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맨 승훈씨, 낡은 선풍기 하나로 "폭염 준비 끝!"

[굿바이 사계절⑦] "자전거도, 친환경도 혼자선 외로워"

등록 2013.07.04 11:10수정 2013.07.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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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봄옷은 바깥구경을 며칠 못하고 옷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지난겨울 유난히 혹독했던 추위는 빙하가 녹아 해수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기후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기후변화는 남태평양에 잠기는 섬과 얼음 위를 위태롭게 걷는 북극곰으로 상징됩니다. 과연 그뿐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통계수치나 외국사례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후변화'를 찾아보려 합니다. '굿바이 사계절'은 다른 세계에 살게 될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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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훈씨는 7년째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자전거를 타며 친환경적 삶에 관심이 많아졌고, 냉장고 줄이기, 선풍기 없이 여름 나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됐다. 그는 "자전거도 여럿이 탈 때 서로 이끌어주기에 속도가 더 잘 나온다"며 "기후변화도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던 지난달 22일 오후, 무더운 도심 한복판에 자전거 헬멧과 복장 등을 갖춰 입은 이승훈(40)씨가 자전거를 탄 채 나타났다. 한 눈에 봐도 '자전거 마니아'가 분명해 보였다. 문득 그가 평상시 출퇴근할 때는 어떤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는지 궁금해졌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입니다. 회사에 업무 볼 때 입는 옷은 두고 다니고 출퇴근할 때 갈아  입는 거죠. 비교적 먼 거리로 '자출(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해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출퇴근시간, 제대로 복장을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시간 여유가 있어 운동을 하는구나' 했다. 승훈씨의 설명으로 오해(?)가 풀렸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도 '자출족'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자전거를 타기는 했지만 승훈씨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7년 전부터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출사' 활동을 하게 됐고, 더욱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잠깐이긴 하지만 자전거택배도 했다.

복잡하기로 둘째가면 서러울 곳이 대한민국 서울이다. 이런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만만찮을 텐데 승훈씨는 그저 "즐겁다"고 했다.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타인 또는 기후나 환경 등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적게 쓰면서,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그가 찾은 답이었다.

"억지로, 궁상맞게 아끼기보다는... '즐거워야' 계속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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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자출족답게 오르막길쯤은 손쉽게 오른다. 승훈씨는 자전거를 타며 스스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억지로 불편하게, 금욕적으로 살기보다는 '느리면서도 즐거운 삶'이 승훈씨에게는 중요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궁상맞아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도시 속에서 수도사처럼 살 것이 아니라면, 제 자신의 즐거움도 잊어야 한다"며 "그래야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도 '지속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승훈씨에게 자전거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전거를 타며 더 많은 일상의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시간에 떠밀려 지내요. 자가용이든 버스든 그런 교통수단들이 제 시간을 통제하고 결정하지요. 하지만 자전거로는 최소한 출퇴근 시간동안만이라도 제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요. 좀 늦겠다 싶으면 내가 좀 더 빨리 페달을 밟으면 되고 좀 빠르다 싶으면 천천히 즐기면서 가고. 그리고 출퇴근 시간 자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20~30분쯤 더 빨라요."

또 다른 재미는 '보물찾기'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도로명 같은 선으로 도시를 기억한다. 그러나 자전거로 도시를 '탐사'하면, 더욱 입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 승훈씨는 자전거로 달리며 동네의 지형뿐 아니라 분위기나 특징을 새로이 발견한다. 그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여행인 것 같다"며 "그러고 보면 저는 매일 여행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자전거는 또 그를 '구두쇠'로 만들었다. "자전거를 탄 이후 집에서 쓰는 물건 가운데 사용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찾아봤어요. 냉장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실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냉장고를 항상 채워놓는다는 점이죠. 당연히 냉장고도 커지고."

그는 과감하게 냉장고부터 없앴다. 단 반드시 냉장보관이 필요한 물건은 작은 김치냉장고를 이용하고 있다. 자연스레 장을 볼 때 계획을 세우고, 가급적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재료를 사서 요리해먹는 습관이 들었다. 밥을 밖에서 사먹기보다 집에서 요리할 때가 많아지면서 '재료'도 유심히 따지게 됐다. 승훈씨는 옥상에 작은 텃밭을 꾸려 즐겨먹는 야채들을 재배하고 있다. 유산균을 이용해 요구르트도 스스로 만들어 먹는다.

다음은 냉방장치였다. 그는 지난해 여름을 우연히 선풍기 없이 보냈다. "미칠 듯한 더위" 때문에 참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에어컨이든 선풍기든 절제해 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승훈씨는 "정말 (에어컨 등을) 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나 생각해봤다"며 "더울 때는 자전거로 한강이나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고 집에 와서는 찬물에 샤워 한 번 시원하게 하니까 냉방기 없어도 그럭저럭 여름을 보낼 만했다"고 말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보니 샤워 후엔 책을 읽게 돼 제법 많이 봤다"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한국의 폭염 빈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승훈씨도 "올해는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회사에서 고장 난 선풍기를 하나 집에 갖다 두려고 한다. 타이머도 안 되고, 기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없다가 있는 게 어디냐"며 "괜히 든든해진다"고 했다.

"자전거, 여럿이 타면 더 빨라... 기후변화도 함께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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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씨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이다. 그가 친환경적 생활을 위해 자전거 타기를 택한 이유는 '즐거움'때문이다. 승훈씨는 '환경친화적으로 살아야 한다'며 무조건, 억지로 불편함을 감내하기보다는 스스로 즐거워야 한다고 믿는다. 사진은 그가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승훈씨는 자전거를 타며 목적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게 됐고 많고 거창한 것보다 작은 것,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모든 행동들의 원동력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기'라고 여긴다.

"언젠가 책 한 권을 본 후 '내가 살면서 낭비하는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꼭 필요하구나'를 느꼈어요. 혈소판과 백혈구 기증을 시작한 이유였습니다. 저한테는 어차피 남는 피니까요. 하물며 피도 이런데, 다른 물건들은 어떻겠어요."

단,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혼자선 외롭다. 승훈씨는 "자전거도 혼자 타기 시작하면 조금 타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또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실력도 잘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자전거든, 기후친화적 생활이든지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승훈씨 자신은 자전거를 택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충분하다고 본다.

"자전거는 혼자보단 둘, 셋이 함께 할 때,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앞서는 사람들이 교대로 리드를 해주고 뒤에서 받쳐주며 함께 달리면 혼자 탈때 5시간 걸릴 거리를 4시간에,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도 달릴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막고 환경을 위하고자 하는 행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나 혼자가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한다면 외롭지도 않고 목표에도 더 빨리 도달하지 않겠어요? 자전거처럼요."

자전거 타면 다리가 굵어진다고요??
마지막으로 '마음만은 자출족'이지만 쉽게 시작을 못하는 분들을 위한 조언을 구해보았다.

먼저 첫 번째, '일단은 동네 한바퀴'이다. 자출의 시작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전거와 친해지기'가 필요하다. 주말이나 시간이 될 때 가까운 슈퍼든 공원이든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다녀보기 시작해보자.

두 번째, 이제 서서히 거리를 조금씩 늘려보자. 우리 동네에 나도 몰랐던 장소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서서히 실력도 늘어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전거로 혼자 보단 다른 사람과 함께 다녀보는 것이 좋다. 서로 가르쳐주며 다녀보면 함께 실력이 늘고 중도에 포기할 확률도 줄어든다.

세 번째, 자전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비교적 먼 거리도 별 문제가 없다면 실제로 회사까지 오가는 길이 어떤지 알아보고 조금씩 겪어보자. 그래야 정확히 자출에 얼마나 시간이 드는지,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한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자전거+대중교통의 혼용으로 시작해보자. 자출이 가능한 조건이라면 실행에 옮겨보자. 자출 처음부터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할 필요는 없다. 한 주에 한두 번 출근은 자전거로, 퇴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적응해나가자. 꾸준히 적응해 나가면 자출 일수도 늘어날 것이고, 어느새 당신은 훌륭한 자출족이 되어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전거타기에 대한 오해 하나. '자출사' 게시판에도 가끔 올라오는 질문이라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혹시 근육으로 다리가 굵어질까봐 걱정이에요.' 여기에 대해 이승훈씨의 답변은 명쾌하다.

"하하. 오히려 굵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되려면 하루 중 정말 많은 시간을 자전거를 타야하거나 한두 시간 정말 시쳇말로 '토 나오게' 타야해요. 그런데 대회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아닌 이상 알반인들이 그렇게 하시는 분들 거의 없고 그렇게 하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자전거를 꾸준히 타시면 운동이 되어서 다리가 더 얇아져요. 자전거 정말 잘 타시는 분들 보면 오히려 더 날씬한 경우가 많아요"

덧붙이는 글 이은선 기자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입니다.
#굿바이 사계절 #자전거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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