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전 우리에겐 지도자 선택권이 없었다... 혹시 지금도?

[리뷰]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을 읽고

등록 2013.08.20 10:24수정 2013.08.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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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책표지. ⓒ 예옥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스무살엔 몰랐던 대한민국'이 아니라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스무 살'과 '내'자 옆에 찍혀 있는 빨간 꽃문양도….

'나처럼 촘촘하고 깐깐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어찌 다 읽었을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의 경쾌한 느낌 때문에 그 내용도 재미있을 줄 알았다. 또 책을 봄에 출간하다보니 디자인을 그렇게 했던가보다 하는 단순한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용도 쉽게 머릿속을 파고들지 못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도대체 '이숲이란 작가는 스무 살에 뭘 몰랐고, 이젠 뭘 알게 된 걸까'하는 호기심과 애국심(?)으로 시작된 책 읽기는 그만큼 시작이 어설펐다.

우리나라 명문대 출신이고 유럽의 명문대 출신이며, 또 우리나라의 유명대학에서 강의까지 하는 교수의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좀 까칠했던가. 사족이지만 저자가 엄친녀다.

필자는 이 책을 읽기 두 달 전 현충일을 맞이하여 이덕일 선생의 역사평설 <근대를 말하다, 2013년 6월, 역사의 아침>를 읽었기에(공교롭게도 이 책과 저책이 한 달 간격으로 출간되었다) 작문의 스타일과 백 년 전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는 눈이 같은 듯 다른 이숲의 책을 좀 더 비판적으로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을 벽안의 눈으로 조명해 보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하는 호기심과 거부감이 공존하고 있었던 걸까.

책 읽기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읽을거리가 풍부해서였을까? 사진도 보고 영국,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출신들 이력들까지 세세히 소개한 대목들까지 읽다보니 어느새 책 속에 흥미롭게 빠져들었다. 영국 화가 '새비지 랜도어'가 그린 '상투 튼 한국남성'에서는 백 년 전 서민들의 강인함을 봤고, 영국 제국주의의 아들 '조지커즌'의 사진 속 표정에서는 훤한 이마와는 다른 속 좁고 저만 아는 좀생이의 모습을 본다.


198페이지의 어린 조선의 관기들 사진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열 살이나 넘었을 당시 우리의 딸내미가 머리에 자기 몸 크기 만한 가채를 이고 서있는 그 표정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의 전령들은 미지의 나라 '조선'을 찾아 배를 타고 찾아 들었다. 일본과 중국을 거쳐서 말이다. 우리나라를 염탐하거나 선교 목적으로 아니면 제국주의 시각으로 이권에 개입하기 위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든, 그저 여행이든 우리나라를 찾은 이유가 뭐가 됐건 우릴 찾아 든 벽안의 제 3자들에게서 당시 대한민국의 안위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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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깍이로 스웨덴 유학을 하면서 그 나라 여성들의 평등주의와 따뜻한 인간애에 감동했다는 저자 이숲 ⓒ 예옥


'커즌은 세계의 패권을 쥐고 흔드는 영제국의 인도성 차관이었고 1898년에는 인도 총독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말하듯 이런 인간들이 설명하는 백 년 전 우리민족은 요즘 하는 말로 이른바 '루저'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메킨지가 '기회만 주어지면 뭐든 할 수 있는 우수한 민족'이라고 추켜세워도 공허하다. 우리 민족은 지혜롭고 조상을 섬기며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 하는 여느 유럽, 미국, 여타 다른 나라들의 선한 민족들과 같은 장점과 이런 저런 단점을 똑 같이 가지고 있는 그저 인간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904년 러일전쟁을 일본이 승리로 이끌면서 사실상 우리의 국운은 일본에 의해 유린되기 시작한다. 뼈아픈 대목이다. '1905년 일본의 보호통치의 전조를 느낀 고종은 일본의 압력을 막아줄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는 저자의 설명에서 우리의 순진한 고종이 한심스럽다. '한일수호통상조약'을 믿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지만, 을사조약 이전에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 테프트 조약을 맺어 필리핀과 한국을 각각 점령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갑오개혁을 이끌었던 급진개화파 김옥균과 온건개화파 김홍집까지 모두 죽여 버린 고종의 업보가 을사늑약'이라는 이덕일 선생의 설명을 생각하면 그 안타까움이 배가 된다. 일왕 메이지와 1852년 동갑내기인 고종의 치세 44년이 어떠했는가를 면밀히 살펴 평가해야 할 이유다.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의 저자 이숲 선생도 고종의 고문으로 있었던 미국의 윌리엄 샌즈의 말을 인용해 '국민들에 대한 관대하며 일관된 정직한 통치가 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더라면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민족으로 육성되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제 벽안에 비친 우리나라 서민들은 어떠했는지 볼 차례다. '나는 아주 화난 어느 부인이 잘 묶여진 장치(상투)를 잡고 살롱에서 취한 그의 남편을 집으로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언더우드)'는 당시 우리나라 어떤 여성의 모습에서 현재의 아줌마를 발견한다. 밥 짓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남편의 재털이를 갖다 바치고 숭늉을 떠다 바치는 수고로움을 아무런 불평 없이 하지만 '가정에 근본적 위기가 닥치면 우리의 여성들은 배의 키(상투)를 잡고 그 방향을 틀어야 했다'는 언더우드 여사의 설명에서는 무릎을 탁 치는 동의하게 된다.

저자의 종교에 대한 설명에도 수긍이 간다. '유교는 너무 현실적이고 불교는 너무 철학적이어서 합리적이고 신비스러운 면을 동시에 갖추고 있던 기독교가 냉정과 열정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의 기질을 사로잡았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또한 같은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이었어도 커즌과는 달리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은 <코리아 데일리뉴스>의 한국판<대한매일신보>에서 우리의 의병활동과 일본의 토지 점탈 음모를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고 했다. 일본의 회유에도 굽히지 않았던 베델은 옥살이까지 해야 했고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뜨기까지 했다는 설명에는 숙연함을 금할 수 없다. 오늘날의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지 않을까. 연일 이어지는 '국정원 규탄 촛불시위'에 대한 메이저 언론사들의 노골적 보도 회피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두고 볼 일이다. 문화방송, 한국방송, 뉴스전문채널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언론들이여! 우리의 소식이 외국에서 기사가 먼저 퍼져 나가는 망신을 당하지 말기를 제발 부탁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이한 한국은 '데라우치 마사타케'총독이 "한국인이야말로 집어삼켜 씨를 말려야 할 민족"임을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때 나찌가 유태인을 대한 태도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나 '독일은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들과 그 자녀들에게까지도 보상하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에서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신사참배를 하고 있는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조가 약하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에 묵묵부답하고 있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혹시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야말로 집어삼켜 씨를 말려야 할 종북주의자들'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계시지는 않은지 우려하게 된다. 우리민족 특히 서민들의 삶에 애착이 컸던 '메킨지'라면 지금 상황을 뭐라고 할까?
덧붙이는 글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 이숲 (지은이) | 예옥 | 2013년 6월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예옥, 2013


#이숲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경술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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