상태를 감안하여 일정을 결정합니다. 가이드가 내일을 생각해서 다음 마을인 마르파(2670m)까지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네팔 사과의 수도 '마르파'

좀솜에서 마르파가는 길은 트레커와 주민이 함께합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버스와 지프차가 가끔 왕래합니다. 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걷는 것은 먼지 때문에 무척 힘듭니다. 버스의 유혹이 있지만 두 시간을 걸어 마르파에 도착하였습니다.

a 마르파 마르파 이정표

마르파 마르파 이정표 ⓒ 신한범


마을은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까막득한 절벽을 등지고 칼리간다키강을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 주위에는 과수원이 보입니다. 지금을 철이 지나 을씨년스럽지만 마르파는 사과의 고장입니다. 마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매서운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단아한 모습입니다. 

a 마을 정경 마르파 마을 모습

마을 정경 마르파 마을 모습 ⓒ 신한범


a 과수원과 들판 마르파 주변 모습

과수원과 들판 마르파 주변 모습 ⓒ 신한범


오늘은 트레킹 거리는 21km입니다. 트레킹을 시작한 후 가장 많이 걸었습니다. 해발도 3800m에서 2670m 로 내렸습니다. 바람 때문에 힘들었지만 내리막길이 계속되어 가능했습니다.

사과 브랜디로 저녁을 대신하였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브랜디는 알콜 농도가 25도 이상으로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애플 브랜디는 히말라야의 빛과 물이 빚어낸 사과로 만들었습니다.

브랜디 한 잔에 몸과 마음 모두가 이완되며 편안한 저녁을 맞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편(1편에서 10편) 안내를 아랫쪽에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라운딩 #마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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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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