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살면, 결국 빨리 죽는 거겠죠"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9] 영화평론가 유지나

등록 2013.06.18 17:53수정 2013.06.18 18:33
0
원고료로 응원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재미있는재단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주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낯설지 않다. 익숙하지 않았던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지칭)'라는 단어도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또 최근 발생한 사회복지사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을 보고 있자니, 이제 한국에서 '자살'은 어느 순간 번져버릴지 모르는, 몸 속 깊은 곳에 기생하는 '우울 바이러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 삶을 감싼 규범과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억압 받은 채 고통 받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둬버리고 있다. 이처럼 자유롭지 못한 생각들이 모인 세상에서 '생각하는 여자' 유지나는 거꾸로 자유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우리의 삶 속에 이미 녹아있는 그 '놀이(Ludens)'라는 것을 통해 억압된 삶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영화'였다. 유지나에게 '영화'가 바로 그 '놀이'이자 '예술'이자 '자유'인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찾아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호모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라는 것은 '빨리빨리'에 굳어진 것들을 빼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가정교육에서, 한국의 집단무의식에서 요구하는 출세, 성공, 경쟁에서 잘 사려는 최면, 규범, 도덕, 그리고 명령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놀이를 통해 이것을 빼어내야 합니다. 저한테는 놀이가 예술입니다. 이것은 연예나 오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로서의 예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는 왜 호모루덴스에 주목하나

지난 4일 서울 신촌 한 바에서 열린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영화평론가 유지나였다. 그녀는 "왜 이 시대에 호모루덴스 적극 추천하는가?"라는 말로 이날 강의의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을 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었고 네덜란드 북쪽이 나치의 손에 들어가면서 표현의 사상 또는 사상의 자유를 누리는 모든 사람들이 감옥에 끌려갔을 때이며 그 또한 감옥에 억류당하게 된다.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재미있는재단

하위징아는 그 시기에 이성(Sapiens)을 잃은 인류라는 종속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했고 결국 "인간, 즉 생명체의 본성은 놀이(Ludens)다"라고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지나는 인류가 전쟁의 광기로 이성을 잃고 타 민족을 아무 가책 없이 죽였던 살벌하고 삭막했던, 그래서 놀이를 찾을 수 없었던 세상이었기에 하위징아가 '인류의 본질은 생명체로서 놀이다'라고 해석하게 된 것 아닌가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어 그녀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놀이하는 인간'이란 개념이 왜 사람들에게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기사 제목을 언급했다.

우울증 앓는 20대 여성 직장인 급증 - 6월 3일
한국 고령화 대응성적 OECD 꼴찌 -  5월 21일
한국 어린이 청소년 사회 행복도 OECD 꼴찌 - 5월 4일
대도시 자살률 서울이 뉴욕의 5.5배...- 4월 3일


이 모든 문제는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정신 상담치료센터 또는 우울증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기사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경각심,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규범이 높은 사회, 이것을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좋게 말하면 도덕률이 높은 사회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한국이 전 세계에서 5위라고 합니다. 한국사회는 규범이 강해서 우울증도 많습니다."

유지나 주변에도 우울증을 방치하다 자살한 이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그런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그녀가 찾고자 하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 우리는, 나는, 그리고 당신은 '놀이'를 통해, 아니면 그 무언가를 통해서라도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그것을 방증하는 것이 요즘 우리 곁을 떠도는 '힐링'이란 단어 아닐까.

영화평론가 유지나가 '놀이'를 찾아서 결국 이루려는 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 '실적'에만 얽매여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빨리 빨리'라고 한다. 과거 경제 급성장에 비롯된 낡은 관습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빨리 성공하고 돈 벌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산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생각하는 여자'

어릴 적 간절히 소망하던 '꿈'은 사치가 되었고 어떻게 해서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허세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자신을 탓하다가, 우리가 왜 사는지 그 뿌리와 목적까지 잃고 흔들린다. 한국인 뼛속까지 깊게 박힌 '빨리빨리'에 대해 유지나는 이렇게 말했다.

"빨리빨리 사는 것은 압축적인 겁니다. 빨리 죽는 겁니다. 다 따져보면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률이 1위가 된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현재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야 '인간 구실을 하는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빨리빨리' 압축적으로 만들어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그 본질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일까? 사람이 사는 이유나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일까? 바쁜 일상에서 일과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리고 그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자아는 점점 상실 되어가고 나약해져만 가는데, 우리는 텅 빈 자신을 붙들고 이렇게 노예처럼 돈을 좇으며 성공만 울부짖는다.

그런 사회의 중심에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한 '생각하는 여자'가 유지나다. 그녀는 영화평론가이기 이전에 철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었고, 철학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질문하는 방법을 배웠다. 여성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와 남자가 주를 이루는 영화판에서 여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페미니스트로 각인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용기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유지나는 질문한다.

"놀이라는 것은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며, 범죄 또는 불의와 결탁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해가 되고 자기 자신을 상처 주는 '타락된 놀이'도 있다. 결국 어떻게 노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놀이는 예술처럼 숭고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밥 먹듯이 본질적인 것이다. 자기가 언제가 가장 행복했었는지 상상해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놀이의 의미를 다시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놀이도 건강하게 표출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진정한 놀이가 된다. 개인의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더욱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놀기 좋은 한국'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해 준 '철학가'이자 '놀이문화 전달자'인 유지나의 소중한 이야기에 감사를 전한다.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
재미있는재단 주관 '재미있는 이야기 전' 9번째 주인공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재미있는재단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 소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은 사단법인 '재미있는재단'이 기획 주관하며, 오마이뉴스와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재단은 문화를 중심으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재미있는 재단의 다양한 사업들, 미국 MBA 진출지원 프로젝트 '개천에서 용났다'와 소소한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 영상 교육 프로젝트 '비추다'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사업들 중의 하나로 '재미있는 사람이야기 전'을 을 기획하고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은 매주 화요일 지속적으로 개최 됩니다.

먼저 문화계를 비롯한 궁금한 우리 시대의 인물로부터 점차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전시'하는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옆의 텍사스아이스바(02-325-0088)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호프 한잔과 함께 편안한 대화의 장으로 진행되는 '사람이야기 전'은 누구나 스스로를 이야기 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날 그날 진행된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한달의 행사를 사전에 공지하고, 만나고 싶은 분이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 주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간단한 식사거리와 맥주, 강연료 등을 포함하여 2만 원이며, 대학생의 경우 50% 할인해 드립니다. 자연스런 우리시대의 삶의 전시 공간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6월 일정은 4일 영화평론가 유지나 전, 11일 만화평론가 박인하 전, 18일 애니메이션 '빼꼼' 제작자 김강덕 전, 25일 부천문화재단 대표 김혜준 전으로 이어집니다.

#재미있는재단 #재미있는사람이야기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재미있는재단' 전슬애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