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글쭈글해진 매실효소, 울 엄마 인생과 닮았다

매실, 개복숭아, 오디... 산과 들에서 거둔 각종 과실로 효소를 담갔다

등록 2013.07.01 20:29수정 2013.07.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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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매실 한 소쿠리 밭에서 마지막 따고 주운 매실 알갱이들. 어떤 것들은 벌써 쭈글쭈글해졌네 ⓒ 권성권


늦깎이 매실효소라 해야 할까? 아침에 따고 주운 매실로 마지막 효소를 담갔으니 말이다. 물론 모두 다 떨어내고 남은 보리수와 산딸기 몇 개를 곁들였다. 그것들은 매실에 다 가리는 듯했다.


아내는 매실이 맥이 없고 곪은 것 같은 게 많다고 아우성이다. 그래도 나는 그게 좋은 거라고 자꾸 우겼다. 개미가 먹은 게 아니라 제 스스로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 그렇게 된 것이니, 괜찮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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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효소 한 병은 15일 전에 담근 매실과 개복숭아와 비파와 산딸기를 섞어 넣은 효소다. 하얀 설탕으로 차 있는 병은 오늘 담근 매실과 산딸기와 보리수 효소다. 이것도 머잖아 색깔이 왼쪽 것처럼 변할까? 글쎄 모를 일이다. 내일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서 담글 테니 말이다. ⓒ 권성권


시장에 가서 8리터짜리 큼지막한 유리병을 하나 샀다. 1만2천 원이 들었고, 내친김에 마트에 들러 3리터짜리 설탕도 하나 샀다. 매실과 설탕 비율을 1대1로 맞춰야 제 격이라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으니 3분의 2는 가득찬 느낌이다.

새로 담근 매실이라 그럴까? 이 병 색깔은 완전 하얀색이다. 눈을 가득 퍼담은 것처럼 하얗다. 물론 예전 담은 효소들은 색깔이 제각각이다. 오디 효소는 검붉고, 매실과 개살구과 비파와 산딸기를 담은 효소는 황토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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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효소 제일 왼쪽은 숨쉬는 항아리에 담근 오디 효소, 중간은 흑설탕에 담근 매실, 맨 오른쪽은 흰설탕으로 담근 매실이다. 오디효소 옆에 산딸기 효소가 있긴 한데 그게 안 찍혔다. 그건 완전히 빨갛다. 이것들은 6월 초에 담근 것들인데, 그 중에 향이 제일 좋은 건 오디효소다. ⓒ 권성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모두 나 혼자는 먹지 않을 것이다. 3개월 정도 잘 숙성시켜 그 안에 든 쭈글쭈글한 열매들은 걷어내고, 진액만 빼서 여러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물론 마지막 매실을 내게 선사한 그 주인에게도 말이다.

그래도 살짝 미련이 남는다. 오늘 담근 매실효소가 아직은 흰색이고 3분의 1은 더 채워넣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 그게 좋겠다. 내일 아침 일찍 유달산에 올라 개복숭아를 한 번 더 주워야겠다. 그게 천식와 기관지에 금상첨화라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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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와 보리수 열매 매실 밭 뒤편에 마지막 남아 있는 산딸기와 보리수 열매를 거뒀다. 이것들도 함께 넣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매실에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일은 유달산에 올라가 개복숭아를 몇 개 주워와서, 이것들과 함께 잡탕식 효소를 담가야겠다. ⓒ 권성권


이러다 효소 박사가 되는 건 아닐까? 올 가을엔 쑥과 산도라지와 아카시아꽃과 민들레 효소도 담가야 할 것 같다. 지금 들어 있는 이 효소 열매들을 다 빼내고서 말이다. 지금도 쭈글쭈글한데 그땐 얼마나 더 힘없이 쭈글쭈글해져 있을까?

어쩌면 이런 게 인생이지 않을까도 싶다. 그토록 탐스럽고 알찬 열매들이 진액을 만들면서 제 몸을 삭이고 있으니 말이다. 내 엄마도 필시 이런 인생을 살았지 싶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울 엄마, 얼마 전에 뵈니 더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안쓰럽지만 자랑스럽다. 나도 그처럼 아름답게 살아야 할 텐데...
#매실 효소 #산딸기 효소 #오디 효소 #개복숭아 효소 #잡탕식 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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