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치공작, 언론도 '공범'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진상규명 시국회의 회원들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앞에서 '국정원 정치공작의 공범자로 전락한 KBS·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대선개입에 분노한 수많은 국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서고 있지만, 공영방송인 KBS·MBC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등 유신독재,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주구방송' '정권의 시녀방송'으로 전락했다"며 TV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권우성
하지만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 퇴보를 실감하고 있다. 40년 전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는 현상들을 여실히 목격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여 특정 후보에 유리하도록 여론 조작을 했고, 그 사실을 수사한 경찰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국가 기관인 국정원과 경찰의 그런 행위는 국가의 기틀을 문란케 하고 국민주권을 유린한 중대 범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사건의 전반적인 실체와 연유를 파악하기 위해 국회가 국정조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당의 방해공작으로 국회 국정조사는 이상한 모양새로 매우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중도에 좌초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국정원과 경찰의 국기문란 행위에 분노한 국민들은 스스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검찰의 편향적인 수사에도 분노한 국민들은 정부와 여당의 불법적인 '물 타기 수법'에 더욱 분노했고, 국회 국정조사의 난맥상에 절망한 나머지 분노의 촛불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전국 각지의 수많은 국민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시국선언'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천주교 사제들도 부산교구를 시작으로 마산교구, 광주대교구에 이어 인천교구 사제들이 시국선언을 했고, 전주교구와 수원교구 사제들도 시국선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속한 대전교구 사제들도 현재 시국선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온 나라가 또 한 차례 크게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전혀 무관한 듯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방송매체들이다. 명색이 '공영'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방송매체들의 보도 태도를 보노라면, 어쩌면 저리 태연하고 무책임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조중동문'으로 표기되는 수구 언론들이야 태생적으로 '족벌'의 굴레를 쓰고 있으므로 과히 신경 쓸 것 없다. 아직은 특유의 조작과 왜곡 능력으로 독자들을 좌지우지하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찌라시'로도 지칭되는 종이신문들의 위력은 예전과 같지 않고 점차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다. 그들이 '종편' 방송에 목을 매고 있는 것에서도 그것의 일단을 유추할 수 있다.
공영방송... 여전히 정권 눈치를문제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다. '공영'이라는 말이 너무도 무색하다. 공영의 핵심은 '공정'과 '균형'이다. 공정과 균형을 이룰 때 공영의 가치가 살아난다. 하지만 공정과 균형을 완전히 상실한 공영방송들은 정권의 시녀로 보인다. 그들은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 경찰의 거짓 발표, 검찰의 봐주기 수사, 국회 국정조사 파행의 원인과 실상 등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전국 각계각층의 시국선언과 서울광장·청계광장을 가득 메우는 '촛불'들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국정원 사태의 동조자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진실보도를 외면한 채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측은하다. 그들은 오늘만 보고 사는 것 같다.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언제까지든 온전히 통할 줄로 믿는 것 같다. 내일에 가서는 단죄될 수도 있음을 전혀 생각지 않는 것 같은 태도다.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방송에 의존하여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얻는다. 손쉽게 얻는 정보 속에서 그들은 손쉽게 판단한다. 그래서 방송매체는 손쉽게 '대중'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진실이나 실상을 보여주지 않고, 교묘한 트릭으로 얼마든지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과거의 이명박 정권은 방송장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 물려준 가장 강력한 유산은 방송장악의 위력이다. MB정부가 물려준 그 유산 덕에 오늘 박근혜 정부는 방송매체와 수구족벌언론의 '보호' 속에서 40년 전 유신 시절로 돌아가는 이상한 회귀정책을 과감하게 실현해가고 있다.
MB정부의 방송장악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에는 대략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권 자체의 비민주성이다. 집권자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천박할 때 가장 먼저 눈을 돌리는 것이 바로 언론 통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천박한 권력자는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불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을 참지 못한다.
두 번째는 정권의 자신감 결여다. 철학이 빈곤한 권력자일수록 자신감을 갖지 못한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정책들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서도 무슨 이유에선지 과감하게 정책을 밀어붙일 때 그는 언론통제에 신경을 쓴다. 언론의 비판을 잠재우면서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명박은 집권하는 동안 언론환경을 10년 전으로 되돌리는 일에 성공했다. 수많은 실정과 악정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권의 퇴행 중에서도 방송장악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비민주적인 정권의 방송장악은 국민 대중을 오도하여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권력자 자신이 왜곡된 여론에 눈이 멀어 판단 오류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그것의 낌새를 느낀다.
정권의 언론장악은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