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공무원의 댓글, 역시 품격이 달랐다?

[나는 분노한다⑫] 2012년 대선캠프의 추억... '일베' 댓글에 감탄했던 사연

등록 2013.07.22 21:01수정 2013.07.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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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이른바 일베 홈페이지일간베스트 저장소 홈페이지 갈무리

2012년 겨울. 당시 나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선캠프에서 자원 봉사자 신분으로 몇 달간 일을 했다.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정책과 메시지를 고민하는 팀에 속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당시만 해도 정권이 교체될 거란 열망이 무르익던 때였고,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대선 캠프 돌아가는 모습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겠냐" 싶었다.

20-30대를 대상으로 설계한 정책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와중에 내가 틈틈이 했던 일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과 게시물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슈가 터지거나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MLB파크, 오늘의 유머 등 소위 야권지지 성향의 커뮤니티 또한 관찰과 탐구의 대상이었지만, 내가 가장 자주 들어간 공간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그러니까 '일베'였다. 어차피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만들어내는 논리를 들여다 본다고 해서 특별히 새로울 건 없다. 오히려 우리를 증오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근거와 논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베' 글 보고 좌절한 이유

일베의 존재는 풍문으로 들어봤지 별 관심이 없었지만 대선이라는 특수한 시기에 일베라는 공간을 처음 접하면서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들의 성향이 보수적이라든지, 공격적이어서가 아니다. 일베에서 생산되는 극우적 이념의 콘텐츠들이 '피상적으로' 보기에 꽤나 논리정연했기 때문이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잘 안다. 일베인들이 자부심 느끼며 설파하는 '팩트'라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왜곡돼 있는지를 말이다. 쟁점이 붙은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지표만을 활용하여 부풀려서 여론을 유도하고, 야권 성향 인물의 발언에 대해서는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문장을 잘라서 공격을 일삼았다.

비겁해 보일 수도 있지만 특별할 건 없다.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여론 형성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야권지지 성향을 가진 이들도 일반적으로 구사하는 전투 스킬이다.


장지혜

문제는 이 여론형성 스킬을 구사하는 '일베'의 전투력이 너무도 막강했다는 것이다.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보기에 정말로 '그럴싸한', 아니 '설득력 있는' 콘텐츠들이 무한정으로 생산되었다.

어지간한 정보력과 잉여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생산될 수 없는 글이었다. 고백하건대 문재인 후보 캠프에 있던 나 또한 일베의 콘텐츠에 설득 당하지 않기 위해 관련 자료를 뒤지느라 골머리를 썩었다.(정치적 입장이 어떻든지 간에 팩트는 중요한거니까.)


극우적 성향의 인터넷 논객(?)들이 풀어내는 논리의 수준에 절망하고, 이 논리가 퍼져나가면서 형성될 여론에 좌절하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대선이 치러졌으며, 결과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대선이 끝나고, 평소보다 술을 좀 더 마시는 연말을 보내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살아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지내왔다. 소시민으로 유유자적하던 시간들이 얼마나 흘렀을까. 국정원을 중심으로 새롭게 폭로된 쟁점과 사실관계들이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보수적인 성향의 게시물과 댓글을 생산하며 여론을 형성한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코너에 몰린 국정원은 국가 최고기밀 문서까지 공개하며 스스로를 비호하기에 바쁘다.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덕분에 새로운 의혹도 드러났다. 바로 국정원과 새누리당(박근혜 후보 캠프)의 유착관계 의혹이다. 박근혜 선대본부장인 김무성의원의 부산 유세 발언과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 거의 유사해 미리 그 내용을 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나저나 간신히 합의가 이루어져서 국정조사가 추진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양파 벗겨지듯 하나씩 나오는가.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대한민국의 국격과 민주주의까지 고민해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고생이 참 많은 것 같다.

분노보다는 허탈함이 앞선다

 6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는 이날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6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는 이날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청와대

국정원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되짚어보며, 새삼스럽게 작년 겨울의 대선을 떠올려본다. 일베라는 공간에서 나를 좌절하게 했던 수많은 게시글이, 어쩌면 평범한 네티즌이 아닌 국정원 엘리트 공무원의 필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검찰 수사자료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담 요원들이 일베에도 댓글을 달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내용 바로 가기: '국정원 범죄일람표' )

일베의 글을 보며 좌절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가소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야권 선거캠프의 일개 자원봉사자 따위가, 과연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하루 종일 정치적 여론을 연구하는 정규직 공무원과 비교될 수 있을까. 그간 극우적인 성향의 게시글들을 보며 '댓글알바'라고 쉽게 비아냥거렸는데 이 지면을 빌어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 앞으로는 '댓글 정규직' 혹은 '댓글 공무원'이라는 정확한 명칭으로 불러드리겠다.

'나는 분노한다'라는 기획에 글을 올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분노는 끓어오르지 않고 허탈함만이 넘쳐 흐른다. 너무 황당해서 글을 이어나갈 수 없고, 대체 어디서 분노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글로 풀어내기도 부끄러운 이 황당함이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분노인지도 모르겠다. 황당함에 분노하고, 어처구니 없음에 저항하는 대한민국의 촛불을 응원한다. 냉소가 아닌 분노를 느끼는 조직된 시민의 힘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드러내는 지표임이 분명하니까.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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