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티프원을 방문한 니꼴라 일행과의 한담
이안수
길 위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지난 7월 29일, 제니퍼소프트에서의 전시 '어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展이 끝나는 때에, 프랑스에서 온 일군의 작가들이 모티프원을 방문했습니다. 서재에서 우리는 흉금을 털어놓는 한담을 즐겼습니다. 그 때 친구가 된 니꼴라(Blum Nicolas)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다음 주 헤이리에 다시 갈 예정인데 선생님과 수다를 즐길 짬이 허락될까요." 그제(8월 14일) 오후 니꼴라가 모티프원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호주친구와 벨기에 친구와 함께 왔어요. 그들과 함께해도 될까요."그들을 집 밖에 세워두고 함께 방문해도 좋을 지를 물었습니다.
바깥은 몇 일째의 폭염이 이어졌습니다. 집으로 들어온 그들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있었습니다.
"차와 커피 그리고 물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서재에 앉히고 의향을 물었습니다.
"물이요."그들은 이미 땀을 흘린 뒤라 갈증이 심한듯했습니다. 큰 페트병 물과 컵을 꺼내놓자 모두가 두어 컵씩 들이켰습니다.
"지난번 니꼴라와 함께할 때 우리는 지리산의 봄 산야초 100가지 새순으로 만든 백초차를 마셨지요. 하지만 제일 완벽한 것은 물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와 커피라고 하더라도 물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물은 하늘이 만든 것이지요. 마시는 것들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은 물입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음료도 마시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습니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은 물이라고 했습니다." 막 갈증을 푼 그들은 물에 대한 장황한 제 설명을 특별한 느낌으로 주목했습니다.
가장 좋은 여행계획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 2달쯤 예정으로 한국에 온 니꼴라는 그동안 머물렀던 지인의 집을 떠나 홍대인근의 '크로스로드 백팩커스'라는 게스트하우스로 옮겨서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한 친구들은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지내는 곳도 모두 달랐지만 누군가가 방문할 좋은 곳을 제안하면 이렇게 함께 방문하기도합니다.
금방 친구가 되고, 가진 정보와 소스를 서로 나누는 이들을 보자 제가 세계의 뒷골목을 떠돌던 backpacker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객지의 배낭여행객들은 이렇게 서로 섞여서 가진 정보와 경험을 나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모티프원의 방문은 니꼴라가 주도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온 제럴드(Gerard Vasta)는 한때 축구선수였고 여전히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각국을 다니며 경기를 보고 그 경기를 즐기는 관중들의 양태를 관찰하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경기의 스타일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양상만으로도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와 성격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경기를 보았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온 윌(Will Neal)은 직장을 다니다가 여행에 나섰습니다. 호주에서 가장 예술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멜버른의 분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시드니에서도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멜버른으로 이주한다고….
두 호주 젊은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부산․경주․안동을 여행하는 동안 경주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도 계속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입니다.
벨기에서 온 톰(Tom Dobbels)은 대만,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습니다. 1년 남짓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데 여동생이 출산할 예정이라서 그때쯤 벨기에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 여동생이 출산하는데 왜 오빠가 돌아가야 되나요?"여동생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남자친구와는 결혼을 생각중인데 그래도 중요한 일에 가족이 함께 있어야하니까요."
낙천적인 성격의 톰은 여행스타일도 그랬습니다.
"한국은 완전히 제게 또 다른 우주입니다. 제게 지금까지 경험한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에요." 동양을 처음 여행하는 그에게 서울은 신세계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그는 매일의 일과를 계획하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오늘 어찌 알겠어요. 저는 그날그날 제게 일어나는 일들을 즐깁니다. 다음에 한국의 어디를 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저도 톰의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맞아요. 이렇게 혼자 하는 여행의 경우, 가장 좋은 여행계획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 도시를 방문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두었는데 오늘 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쩌겠어요?" 니꼴라에게는 그동안 남한을 경험한 생각들을 물었습니다.
"남한을 경험할수록 'chaotic(혼돈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연한 체계가 있기는 한가 싶은…. 10년 뒤에는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요." 이번 전시에서 북한의 기묘한(weird) 상황을 웹에서 수집한 북한의 사진을 새롭게 배열하고 가공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현실을 표현했던 그에게 남한은 또 다른 모습의 북한처럼 '기묘한'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외국교포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재미없는 천국',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니꼴라도 이미 이것을 간파한 듯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