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이 동구 밖에서 놀고 있다. 전쟁 중 헐벗고 굶주린 소녀들이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다(원산, 1950. 10. 31.).
NARA, 눈빛출판사
동네아이들 잔칫날김준기가 가축병원 일에 익숙해지자 김교문 수의사는 병원 일은 조수에게 대부분 맡긴 채 대학원 수강과 박사학위 논문 준비에 골몰했다. 그는 무섭게 공부하는 늦깎이로, 쉬는 시간에는 틈틈이 동네 이웃 아이들과 장기도 두고, 때로는 중학생 아이들과 영어 단어 외기 시합도 하며,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호인이었다.
가축병원 도살장에서 돼지 잡는 날은 동네 아이들 잔칫날이었다. 그날 아이들은 고기도 한 점 얻어먹을 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돼지오줌통을 얻어 그것을 축구 볼로 삼아 가축병원 마당에서 동네축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무렵 장난감이라곤 구슬이나 차치기, 탄피밖에 없었던 시골아이들에게 돼지오줌통 축구볼은 가장 신나는 노리개였다.
김준기는 구미가축병원 조수시절에도 해마다 8월 15일이면 서울을 다녀왔다. 구미역에서 용산행 밤 군용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 서울로 갔다. 이튿날 서울시청 앞 덕수궁 대한문을 하루 종일 지키다가 그날 밤 용산 역에서 다시 군용 완행열차를 타고 구미로 돌아왔다.
"김 씨, 이제 그만 서울아가씨 잊자 뿌리고 여기서 참한 색시한테 그만 장가 가소."가축병원 뒷집에 살았던 정길 어머니를 비롯한 마을 아낙들은 준기의 전후 사정을 알고 안타까운 나머지 이따금 밥과 술 대접을 하면서 아픈 마음을 위로했다. 하지만 준기는 늘 묵묵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