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765kV 송전탑 백지화 및 공사중단을 위한 경남공동대책위'는 지난 10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윤성효
시골에서 정겨운 모습으로, '왜 사냐건, 웃지요' 할 것만 같은 할배, 할매들이 몇 년 째 기나긴 싸움을 이어 나가고 계신다. 이 지겹도록 길고 긴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할배, 할매가 원하지 않던 엔딩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아 나로서도 답답할 노릇이다.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서울 구경도 아닌 투쟁을 위한 서울행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하다. 밀양송전탑 이야기다.
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반대하는 거 님비 아니냐고, 보상금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럼 보상금 협상을 했지, 송전탑 세우지 말라고 지중화 하라고 그러겠냐. 다만 우리는 평생 일궈온 땅, 어렵게 마련한 땅을 지키고 싶었다. 나중에 손주들 커서 시집 장가갈 때 땅 팔아서 보태줄 수도 있지 않겠냐. 그런데 이제 땅을 팔기는커녕 농사도 짓기 힘들어지게 생겼다." 할머니께서는 끝끝내 참았던 눈물을 보이셨다. 자신들을 향한 '이기주의자'라는 눈초리와 비난이 억울할 법도 하다. 한 할아버지는 힘들게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샀던 산에서 밤나무 농장을 하신다. 1년에 700~800만 원 정도를 벌어서 생계를 이어 나가고 계신데, 그 산에 대한 보상금은 고작 157만 원. 157만 원으로는 월세 보증금도 내기 어려운 세상에 이것이 보상금이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765kV 송전탑 건설은 비단 밀양의 문제만은 아니다한전은 주민들을 위해서 다양한 보상 방안을 내놓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보상 방안이라는 것이 참 현실성이 떨어진다. 철저하게 자기들의 입장에서 내놓은 보상 방안이다. 주민을 위한 보상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주민이 없다. '설비 주변지역 주민 또는 자녀 인턴채용 우대'와 같은 방안은 한전이 얼마나 안이하게 준비했는가를 보여준다. 송전탑이 '시원하게' 가로질러서 나가는 마을의 주민 대다수는 70세 이상의 어르신이다. 어르신의 자녀는 30~50대의 어엿한 기성세대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전 인턴을 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주민들이 힘들어 하는 것들은 반대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민간의 충돌, 주민과 한전의 충돌 속에서 받는 충격들이었다. 한전의 기나긴 설득과 회유와 로비 끝에 송전탑 건설에 동의한 주민들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은 아주 오래 동안 얼굴을 보고 가족처럼 지낸 사이이기도 하고, 실제로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척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어머니와 아들이 인사도 하지 않고 모른 척 지나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한전에서 내보낸 용역은 어르신에게 인격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돈 받고 떨어져 나갈 것이지 쓸데없이 반대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어차피 송전탑이 필요하다는데 딴 데 보다 여기 세우는 게 낫지 않냐고도 했다. 이런 충격 때문에 건설 현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싸우고 계신 주민들의 약 70%가량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계시다고 한다. 전쟁이나 9.11 등을 겪은 사람들의 10~30% 정도가 이런 증상을 겪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수치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765kV 송전탑 건설은 비단 밀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은 원전, 핵과 맞닿아 있다. 사실 밀양은 마을 가운데로 가로질러 간다는 엄청난 문제 때문에 이렇게 어르신들이 힘을 합쳐 싸우고 있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원 속에서, 그리고 한전의 언론에의 호도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송전선로로 전기를 보내는 시발점은 부산 기장의 신고리 발전소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같다.
밀양 문제, 단지 밀양의 것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