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있을 수 없다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에 대해서

등록 2013.08.14 14:15수정 2013.08.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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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역사 지식과 인식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한국사 수업 시수를 늘리고 수능 필수 과목으로 정해 억지로라도 역사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아이들한테 6·25는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서툰 설문조사 결과들로 청소년의 역사 인식 수준이 형편없다고 나무란 뒤끝이다. 역사 시간이 너무 적다는 소리들도 나온다. 하지만 고교 교육과정 사회탐구 과목이 11개인데, 한국사만 꼭 이수해야할 과목이다. 더욱이 초등학교 5학년에 이어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한국사와 역사 시간은 255시간이다.

경제 같은 과목은 스무 시간 남짓 공부하는 것에 대면 엄청난 수업 시수다. 그런데도 청소년의 역사 지식이나 인식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자 지난 7월 10일 박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실장 간담회에서 "수능으로 딱 들어가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에 불길을 당긴다. 이어, 지난 8월 7일에는 "편협된 자기 생각을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굉장히 위험하고 잘못하면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라며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교육부는 8월 8일 한국사 수능 필수화를 결론으로 먼저 내려놓은 '역사교육 강화 방안 토론회'를 짜 맞추기로 열고 12일에는 당정협의를 거쳐 2017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한국사를 필수로 할 방침이란다.

아마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한국사 수능 필수로 역사 교육을 잘해보겠다는 데 말릴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지만, 정작 해법은 역사교육을 '많이'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로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야만 한다. 곧잘 수능응시자 가운데 세 과목까지 선택할 수 있는 사회탐구 응시자 대비 국사 응시비율이 12.8% (2013학년도 기준)로 낮은 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응시 비율이 낮은 까닭은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는 숱한 역사 사실을 나열하고 암기하라는 식으로 역사 수업이 재미없게 이루어진 탓이 크다. 거기에 공부할 분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한몫을 한다. 어찌 보면 1~2점으로 합격이 갈리는 시점에서 공부할 분량이 적은 과목을 고르는 게 수험생으로선 지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으로 하자는 주장 그 밑바닥 생각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수능 필수를 주장해온 사람들은 현대사에서 5·16군사정변을 군사혁명으로 바꿔 말하고 헌법질서를 어지럽힌 유신을 옹호해 오지 않았는가. 박 대통령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역사'는 도대체 어떤 역사를 말하는지 궁금하다. 돌이켜 지난 정부에서 역사 논쟁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2008년인가 교과서포럼은 대안 역사교과서를 내놓는다.

교과서포럼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고 10월 유신을 합리화하던 단체다. 이에 박 대통령은 대안 역사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 "필자 여러분이야말로 후손들을 위해 큰일을 하셨고, 덕분에 걱정을 덜게 됐다"고 한다. 그해 말에는 교과서포럼과 통일부 등은 금성교과서가 좌파적 편향이 심하다고 지적했고 교과부는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일도 있다. 2011년 교과부는 역사 교육과정을 바꾸면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집필 기준에서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5·16 군사정변 같은 현대사들을 빼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자나 글쓴이 한 사람 생각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교과서는 드러난 역사 사실과 교과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추구하는 책이다. 철저히 교과교육과정과 검정교과서로 하는 역사 수업을 두고 '편협된 자기 생각을' 가르치는 수업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사 교육 강화를 말한다면 그 다음 일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수능 필수화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안은 역사 교육을 제대로 하기보다 오히려 왜곡시키고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역사 사실을 '주입'하고 '암기'하는 과목이 되어 흥미를 잃고 기피하는 과목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게 우리 청소년들이다. 2006년 기준으로 학교수업을 포함한 고교 1학년 학습 시간을 보면 OECD 평균은 1주일에 35시간이지만 우리나라는 무려 50시간이나 된다.

역사 교육은 지난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순한 역사 사실을 아는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어떻게, 왜 일어났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피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뒷날을 이끌어갈 비판의식이 있는 시민을 키우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암기 주입식 교육으로 그런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넓게 생각하면 역사 교육은 정치 교육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 말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뼈아픈 말이 되어야 한다. 전쟁 범죄를 몰라라 하고 망언을 일삼는 일본정치인이나 그런 사람한테 표를 몰아줘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힌 이웃나라 사람들한테 할 말만은 아니다. 정당성을 얻지 못한 역사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건 우리 역사가 더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다. 제발 교육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열어 충분히 들어주기 바란다.
#역사교육 #수능 #필수과목 #청소년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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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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