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뭔 사내가 그러코롬 갑갑하고 꼬꼽한지..."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52) #14. 구미 ③

등록 2013.09.27 15:54수정 2013.09.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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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의 스타 마르린몬로가 한국의 전방을 찾아서 USO Camp Show를 펼치고 있다(1954. 2. 17.).
20세기의 스타 마르린몬로가 한국의 전방을 찾아서 USO Camp Show를 펼치고 있다(1954. 2. 17.). NARA, 눈빛출판사

가축병원

"잘 먹었습네다."
"맛있게 잡수셔서 좋소."
"기럼, 건너가겠습네다."
"편히 주무시소."


준기는 행랑채로 건너왔다. 밤도 깊었고, 음복술까지 마신 탓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도 제사 뒤끝이라 밥상이 푸짐했다. 준기는 대청에서 김교문과 겸상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그래, 간밤에 깊이 생각해 봤습니까?"
"……"
"어디 꼭 갈 때가 없다면 우리 고장에서 당분간 나 좀 도와 주이소. 우리 가축병원에 있다가 더 좋은 데 일자리 생기면 그때 떠나시고. 김 씬 전생에 나하고 무슨 인연이 있으니까 그 먼데서 우리 집을 다시 찾아온 것 아니오."
"저두 기런 생각이 듭네다. 우선 당장 마땅히 갈 곳두 없구, 가축병원 일이라구 하니 군대에서 배운 기술 써먹을 수두 있가시오(있겠습니다). 긴데 내레 모르는 게 많습네다."
"아무래도 가축병원은 일반병원보다는 수월할 거요. 그럼, 아침 먹은 뒤 나하고 같이 우리 가축병원으로 갑시다."
"저를 받아주셔서 고맙습네다. 모르는 디식이 많으니께 잘 알쾌주시라요."
"그건 배우는 사람은 자세이고, 열정이오. 눈썰미있게 배우시오."
"알가습네다. 열심히 배우디요."

준기는 아침상을 물린 뒤 김교문 수의사를 따라 떠날 차비를 했다.

"아이고 얄궂어라. 간밤에 우리 영감이 귀한 사람을 보내준 모양이다. 이게 다 영감 음덕이다."

인동댁 할머니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아주 반색으로 반가워했다.


"이 고장 인심이 괘안을 겁니다. 지는 김치랑 밑반찬을 마련해 자주 병원으로 갈 겁니다. 또 봅시데이."

김교문 부인 장숙자가 대문 밖까지 따라 나오며 살갑게 전송했다. 김교문은 자전거를 타고 김준기는 그 자전거를 뒤따르며 구미장터 가축병원으로 향했다.


"자전거 탈 줄 알지요."
"예, 내레 학교 다닐 때 많이 타시오."
"당분간 이 자전거를 같이 탑시다. 이 동네 저 동네 왕진 갈 때 아주 요긴합니다."
"예, 기러디요."

형곡동에서 구미장터 가축병원까지는 십리 길 정도로 한 시간 거리였다. 장터로 가는길에는 공동묘지도, 고갯길도 있었다. 가축병원은 구미 원평동 방천 밑 외진 곳에 있었다. 병원 건물은 초가지붕으로 일반 가옥보다는 서너 배 컸다. 건물 내에는 한편에 도살장 겸 가죽공장도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돼지와 소 축사도 있었다. 그 돼지와 소들은 종돈(種豚, 씨돼지)과 종우들이었다. 마침내 준기는 당분간 정착할 곳을 구미에서 찾았다.

 미군 부대에서 지내는 두 소년, 그 무렵에는 이들을 ‘하우스보이’라고 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미군에게 입양되어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였다(전주, 1951. 3. 1.).
미군 부대에서 지내는 두 소년, 그 무렵에는 이들을 ‘하우스보이’라고 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미군에게 입양되어 태평양을 건너기도 하였다(전주, 1951. 3. 1.).NARA, 눈빛출판사

구미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구미는 인구 일만 명 남짓한 자그마한 면소재지로 보통급행열차도 서지 않는 가난한 시골이었다. 구미 면민들은 대부분 농사꾼이었는데, 해마다 반복되는 가뭄과 낙동강이 넘치는 홍수로 피땀 흘려 애써 농사를 지어도 세 끼 밥 먹는 집은 드물었다.

해마다 봄철이면 가뭄으로 모내기가 힘들었고, 여름철에는 안동 처녀가 낙동강에다 오줌만 눠도 홍수가 진다고 할 만큼 잦았다. 그런 만큼 해마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됐다. 비가 며칠만 내려도 낙동강이 범람하여 애써 지은 농작물을 강물에 다 떠내려 보냈다. 그러다가 가뭄이 조금만 계속 되면 논바닥은 거북 등처럼 좍좍 갈라졌다. 이러다 보니 농사꾼들은 늘 하늘을 쳐다보며 그해 풍년을 빌면서 살았다.

구미 면민 대부분은 의식주 중, 어느 것 한 가지도 넉넉한 게 없었다. 입은 옷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먹는 음식도 조악하여 하루 한두 끼니는 밥보다 죽이나 국수, 호박범벅 등을 먹었고, 밥에도 곡물을 아끼려고 무나 콩나물을 넣거나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걸 넣어 대용식으로 먹었다. 심지어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거르고 난 뒤에 남은 술 찌꺼기로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도 많았다. 사는 집은 거의 대부분 초가집이었는데, 그나마 한국전쟁으로 반 이상 불타버리거나 허물어져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복구치도 못했다.

그 무렵 취사와 난방은 모두 나무로 하다 보니 언저리 산은 대부분 나무가 없는 붉은 민둥산이었다. 해마다 나무를 심어도, 그 나무가 자라기도 전에 뿌리까지도 캐어다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이 고장에는 금오산이 있었기에 언저리 사람들은 그 산에서 나물을 뜯어 봄철 보릿고개도 넘기고, 나무둥치를 베다가 장작도 마련하여 살림에 보태고, 한 겨울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구미사람들에게 금오산은 먹을 것과 땔감은 주는 보배로운 산이었다.

이렇게 가난한 고장이다 보니 가축병원을 찾아오는 이는 별로 없었다. 사람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참고 견디는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나 돼지가 웬만큼 아파도 찾지 않았다. 그래서 가축병원에서는 종돈과 종우를 길러 교배를 시켜 주고 수입을 올리거나 인근 도축장에서 소 껍질을 모아 약품처리를 하여 가죽가공으로 병원을 운영해 갔다.

 금오산
금오산박도

과수댁

가축병원에서 김준기의 일은 쏠쏠했다. 수의사 조수로 가축치료 일보다 소나 돼지 먹이는 일과 소가죽 만드는 일, 종돈 종우 교배시키는 일 등으로 매우 바빴다. 준기는 자기 일이 고되다고 불평불만 한 마디 없이 일만 하자 수의사 김교문 씨와 동네사람들은 그에게 '황소'라는 별명을 붙였다.

생활력이 강한 이북 출신에다 총각인 김준기의 출현은 구미장터 마을에 자그마한 화제였다. 특히 마을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처녀들 쪽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흔들어도 준기가 곁눈을 주지도 않자 처녀들은 바짝 더 몸이 달았다. 처녀들뿐 아니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멸치와 대소쿠리를 파는 젊은 과수댁이 여러 차례 노골적인 추파를 던져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어느 날 비 오는 한밤중에 준기가 혼자 잠자는 방문을 두드렸다.

"누기요?"
"저라예. 남해 며루치(멸치) 아지매…."
"이 밤둥에 웬일이우?"
"잠 잘 데가 없어 왔지."
"딴 집에 가 보시라요."
"사실은 그게 아니고, 오죽이나 내 가슴에 불이 났으면 이 밤중에 김 씨를 찾아왔겠노. 김 씨, 내 가슴에 붙은 불을 좀 꺼도.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다.
"……"
"김 씨, 오늘 하룻 밤만 꼭 재워도."
"……"
"김 씨, 그 좋은 주사 솜씨로 내 사타구니에도 야무지게 한 방 나도."
"번디(번지)를 잘못 찾았구만요."
"아따, 김 씨, 참 모지다. 이 한밤중에 사내가 개구멍오입 한 번 하는 건 보리밭에 오줌 누기요, 나는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린 기라."

소문

며루치 과수댁은 준기의 방문을 다짜고짜 열고 들어갔다. 그날 밤 준기는 며루치장수 아지매의 육탄공세를 견디지 못하다가 마침내 자기 방을 뛰쳐나와 창고에서 잤다. 그 며칠 후 구미 장터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자고로 열 계집 싫어하는 사내가 없다카는데, 가축병원 김 조수는 제 발로 굴러온 계집도 거들떠보지 않는 게, 아무래도 여자 밑구멍을 보고도 좆이 서지 않는 고자인 모양이데이."

그 소문은 동네 아낙들의 눈동자를 동그랗게 만들었고, 금세 장터마을을 휘돌아 구미 면내 각 마을까지 돌았다. 세상인심이란 요상했다. 그 소문에 김준기에게 꼬리치는 처녀나 과수댁이 부쩍 더 늘어났다. 그러자 대소쿠리 장수 담양댁도 이참 저참 김준기에게 여러 번 추파를 던지다가 어느 날 밤 본격으로 뛰어들었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오매, 뭔 사내가 그러코롬 갑갑하고 꼬꼽한지…, 참말로 미치고 환장하것소잉."

두 과수댁이 흘린 이야기로 가축병원 김 조수는 고자라는 둥, 배냇병신이라는 둥, 과장된 유언비어가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그 이야기는 어려웠던 그 시절 조그만 고을의 아녀자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한때 빨래터를 즐겁게 했다.

 한 아낙네가 젖가슴을 드러낸 채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시냇가로 가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까지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한 아낙네가 젖가슴을 드러낸 채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시냇가로 가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까지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NARA, 눈빛출판사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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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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