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시국선언 "배운 것과 다른 현실에 분노한다"중·고등학생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앞에서 '제헌절에 헌법정신 위배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717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철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개인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원 '셀프 개혁' 발언을 마주하며 작년 겨울의 그 체념과 허탈함의 감정이 진짜 분노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선거 조작임이 명백하나 그 증거를 안/못 잡고 있는 국정원을 향해 짐짓 준엄한 척 "스스로 개혁하라"는 대통령에게는 누가 면죄부를 주었나. 국정원의 저 '댓글 공작'의 최대 수혜자가 여직원의 인권을 그토록 걱정하던 박근혜 대통령 아니었던가.
결국 '매트릭스' 속 세상마냥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가는 정국 앞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쓰디 쓴 교훈을 곱씹는 슬픔쯤은 감수해야 할 듯 싶다. 인터넷 여론의 분열을 조장해 혁혁한 공을 올린 국정원을 수술하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그것도 대통령 선거에 불법으로 개입한 국가 정보 기관을 해체시키는 길이 "다시 광장으로"뿐 이라면 말이다.
이를 입증하듯, 7월 들어 매 주말, 수천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다시금 광장으로 나가고 있다. 일찌감치, 대학 총학생회와 교수 사회, 시민 단체들이 앞장선 시국선언도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고등학생들이 "반장선거보다 못한 대선"이었다며 시국선언을 하는 비극적 상황에도 침묵하는 주류 언론과 꿈쩍도 않는 이들을 추동 하는 방법이 '광장' 뿐이라면, 다시금 촛불을 드는 수밖에. 국가 기관이 적으로 돌아 설 때, 언로가 막혔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SNS란 무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길 뿐이라는 것을 중동의 시민들이 보여줬듯이 말이다.
잠시, 2008년과 2013년의 촛불이 왜 다른지에 대한 분석들은 잊어도 좋을 것 같다. 극우와 우파, 그리고 중도 사이에서 생물처럼 균형을 맞춰가는 현 한국사회의 균형추를 다시금 되돌리는 건 어쩌면 역사적 사명일 터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다시금 '분노'일 터다. 2000년대 이후 반복되는 '촛불'이 동어반복과 데자뷔처럼 다가올지라도, 그 현재적 의미만큼은 분명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그 물리적 힘의 가능성 또한 2008년을 통과하며 우리도 알고, 저들도 알고 있으니. 곧 끝날 여름 장마 이후 더욱 환히 밝혀질 촛불을 함께 들어야겠다. 면역에서 비롯된 허탈함과 체념, 무력감을 뒤로 한 채로, 더욱 거세지는 분노를 머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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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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