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노선표 달고 러시아 시내 달리는 버스... 재밌네

제니퍼갤러리의 '어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展

등록 2013.07.28 20:42수정 2013.07.2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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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의 생경함

한국 어느 지방 한글 노선표를 달고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내를 운행하고 있는 버스, 몽골 울란바토르의 초원 염소들과 이동하고 있는 한국자동차학원의 운전실습용 승용차, 일본 히로시마 파티장의 포천 일동 막걸리, 베트남 시골길에서 만나는 한글 휴게소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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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멀어짐이다. 낯선 장소에서 만나는 익숙함이 다시 생경함을 만들고... ⓒ 이안수


낯선 곳에서 만나는 이 익숙한 한글이 가슴에 파문을 만듭니다. 익숙한 것의 생경함. 익숙한 것은 루틴해지고, 루틴해진 것은 긴장을 유발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란 익숙한 것을 파괴하는 결과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생경함이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Concept Artist, Blum Nicolas(블룸 니콜라스)는 남한의 전방에서 바라본 북한의 산에 ''빙어낚시개장'이라는 한글을 걸었습니다. 북한의 장교이미지들을 수집해 절도 있게 각을 잡고 빨래처럼 줄에 매달고 김정일과 김정은의 사진이 걸려있을 법한 머리맡에 김치 사진액자를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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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는 에꼴데보자르의 졸업전시에 인터넷에서 구한 북한의 다양한 사진들로 북한과 남한의 군사적, 심리적 대립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구성했습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북한의 산 중턱에 남쪽의 어느 낚시터 개장을 알리는 '빙어낚시개장'이라는 단어는 정확한 남북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북한의 선전 슬로건의 압축이라 할 만합니다. ⓒ 이안수


Manon Rolland(마농 홀랑드)는 전시장에서 파티시에( pâtissière)가 되었습니다. 밀가루와 계란과 설탕을 준비하고 전시 공간 한쪽에서 몇 시간 크레페(Crepes)를 구웠습니다. 프랑스의 디저트용 얇은 팬케이크는 마침내 한 줄로 쌓아졌고 수많은 레이어가 중첩된 마천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접시를 들고 줄을 선 관객들에 의해 이 마천루는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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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크레페 퍼포먼스 ⓒ 이안수


Mathilde Fenoll(마띨드 페놀)은 수영장에서 목욕가운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곧 입수를 하고 흰 허벅지뼈로 그녀의 온 몸을 문질렀습니다. 긴 뼈는 문지를 때마다 조금씩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닳은 뼈는 부러져서 수영장 구석으로 나뒹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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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의 비누 목욕 퍼포먼스 ⓒ 이안수


블름의 합성된 이미지, 마농의 크레페 퍼포먼스, 마띨드의 비누퍼포먼스는 러시아의 거리를 달리는 한글 버스, 몽골 초원의 한글 승용차처럼 익숙한 생경함입니다.


생경함의 유효함

어제(7월 27일)일, 헤이리의 제니퍼소프트사옥에서 '어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展이 오픈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그룹인 Peru familier가 이 생경함의 유효함에 주목한 전시입니다.

이 전시에는 프랑스인 10명, 한국인 4명, 홍콩인 1명, 일본인 1명 등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16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공통점은 낭뜨에 있는 미술학교 '에꼴데 보자르 낭뜨'에서 수학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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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한국, 홍콩, 일본 등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16명 작가의 낯설게 바라보기 ⓒ 이안수


그들은 익숙한 일상의 여러 국면들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했습니다. 지루할 만큼 익숙한 것이나 보편적인 것을 '낯설게 하기'를 통해 관객들의 익숙함을 꾹 찔러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섯 가지의 송곳을 준비했습니다. 영토, 이동, 환상, 대면, 농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익숙함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마농의 크레페 만들기는 일본 히로시마 파티장에서 대면한 포천 일동 막걸리처럼 생경한 기쁨이었고 블룸의 빙어낚시개장의 조합이미지는 베트남 시골길에서 만나는 한글 휴게소 간판 같은 끌림이었습니다. 한 마을 갤러리로의 한 나절 외출은 제게 먼 여행이었습니다.

내 주위를, 내 생각을 향한 시선을 바꾸어 볼 일입니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들했던 호기심과 재미가 되살아나고 피동 근육은 서서히 피댓줄을 다시 연결한 바퀴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제니프소프트 측은 지하 수영장부터 3층 사무실까지 모든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했습니다. 계단벽에 픽쳐레일과 조명을 설치하고 사무공간의 칸막이 벽이 전시 판넬이 되었습니다. 이 낯선 시도가 낯익은 풍경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회사의 공간을 경계 없이 오픈하는 양보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휴일을 포함한 단 3일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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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의 사옥 전 공간을 전시와 퍼포먼스 공간으로 활용한 방식도 익숙한 용도의 전환입니다. ⓒ 이안수


Peu familier전시의 키워드

영토 |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고정관념과 틀이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이다.
이동 | 시선과 틀의 관계. 틀과 시선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환상 | 현실적인 기초가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 종잡을 수 없이 일어난다.
대면 | 환상과 실재의 차이에서 우리는 낯섦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이와 항상 대면하고 있다.
농담 | 모든 만남을 언제나 통찰하기는 어렵다. 이 혼란스러움이 우리에게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하고, 때로는 그 혼란스러움에 몸을 맡기는 것 역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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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전시 일정
전시일 | 7월 27일~29일(토~월)
전시시간 | 평일 AM 10:00~PM 18:00 /주말 AM 10:00~PM 20:00
전시 문의 | 전화 . 070. 7006. 9940
PEU FAMILIER | www.peufamilier.com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PEU FAMILIER #제니퍼소프트 #어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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