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상실의 아픔을 떠올리며...

'가로림만의 노래'를 위하여

등록 2013.08.22 15:04수정 2013.08.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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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풍경 천수만 B지구 안에 있는, 옛날에는 섬이었던 '검은여' 또는 '뜬바위'에서 찍은 가을 저녁 풍경이다. 이 고즈넉한 풍경도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현재 B지구 안에 '기업도시'가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 지요하


충남 홍성과 서산과 태안을 잇는 천수만 제방 길을 달릴 때마다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을 한다. 이 길이 바다를 막아서 생긴 제방 길이 아니고 바다 위를 지나는 다리길이라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할수록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천수만이라는 바다를 그대로 살려두고 그 위에 다리를 건설했다면 관광명품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천수만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해상다리, 그것 자체로 빼어난 관광명소가 되지 않겠는가!

한반도 최고의 어족 산란장, 천혜의 황금어장이었던 천수만을 상실해버린 아픔을 상기하면 한없이 억울하고 암울하다. 30여 년 전 환경에 대한 인식과 주민의 주권의식이 일천하여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천수만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을 두고두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천수만 간척사업이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은 늦게나마 거의 보편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1985년 가을 경향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정경문화>(후에 <월간경향>으로 바뀜)의 청탁을 받고 천수만 간척사업에 관한 총제적인 르포를 쓴 적이 있다. 원고지 100매에 달하는 그 글은 <정경문화> 1986년 신년호에 <현대, 서산 땅 정복하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수산자원의 보고인 천수만의 상실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비합리적인 보상 실태들을 심층적으로 담아내었다. 그 글을 쓴 연유로 나는 천수만에 대한 애착과 회한을 더욱 크게 지니게 됐다. 

나는 최근 <그리운 천수만>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세 번째 시집이자 두 번째 목적시집인데(전체적으로는 열세 번째 저서), 고장의 <태안문학회>에서 만들어 헌정해준 의미 있는 시집이다. 굳이 목적시집이라는 꼬리표를 단 것은, 이런저런 행사들에서 낭송했던 축시와 헌시들을 모으고, 여기에 1990년대 지역잡지 <갯마을>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했던 <그리운 천수만>이라는 연작시 12편을 얹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고장의 정신문화와 문예마당을 위해 땀흘려온 내 노고에 보답하고자 등단 30년과 <태안문학> 제30호 출간을 결부시켜 <태안문학회>에서 만든 기념문집이지만, 내가 굳이 소설집이나 산문집을 피하고 시집을 선택하면서 표제로 '그리운 천수만'을 채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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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태안반도를 형성하고 있는 충남 서북부의 가로림만 항공사진이다. 서산시의 대산읍, 지곡면, 팔봉면과 태안군의 태안읍, 원북면, 이원면이 가로림만을 싸고 있다. ⓒ 충남도


나는 오래 전부터 '가로림만'을 의중에 담고 있었다. 가로림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내 안에 있었다. 가로림만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기도 했다. 가로림만의 어귀를 통째로 막아 댐을 만들고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이른바 '개발귀신'의 획책을 목도하게 되면서 천수만 상실의 아픔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로림만은 태안반도를 형성하고 있는 또 하나의 만이다. 남쪽의 천수만보다 훨씬 큰 만이고, 태안반도뿐만 아니라 서해안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만이다. 우리는 예전에 천수만과 남양만을 잃었고, 아산만의 일부를 잃었으며, 얼마 전에는 새만금도 잃었다. 일제가 작은 만들을 거의 농토로 만들었고, '개발귀신'에 사로잡힌 우리 정부는 무제한적으로 대단위 간척사업을 벌여 수산자원의 보고이며 바다 생태의 요람인 거대 만들을 육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세계에 자랑할 만한 만(灣) 형태의 대단위 갯벌은 이제 가로림만만 남게 됐다.


그런 가로림만마저 조력발전이라는 이름의 개발귀신에 먹혀 갯벌의 생태기능이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거대 댐으로 바다가 막히면 댐 안의 바다는 정상적인 순환이 정지되고 갯벌의 생태기능이 마비됨으로써 그야말로 죽은 바다가 된다. 댐 안에 물을 가두었다가 썰물시 낙차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조력발전을 얻는다는데, 수심 상승으로 말미암아 160km 가로림만 갯벌의 3/2를 잃게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로림만 바닷물의 정상적인 순환이 가로막히는 순간부터 바다의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계 기준으로 조력발전은 친환경에너지가 아니다. 바다의 생태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도 크다.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쓸모가 없어진 경기도 시화호에 억지로 만든 시화호조력발전소 외로는 지난 50년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조력발전소가 건설되지 않았다. 우리보다 조력발전의 여건이 좋은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조력발전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 그만큼 바다 생태 보존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기를 쓰고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쪽은 당연히 전략생산의 중요성을 적극 주장하지만, 가로림만 조력발전소에서 얻는 전력은 한국서부발전의 태안화력에서 생산하는 연간전력량의 2.7%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의 전력을 얻기 위해 가로림만의 입구를 댐으로 막아 환경파괴를 자행한다는 것은 소탐대실의 전형이 될 수밖에 없다.

가로림만은 2005년 해양수산부 조사 결과 우리나라 갯벌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으로 밝혀졌고, 2007년의 환경가치평가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전국 1위로 판명된 곳이다. 또한 2007년 12월 해양수산부의 연구용역 결과 환경비용을 포함하면 비용 대비 편익이 0.81배에 불과할 만큼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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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이화산에서 바라본 가로림만 일부 풍경이다. 전국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가로림만 어귀에 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바다생태의 요람인 갯벌의 3/2가 사라진다고 한다. ⓒ 지요하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쪽은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고 막대한 물량까지 사용하여 어민들을 회유하면서 어민들 간의 극심한 갈등과 적대감마저 유발시키고 있다. 상당수의 어민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보상' 쪽으로 눈을 돌리는 양상도 나타나지만, 보상이라는 것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상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가로림만은 일차적으로 어민들 생업의 터전이지만, 결코 어민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로림만을 끼고 사는 서산과 태안지역 전체 주민들의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환경 자산이다.

이런 사실에 기초하여 최근 어민들과 함께 지역주민들뿐만 아니라 생태환경 보존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뜻있는 이들이 가로림만을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한 '가로림만생태문화협동조합'을 결성하였는바, 이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첨언 : 내가 최근 목적시집 <그리운 천수만>을 펴낸 것은 '가로림만의 노래'를 위해서이다. 기필코 '그리운 가로림만'이라는 시를 짓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계속적으로 '가로림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한 뜻으로 오늘 '그리운 천수만'을 노래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 #천수만 #생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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