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정희'는 귀태... 맞는 말 아닌가?

[게릴라칼럼] 대통령 비하 발언 원조는 새누리당

등록 2013.07.17 11:48수정 2013.07.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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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숙석비서관회의에서 홍익표 민주당 전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 등 최근 '막말' 논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 청와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부제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 저, 책과함께)라는 책을 언급하며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라고 했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로 과거 침략사를 부정하며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아베 수상과 친일군인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하기 위한 설명이었다.

이 발언으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발칵 뒤집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인간으로 인신공격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기에다 "국민에 대한 모독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거창한 장식까지 추가했다. 결국 이 '귀태(鬼胎)' 발언으로 민주당 홍익표 대변인이 사퇴했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표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분노는 정당한 것일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 발언 원조는?  

2005년 5월 당시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정치공작에 의해 태어난 정권은 태어나선 안될 정권이고, 태어날 가치도 없는 정권"이라며 노무현 정권을 맹비난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04년 3월 한 방송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미숙아에 비유했다. 그는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에 나와야지"라고 발언한 바 있고, 같은해 6월 언론 인터뷰에서 "미숙아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상식 아니냐"며 재차 인큐베이터를 언급했다. 

'귀태'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 '태어나선 안 되는 정권'이라고 대통령을 인신공격한 원조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뭐라고 설명할까?

또한 새누리당은 문재인 의원과 이해찬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대선 불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느냐에 대한 입장, 즉 현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통령을 비판할 자유를 가진다. 정치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사실 대선 불복으로 말하자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원조다. 지난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 된 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선불복성 발언을 쏟아냈다.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2003년 7월 "과연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밝혔고, 9월에는 김무성 의원이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대놓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 역시 한나라당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으로 비하하는 '환생경제'라는 연극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이 연극을 박근혜 대통령도 함께 관람하면서 웃고 맞장구를 쳤던 것을 온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유명한 사건은 또 있다. 2003년 8월의 한나라당 당직자 회의에서의 개구리 발언이다. 이날 최병렬 대표가 주재한 당직자 회의에서 한나라당 김병호 홍보위원장과 박주천 사무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하며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인다", "생긴 게 똑같다" 등의 인신공격과 인격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제1야당, 그것도 당대표가 주재하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인신공격이었다. 2003년 6월의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원장의 '등신외교' 발언 역시 현직 대통령을 등신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신공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한 예는 또 있다. 2009년 9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한나라당 당원 교육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을 비판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든 노인'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대통령에 대한 이보다 더한 막말, 인신공격이 있을까? 이런 한나라당이 귀태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를 올스톱시키는 것은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는 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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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12일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홍익표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鬼胎)발언에 대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공식 요구하고 있다. 이 홍보수석은 "홍 대변인의 발언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귀하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생물학적인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그 인간이 공인(公人), 특히 대통령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공직자(公職者)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188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작은 국경 마을 브라우나우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난 아돌프 히틀러가 어릴 적 꿈처럼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면서 살았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총통으로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히틀러는 합법적(?)으로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그는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36.8%의 득표율로 힌덴부르크에게 패배했지만 이듬해인 1933년 제1당인 나치당의 당수로서 총리가 되었다. 다음 해인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죽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가 독일 총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선거에서 제1당의 당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쿠데타를 통하여 집권한 것이 아님에도 히틀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총통'으로 평가하는데 이견을 붙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그가 그 부모의 소중한 자식이 아니어서가 아니며, 인간으로서 그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히틀러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총통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의 생명을 잃게 했으며, 민주주의를 말살한 정치적, 사회적 삶에 대한 평가가 그렇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917년 경북 선산에서 박씨 집안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정희라는 아이의 생명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것으로 축복 그 자체이다. 그는 부모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늦둥이 막내 아들이고, 형제들에게 너무나도 귀여운 막내 동생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아이의 생명에 가치를 매겨 평가할 수 없으며, 인간 박정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라 할 수 없다.

박씨 집 막내 아들이 대구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일생을 보냈다면 그의 교사로서의 삶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있지만 정치적 삶에 대한 평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박정희'의 사회적, 정치적 삶에 대해서라면 누구라도 평가해 그 가치를 매길 수 있다.

그는 교사를 그만두고 일본에 충성혈서를 써서 바치며 일제 군대의 장교가 된다. 그리고 4.19로 만들어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총칼로 짓밟은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또한 헌법을 고쳐서 죽는 순간까지 대통령을 하면서 수많은 인사를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물론 5.16 군사쿠데타를 합리화하고 독재가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친일과 쿠데타, 그리고 독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그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 박정희'가 아니라 '대통령 박정희'는 없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귀태' 발언도 할 수 있는 평가다.

이런 평가를 받기 싫다면 친일도, 군사쿠데타도, 대통령도, 유신독재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느 누구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소중하고 어여쁜 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 박정희'와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달라야 하듯이 '딸'로서의 박근혜와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밝힌 것처럼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이 정치입문의 배경이라고 한다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지 말고 박정희 기념관 관장이나 박정희 연구소 소장을 하면 충분하다. 

정권의 정통성 시비, 누가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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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수놓은 수만개 촛불 13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3차 범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박정희 정권을 귀태라 하고, 박근혜 정부를 귀태의 후예라고 비판하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기분 좋게 들릴 리는 없다. 그러나 과연 이 발언이 청와대까지 나서서 야당을 비난하고 여당이 국회 일정을 모두 거부하며 해당의원 사퇴를 요구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박정희 정권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를 사전에 막겠다는 의도 외에는 달리 설명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대선불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입인 이정현 홍보수석이 '승복할 줄 아는 것도 리더의 덕목'이라고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난 13일 2만명이 모인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친일 매국세력, 다카키 마사오가 반공해야 한다며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유신독재 철권을 휘둘렀는데,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까지 국정원을 동원해 종북공세를 만들어 권력을 차지한 사실이 드러나면 정권의 정통성이 무너진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귀태 발언을 트집 잡으며 국정조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정희 대표는 지난 12월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도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라고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친일파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정통성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을 거론한 것에 박근혜 후보가 발끈한 것과 이번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강하게 반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통성은 스스로 강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자기 입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해야할 일은 결과에 승복하라고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경기 과정에 승부조작을 위한 부정이나 담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국민 앞에 정확히 밝히는 일이다.

현재 개점 휴업 상태인 국정원 국정조사를 시급히 정상화하여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면 그만이다. 왜 가장 빠르고 확실한 정통성 확보의 길을 스스로 막고 있을까? 이걸 막을수록 정권의 정통성 시비는 커질 수밖에 없고, 대선 무효 목소리도 잦아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귀태 #쿠데타, 박정희 #박근혜 #정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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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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