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장동만(48) 씨가 딸의 사망과 아내의 사진 등을 들어보이며 피해자들이 받고 있는 고통의 현실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기태
장씨는 이날 3시간 동안 방청석에 앉아 공청회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눌러야만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의 입법을 위한 자리였지만, 환경부와 기획재정부가 입법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공청회는 두 부처 관계자와 국회의원의 공방 형태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장씨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 우릴 돕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전혀 얘기가 달라서 누굴 믿어야 할 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 장씨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3년 전 4살 된 딸아이를 잃었다. 아내는 폐이식 수술을 받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은 두 아이는 할머니 손에 맡겨 키우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감기라도 걸려 아내에게 옮길까 하는 마음에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장씨도 매일 마스크를 쓰며 감기에 걸릴까 조심하고 다니는 실정이다.
장씨는 "집안이 다 깨졌습니다. 제발 이 법을 입법해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장씨의 발언을 지켜보던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장씨를 비롯해 큰 아이를 잃은 부부, 산소호스를 꼽은 채 엄마와 함께 온 11살 피해자, 아이를 먼저 보낸 피해자 가족, 아내를 잃은 남편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방청석을 끝까지 지켰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큰 상처를 받고 돌아가야만 했다.
"피해구제법 필요하다" 한 목소리 현재 국회가 심의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은 총 4건이다.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장하나 의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법률안(홍영표 의원)', '생활용품 안전관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언주 의원)',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 등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심상정 의원)'. 이들 법안에 대해 이날 공청회에 진술인 자격으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조속히 처리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종원 한국법제연구원 사회문화법제연구실장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생존권, 환경권의 실현, 그리고 공정성의 확보 등을 고려할 때, 이들 조항이 국가로 하여금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행정적 구제제도의 마련을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과 근거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며 "현재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가 다수 존재하고 있고 종래의 제도만으로는 원활한 피해구제가 곤란함을 고려할 때,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건강손상 사이의 원인적 연관성에 대한 근거는 가습기살균제 등을 비롯한 화학물질의 관리에 대한 사회적 정책을 수립하는 것, 그리고 그 사용에 따른 건강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 등에 준용될 충분한 근거라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무고한 다수 국민이 생명과 건강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을 국가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나서서 더 이상의 생명이 쓰러지고 가정이 파탄나는 문제를 막고, 유족과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긴급구제를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