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로 불리던 사람, 왜 촛불문회제에 나왔나

[취재후기] 울산대공원서 26일 국정원 진실 규명 촛불문화제 열려

등록 2013.07.27 19:33수정 2013.07.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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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오후 7시부터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서 열린 울산촛불문화제에서 권필상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이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과 관련한 언론의 축소·왜곡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 박석철


지난 7월 26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노동계, 시민 등 200여명이 참가한 '국정원 규탄, 민주수호 울산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지난 28일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울산 중구 성남동 뉴코아아울렛 앞에서 열린 후 다섯번 째 열린 촛불문화제로, 이날부터 장소를 울산대공원으로 옮겼다.

이곳은 지난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울산 촛불문화제'가 매일 열리던 곳으로, 5년만에 다시 울산대공원에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그동안 야권,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주류를 이루던 참가자들 외 다소 의외의 심민들이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본인들 말대로 '먹고 살기 바빠서' 그동안 사회문제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들이다. 특히 대기업 간부로 재직하며 그동안 회사편이라 불리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이제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허물어지고 강자와 약자의 구조로 재편되어 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강요된 삶 살았다 '커밍아웃'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A씨. 그는 현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과장으로 근무중이다. 그는 그동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노조)와 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이나 노사충돌 때 구사대로 불리며 회사측 인원으로 동원되어 왔던 건부사원이다.

하지만 지난 3월 28일 현대차 간부사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자신들이 그동안 회사측으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아왔다고 커밍아웃 한 이후 사회참여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A씨의 촛불문화제 참여도 그 연장선이다.


이날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A과장은 "울산에서 재직하던 지난 20여년 동안 선택의 여지가 없이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오면서 결국 소위 보수라는 울타리에서 생활해 왔다"며 "하지만 간부사원들이 그동안 억눌렸던 속내를 과감히 드러내며 노조를 결성한 후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 7월 20일 저녁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정문에서 있었던 희망버스 때 비정규직노조 해고자들과 함께 철탑농성장 앞에서 깃대를 들고 사수대를 자처하기도 했다. 당시 비정규직 해고자 등 50여 명이 사수대로 나섰는데 희망버스 행사장 입구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대다수 사수대가 손수건 등으로 코 밑 부위를 가린 것과 달리, A씨는 맨 얼굴 그대로 사수대 맨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었다.


A과장은 "사실 보통의 시민 입장에서 볼 때,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명백한 헌법 유린이라고 생각한다"며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잘못된 권력기관의 행태를 바로잡는데 일조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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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오후 7시부터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서 열린 울산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박석철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눈에 띈 또 한 사람, 정종삼씨다. 가족과 함께 1시간을 달려 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그는 지난 6월 29일 국정원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울산의 첫 촛불집회 이후 이날까지 5차례 열린 촛불문화제에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울산 동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그는 지난 2월 홈플러스가 관할 동구청 문의에 '출점 계획이 없다'고 답한 후 SSM을 기습 개점을 한 이후 5개월 동안 SSM 앞에서 찬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와 함께 촛불문화제에 온 그는 "사실 그동안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촛불을 드는 등으로 사회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그야말로 선거, 정치에는 무관심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대기업의 횡포로 동네 슈퍼들이 문을 닫고, 우리 가게도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이 사회가 분명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며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도 똑 같은 이치다, 국가 권력기관의 횡포와 대기업의 횡포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 촛불문화제 때는 동네 슈퍼 사람들과 같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교사 "국정원 선거 개입으로 헌법 변질됐다"

26일 열린 촛불문화제에서는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권필상 울산촛불문화제 공동집행위원장(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중앙은 물론 지역에서도 대다수 언론의 보도행태는 횡포에 가깝다"며 "시민의 알권리는 제쳐두더라도 촉소, 왜곡된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 시민사회는 앞으로 이같은 언론에 대해서는 취재 거부 등의 강력한 제재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야당과 시민사회가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울산공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한 교사는 "학교의 시험 출제 때는 반드시 우리나라 헌법 1조에 관련한 문제를 내면서 학생들에게 헌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며 "하지만 국정원 선거 개입을 보고난 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이 '모든 권력은 '국가권력기관으로부터 나온다'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한편 울산촛불문화제 집행위는 오는 8월 10일 사회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이곳 울산대공원 동문광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울산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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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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