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수호,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아쉽다

[취재후기] 울산 중구 성남동에서 촛불문화제... 참가자 "민주주의 수호"

등록 2013.06.29 16:14수정 2013.06.29 16:39
0
원고료로 응원
a

28일 저녁 7시부터 울산 중구 성남동 뉴코아아울렛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지역 야당 대표들(앞줄)과 시민단체 회원 등이 촛불을 높이 들고 있다 ⓒ 박석철


국가정보원 정치개입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울산 중구 성남동 뉴코아아울렛 앞에서 열렸다.

울산의 민주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등 야당 당직자들과 울산시민연대, 울산풀뿌리주민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가족과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국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중대 사건"이라며 "국정 조사를 통해 그 실체를 낱낱이 밝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번화가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도 참여를 호소했다.

촛불문화제 참여자들 "시민동참" 호소에 냉소하는 사람들

울산촛불문화제에서는 지역의 야당 시당위원장들이 먼저 발언을 시작했다. 심규명 민주당 울산시당위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직접 개입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여론조작임이 밝혀지고 있고,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와 국정원 또는 청와대 사이 불법적이고 은밀한 관계가 존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며 "시민이 나서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석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위원장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아시나,  국정원 선거개입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닉슨이 사퇴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능가하는 정치이슈가 됐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지난 수십 년 간 쌓아온 민주주의를 뿌리 채 흔드는 헌정문란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권진회 진보신당 울산시당위원장은 "우리가 오늘 여기에 촛불을 들고 모인 이유는 딱 한가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다"며 "울산시민 여러분이 함께 민주주의 수호에 나서달라"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권필상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국가 정보원의 불법선거개입은 국가기관을 동원한 헌정유린행위"라며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 주권 차원에서 시민단체도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a

28일 저녁 7시부터 열린 울산문화제에 참석한 한 주부가 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 박석철


이날 촛불문화제가 열린 중구 성남동 뉴코아아울렛은 울산의 가장 중심지며, 이곳을 젊음의 거리라고 부른다. 촛불문화제가 열린 시간은 연휴를 앞둔 황금시간대라 많은 시민, 특히 젊은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곳을 왕래했다.


촛불문화제가 절정에 달하던 오후 8시쯤, 젊은 연인 두 명이 촛불을 들고 있던 참석자들 옆을 지나갔다. 여성이 "아, 국정원 여직원 때문에 모인 것이네"라고 남성에게 묻자, 남성은 "할 일이 없는가 보네"라고 냉소하며 지나쳤다. 아이를 어깨에 업은 아빠와 가방을 맨 엄마가 촛불문화제 참석자들 옆을 지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그 모습을 본 채 만 채 그냥 지나쳤다.

한 시간가량 촛불문화제에 머무는 동안, 이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을 유심히 봤다. 한쪽에서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지만, 한 쪽에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무관심과 냉소, 그것이 이날 이곳을 지나던 대다수 울산시민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문득 기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9년 부산 남포동에서 있었던 부마항쟁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부산시민들은 분노했고, 번화가인 남포동으로 뛰쳐 나갔다. 그해 9월 어느날 남포동에 놀러갔던 기자와 친구들은 교복을 입은 채 시위대에 합류했다. 그때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거리에서 마이크를 들고 외치는 사람들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하지만 34년이 지난 이날 울산 번화가에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기자와 함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민주당 울산시당 고익문 홍보실장은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국가기관이 음모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은, 상식선에서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일 아닌가"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TV를 틀어도 볼 수가 없고, 신문을 봐도 읽을 수 없으니 시민들이 무관심할 수밖에 있겠나"고 반문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부부가 나란히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울산 동구에서 온 정종삼씨 부부다. 이들은 평소에 촛불한 번 들어본 적이 없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평범한 슈퍼마켓 주인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25일 자신의 슈퍼마켓 인근인 울산 동구 방어동에 300㎡ 규모의 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방어동점'이 개점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홈플러스측은 관할 동구청의 문의에 '출점 계획이 없다'고 답한 후 기습 개점을 했고, 잇따라 동네슈펴들이 문을 닫았다. 이후 SSM  폐점을 요구해온 이들 부부는 지금까지 SSM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관련기사: <얌전하던 골목슈퍼 부부는 왜 투사가 됐나>)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던 정종삼씨 부부는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와 관련된 일 이외의 사회문제에는 시민으로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며 "하지만 내가 강자에게 당해보니 촛불을 드는 심정을 알겠다. 오늘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것은 나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존재 의식에서다"고 말했다.
#울산촛불문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