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놀음 하는 출판사에 일침을 가하다

[이털남 375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등록 2013.06.28 14:20수정 2013.06.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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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털남2-375]'돈놀음 하는 출판사에 일침을 쏘다' 30년 넘게 출판업계에 몸담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이 사재기와 돈놀음하는 출판업계에 일침을 가했다. ⓒ 이종호


얼마 전 소설과 황석영씨의 등단 50주년 작품 <여울물 소리>(자음과 모음)가 사재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출판업계의 고질병이 수술대에 올랐다. 출판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재기 관행은 알면서도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오래된 악습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 역시 이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30년 넘게 출판업계에 몸담아온 그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의 '보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종사자라면 감추고도 싶을 출판업계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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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베스트셀러의 절반은 사재기

사재기가 출판계의 악습이냐는 질문에 대한 한기호 소장의 첫 마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2000년대에 베스트셀러가 됐던 책들의 절반은 사재기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온라인 서점은 누가 사재기를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지만 매출을 올려야 하니 모른 척 했다. 오히려 사재기를 조장한다. 반값할인, 무료 책 지급, 5000원짜리 쿠폰 지급 등 대놓고 사재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온라인 서점의 사재기 조장을 지적했다.

여기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만 하면 별다른 비판 없이 일단 사고 보는 책 소비 습관도 한몫 한다. 결국 "베스트셀러에 대한 독자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기호 소장은 지적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 모두 괜찮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것.

"앞으로는 고전·소프트 인문학·로맨스 판타지 소설이 대세"


사재기 관행이 베스트셀러를 장악했지만, 그럼에도 시대에 따라 베스트셀러 역시 변화했다. 지난 30년간 한국 베스트셀러의 변화를 분석한 한기호 소장은 2000년대 초반엔 특히 자기계발서가 출판계를 주도했는데 여기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노동유연화 정책을 확산시키는 사회적 분위기에 휘몰려갔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했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도 자신이 가는 미로에 치즈가 없으면 빨리 다른 미로로 가라는 내용이다. 즉, 회사에서 해고 당하면 여기엔 남는 게 없으니 머리끈 두르고 시위할 게 아니라 빨리 다른 길을 찾으라는 얘기 아닌가. 결국 2000년대 초반의 자기 계발서는 IMF 이후 급격하게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가는 와중에 그에 맞춰 인간의 심리를 바꾸려고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흐름이 출판을 주도할까. 한기호 소장은 소프트 인문학과 고전을 꼽았다. "최근 들어 가볍게 쓰여진 소프트 인문학이 뜨고 있다. 과거엔 열심히 자기 계발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막상 세상에 나와 보니 스펙이 있어도 소용이 없고,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의 기반 지식이 인문학이다. 그런데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고등학교, 대학교 때 제대로 하질 못했다. 빨리 공부는 해야겠고 그러니 압축을 해서 단기속성으로 나온 것이 소프트 인문학"이라고 분석한 그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소프트 인문학 붐이나 고전 붐은 굉장히 좋은 징조다. 영화와도 연결되는데 영화 <레미제라블>이나 <위대한 개츠비> 등을 보면서 인간은 이럴 때 이렇게 위기를 헤쳐 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작년에 베스트셀러를 휩쓴 에세이에서 소설, 그 중에서도 로맨스 판타지 소설로의 이행이다. 왜 하필 로맨스 판타지 소설일까. 한 소장은 "요즘엔 세컨드 라이프라고 해서 현실 말고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담겨있는 것이 바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고 답했다.

"자질 없는 출판사 사장들 꽤 많아"

30년이 넘는 세월을 출판업계에 몸담아 온 한기호 소장은 편집자에 대한 자부심 역시 대단해보였다. 그러나 편집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오래 가기 힘들다는 말에도 수긍했다. 이유는 돈놀음을 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있다는 출판사들 중 일부는 책을 제대로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부동산으로 돈을 번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편집자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저임금으로 적당히 부려먹으려 한다. 출판사 대표를 할 자질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강하게 비판한 한 소장은 "제대로 된 출판사가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한기호 소장의 소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 출판은 그 시대 지성의 집결지 같은 곳인데, 이런 곳에 '장사치'가 끼어들어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통탄이 당연하면서도 절절한 소망을 만들어낸 것일 테다.
#이털남 #사재기 #출판사 #한기호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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