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박씨가 텀블러 18개 모은 까닭

'종이컵 대체재'로 주목받던 텀블러, 이렇게 진화했다

등록 2013.08.24 13:50수정 2013.08.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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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3900원입니다."
"아, 제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네. 그럼 3600원입니다."

번화가의 한 카페 안. 음료를 고른 기자가 가방에서 휴대용 텀블러(뚜껑을 닫을 수 있는 원통형의 컵)을 꺼내 내밀자, 직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300원 할인된 가격을 부른다. 몇 분 뒤, 주문한 음료가 텀블러에 담겨 나왔다.

종업원이 하얀 도기 커피잔에 음료를 담아주던 '다방 문화'나, 다 쓴 뒤 쉽게 버리는 종이컵 사용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컵을 준비한 손님'을 만나는 것은 꽤 흔한 일이 됐다.

지난 20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한 카페에서도, 개인 컵이나 물병에 음료를 받아오는 손님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밀폐 뚜껑이 달린 텀블러에 음료를 받은 최아무개(23·여)씨는 "텀블러에 음료를 받으면 (음료)가격을 할인해주는 곳도 많고, 뚜껑을 닫으면 가방 속에 넣고 다닐 수 있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가방 속 텀블러... 시작은 '환경보호'

'가방 속 텀블러'가 자연스러워진 배경에는 정부의 환경보호 정책이 있었다. 지난 2002년 환경부는 '1회용품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무젓가락과 비닐봉지·종이컵 등 1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폐기물을 줄여 대기와 토양 등의 파괴를 막고, 쓰레기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때 카페·레스토랑 등 많은 대형 외식업체들이 환경부의 정책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TV에서 손수건·개인 컵 휴대를 장려하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오는 한편,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들은 사용한 종이컵을 되가져오면 컵 값을 환불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외식업계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종이컵 값을 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 카페의 서비스는 개인 컵을 준비한 손님에게 음료를 할인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현재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300원 안팎의 '텀블러 고객 할인'을 제공한다. 또 매장의 한쪽에 브랜드 로고가 박힌 텀블러를 진열해두고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 덕에 텀블러 이용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 브랜드 매장에서 제공한 '텀블러 고객 할인'은 총 131만9802회로, 이는 전년도 대비 25%가량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할인 쿠폰' '기념품' '이미지'... 텀블러의 진화

"저에게는 텀블러가 여행 기념품이에요."

한 프렌차이즈 카페가 내놓은 텀블러를 18개 정도 모았다는 대학원생 박아무개(25·여)씨의 말이다. 그녀가 모은 텀블러는 대부분 해외여행 중 사온 것으로, 각국의 해당 카페 지점에서 한정으로 판매하는 '도시 텀블러'다. 런던·베를린 등 각국의 대표 도시를 상징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 텀블러는 해당 국가에서만 판매한다. 말 그대로 '기념품'인 셈이다.

소장용 텀블러 대학원생 박아무개씨가 모은 한정판 텀블러의 일부다. 그녀는 이외에도 다양한 '도시 텀블러'를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이 텀블러들은 여행 기념품이다.
소장용 텀블러대학원생 박아무개씨가 모은 한정판 텀블러의 일부다. 그녀는 이외에도 다양한 '도시 텀블러'를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이 텀블러들은 여행 기념품이다.유정아

박씨는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데, 예전에는 도시 그림이 있는 냉장고 자석을 모았다"며 "그런데 도시 한정 텀블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은 실용적이고 튼튼한 것을 쓰고, 이 텀블러들은 기념품으로 두고 보관한다"고 덧붙였다.

애초에 텀블러가 보편적인 휴대품으로 쉽게 자리잡게 된 원인은 실용성과 환경친화적 특성 에 있었다. 그러나 구입처와 가격대가 다양해지면서, 텀블러는 단순한 컵 이상의 의미를 가진, 개성을 표현하는 소지품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디자인의 텀블러를 판매하기로 유명한 A 카페의 경우, 제품 자체의 가격은 비싼 편이다. 355ml 용량의 플라스틱 텀블러가 대개 1만5000원에서 1만6000원 대에서 판매된다. 같은 재질과 용량의 텀블러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6000원 대, 마트에서는 1만 원 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다.

그럼에도 한정판 텀블러를 제작하는 등의 마케팅 덕분에 인기는 좋은 편이다. 박씨처럼 이 브랜드의 텀블러를 수집하는 마니아도 생겼다. 판매가 완료된 한정판 텀블러는 인터넷 중고거래 누리집에서 2~3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A카페 본사의 한 관계자는 "계절·장소별로 한정판 텀블러를 계속 제작한다"며 "올 3월에 내놨던 한정판 텀블러(1만6000원)의 경우, 하루 만에 모두 판매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같지만 다른 두 텀블러 왼쪽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텀블러, 오른쪽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다. 용량과 재질이 비슷하지만, 가격은 9900원과 15000원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구매자들은 각자의 소비 패턴과 취향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같지만 다른 두 텀블러왼쪽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텀블러, 오른쪽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다. 용량과 재질이 비슷하지만, 가격은 9900원과 15000원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구매자들은 각자의 소비 패턴과 취향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유정아

한편, 음료 할인 등의 실질적 혜택을 생각해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인 김정은(26·여)씨는 "카페 텀블러 가격이 비싸 보이지만, 한 브랜드의 카페를 자주 가는 사람에게는 이것저것 계산하면 이익"이라며 "(텀블러를 사면) 무료 음료 쿠폰을 주고, 텀블러를 쓸 때마다 음료를 할인해주니 오래 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디자인이나 브랜드 같은 부가적 가치보다는 제품 고유의 가치인 실용성에 방점을 두는 사람들도 여전히 적지 않았다.

B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를 선물받아 사용한다는 곽하나(26·여)씨는 "제품 자체의 성능에는 만족한다"면서도 "직접 살 일이 있을 때 마트에서 같은 성능의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면 그것(마트 제품)을 살 것 같다"고 답했다. 곽씨는 사람들이 비싼 프랜차이즈 카페의 텀블러를 쓰는 이유를 두고 "유명 브랜드의 면 티셔츠를 비싸게 사는 것과 같지 않겠느냐"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매하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마트에서 8000원 대의 저렴한 텀블러를 구매해 사용한다는 대학생 박다영(26·여)씨는 "제품을 살 때는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는 가격대비 성능이 떨어져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씨는 "예전에 C 브랜드의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를 쓴 적이 있는데, 비싸게 샀지만 금방 망가지고 성능도 좋지 않았다"며 "지금 쓰는 제품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실용적인 제품을 골라 구매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1회용품을 대체할 실용적인 제품으로 권해졌던 텀블러. 단순히 '개인용 컵'으로 시작했지만, 보편적인 소지품으로 발전한 지금은 각자의 소비 방식과 기준에 따라 모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에게는 진열해 두고 보는 기념품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실용적인 선물이거나 할인의 도구가 된다.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고를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누구도 판단을 할 수 없는 문제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한, 텀블러의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유정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8기 인턴기자입니다.
#텀블러 #머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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