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사람의 영혼을 마비시킨다

[박도 장편소설 <어떤 약속>](66) #18. 아메리칸 드림(1) ①

등록 2013.10.20 11:02수정 2013.1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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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약속> 지금까지 줄거리
이 작품의 화자 박상민은 2007년 2월 하순,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했다. 어느 날 그는 한 인민군 포로가 미군 포로신문관 앞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진을 찾고는 그 포로가 매우 어린데 놀랐다. 박상민은 그 순간 어린 시절 자기 고향 구미에 흘러온 인민군 포로 김준기 아저씨가 떠올랐다.

남주인공 김준기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평북 영변군 용문중학생으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했다. 여주인공 최순희는 서울 적십자간호학교 학생으로 인민군 서울 입성 후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들은 낙동강 다부동전선에서 위생병 사수 조수로 만났다.

그들은 1950년 8월 하순부터 유엔군 총공세로 날마다 다부동 유학산 일대에 쏟아 붓는 미군 B-29 폭격기의 폭탄 세례를 견디지 못해 최순희는 조수 김준기에게 전선을 탈출하자고 꼬드겼다. 두 사람은 한밤중에 전선을 탈출하여 낙동강을 건넜다. 그들은 구미 형곡동 한 기와집에서 숨어 지내면서 서로 정을 통했다. 최순희는 탈출 중 헤어질 것을 대비하여 김준기에게 전쟁이 끝난 뒤 8월 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후 탈출 도중 김준기는 유엔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갔다. 그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휴전을 앞두고 남이냐 북이냐를 결정 순간을 앞두고 어머니냐, 순희냐의 선택에 몹시 갈등을 느꼈다. 그는 포로송환을 묻는 기표소에서 먼저 떠오른 얼굴에 따라 'S'(South, 남)와 'N(North, 북)'을 택하기로 작정했다. 준기는 기표소에서 순희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마침내 'S' 쓰고 반공포로로 남녘에 남았다.

1953년 6월 18일 새벽 2시, 김준기는 포로수용소에서 천만 뜻밖에도 헌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수용소 철조망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런데 준기는 그렇게 그리던 바깥세상에 나왔건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는 포로 석방 일주일 뒤 국군에 입대했다.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약속한 날 대한문에 갔으나 끝내 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준기는 강원도 화천의 한 국군부대 의무실에서 복무한 뒤 제대하고는 곧장 본격으로 순희를 찾아 나섰다.

그는 순희와 첫 정사를 나눈 구미 형곡동을 찾아갔으니 그의 행적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정착하여 가축병원 수의사 조수로 근무하다가 대전의 한 대학 부속가축병원으로 옮긴 뒤 결혼하여 딸까지 뒀지만 파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대전을 떠나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왔다.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지게 일을 하다가 군복무 때 군의관을 만나 인천의 한 병원에서 사무장으로 지냈다. 그런 가운데 준기는 지난 20년 동안 해마다 8월 15일이면 순희와 약속한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 찾아갔다. 이 사연이 한 신문의 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

한편 순희는 준기와 추풍령에서 헤어진 뒤 홀로 북상하다가 신탄진 금강 검문소에서 헌병들에게 붙잡혀 겁탈당하기 직전 탈출하여 금강철교에서 뛰어내린 뒤 서울로 북상한다.

a  유엔군들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한강 도하작전을 펼치고 있다(1950. 9.).

유엔군들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한강 도하작전을 펼치고 있다(1950. 9.). ⓒ NARA, 눈빛출판사


#18. 아메리칸 드림(1)

초상집


순희는 금강을 건넌 다음, 줄곧 북상했다. 아침해가 솟을 무렵에 이른 곳은 매포란 곳이었다. 순희는 거기서부터는 걷다가 지치면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날이 저물면 민가를 찾아 새우잠을 자며 계속 서울로 갔다. 순희가 추풍령을 떠난 지 이 주만인 10월 9일 새벽에 영등포에 도착했다. 하지만 노량진 나루는 검문이 몹시 심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침 순희는 그해 봄 봉은사로 소풍을 갔던 뚝섬나루가 떠올랐다. 순희는 그날 아침 노량진을 거쳐 동작동으로, 다시 반포로 간 뒤 압구정으로 거기서 봉은사로 걸어 갔다. 순희는 어머니가 평소 잘 아는 봉은사 스님을 통해 뚝섬나루 뱃사공을 소개를 받았다. 순희는 그 뱃사공에게 금가락지를 뇌물로 건넨 다음 그날 한밤중에 한강을 건넜다.

순희가 뚝섬에서 걸어 이튿날 새벽 원서동 집에 도착하자 집안은 적막강산이었다. 식구들은 죄다 순희를 잡고 소리없이 울었다. 순희 아버지 최두칠은 인공치하 서울에서 붉은 완장을 두르다가 9 . 28 수복이되자 부역자로 수배대상인물이 되었다. 그는 며칠 동안 안방 다락에서 숨어 지내다가 열흘 만에 우익 청년단원들에게 끌려갔다. 그는 그 길로 미아리 산골짜기로 가서 처형됐다. 이튿날 어머니는 수소문하여 가까스로 미아리골짜기에서 처형된 남편의 시신을 찾아 가까운 공동묘지에다 장사지냈다. 순희가 도착하기 전날이었다.

순희 어머니는 자기네 가족들이 좌익으로 찍힌 이상 아무래도 그 동네에 살 수 없어 동생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려다가 순희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순희가 도착한 그날 아침, 가족과 함께 미아리 골짜기 아버지 산소에 가 삼우제를 드린 다음, 그날 밤 순희 가족은 야반도주로 원서동을 떠났다.

순희네는 그동안 원서동에서 사글세로 살았기에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그들은 임시로 청계천변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순희 어머니는 날마다 왕십리나 뚝섬, 한강 건너 잠실이나 천호동 등지에서 곡식이나 채소를 떼다가 서울시민들에게 넘기면서 약간의 이문을 붙이거나, 아니면 빨랫감들을 모아 그걸 머리에다 이고 뚝섬에 가서 빨아주는 품삯으로 식구들이 근근이 살아갔다.


a  한국의 아낙네가 유엔군들의 옷을 세탁하여 산에서 건조시킨 뒤 걷어오고 있다(1954. 3. 3.).

한국의 아낙네가 유엔군들의 옷을 세탁하여 산에서 건조시킨 뒤 걷어오고 있다(1954. 3. 3.). ⓒ NARA


1·4 후퇴

1950년 12월 31일 오후 5시, 중국군 6개 군단이 전 전선에서 서울을 목표로 공격해 왔다. 정부는 이미 그 일주일 전인 12월 24일 서울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80만이 넘는 서울시민들은 꽁꽁 언 한강을 그대로 또는 부교를 이용하여 건넜다. 지난 여름 서울 잔류로 혼이 난 서울시민들은 대부분 강추위 속에 피난을 떠났다. 1951년 1월 4일 중국군이 서울에 입성하자 서울은 거의 무인지경으로 유령의 도시처럼 변해 있었다.


1951년 1·4 후퇴 때 순희네는 멀리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부산 피난지에서 순희네는 미군부대 옆 판자집에서 미군들의 빨랫감을 세탁해 주며 살았다. 1951년 3월 15일 서울이 수복된 뒤, 그해 여름 순희네는 부산 피난지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순희 어머니는 의정부 곧은 골 미군부대에 세탁 일감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거기로 이사를 갔다. 순희네는 의정부 곧은 골 미 제2사단 부대 옆의 무허가 판잣집을 얻어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세탁물로 생계를 이어갔다.

순희 어머니는 세탁만으로는 네 식구 입에 풀칠도 힘 들자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세탁물 속에 피엑스 물품까지 숨겨 받아다가 의정부 양키시장이나 서울 남대문, 동대문시장 내 외제물건을 몰래 거래하는 도깨비사장에 넘기기도 했다.  그 수입이 세탁수입보다 더 짭짤했다. 순희는 전란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복교하여 적십자간호학교를 졸업하여 마침내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 무렵은 간호사 취업도 어려워 순희는 어머니의 일을 돕다가 미군부대 한국인 노무책임자 방한용의 도움으로 미 제2사단 의무실에 간호사로 취업했다. 순희가 받는 미 제2사단 의무실 봉급도 괜찮았지만 간호사 신분으로 미군 피엑스를 드나들며 미제 물건을 빼내 상인들에게 넘기는 부수입이 더 많았다. 순희는 차츰 돈맛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순희네는 곧은 골 무허가 판잣집에서 벗어나 의정부 역 앞에 단독주택을 마련하였다. 순희 어머니의 세탁과 순희의 간호사 월급, 그리고 피엑스 물건 판매 가외수입 등으로 동생들은 모두 제때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a  한국의 여인들이 미군부대 근처 천막에서 미군들의 세탁물을 빨래하고 있다(1954. 3. 3.).

한국의 여인들이 미군부대 근처 천막에서 미군들의 세탁물을 빨래하고 있다(1954. 3. 3.). ⓒ NARA, 눈빛출판사


피엑스

돈은 사람의 영혼을 마비시켰다. 순희가 피엑스에서 빼내는 물건의 양은 점차 커갔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가족부양의 일차적 책임감이 대체로 여자에게 더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희는 한때 조국해방전쟁 전사라기보다 가족들의 호구지책에 목맨 악착같은 생활인으로 변했다.

이따금 순희는 준기와 한 약속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순희는 하루하루 사는 일이 전투를 치루는 것처럼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휴전 후 대부분 포로들이 북으로 돌아갔기에 이북 출신인 준기는 그의 부모가 사는 고향에 당연히 돌아갔을 것으로 여겼다. 준기가 자기 입으로 고향에서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여러번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순희는 정전협정 체결로 전쟁이 끝난 뒤 해마다 8월 15일이 되어도 아예 덕수궁을 찾지 않았다. 순희는 자기 입으로 준기에게 한 약속조차도 애써 잊으려 했고, 그 언제부터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 무렵 순희는 한때 자신이 인민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사실과 아버지가 전쟁 중 붉은 완장을 두르고 부역했다가 미아리 골짜기에서 처형된 그런 일들을 깡그리 지우고 싶었다. 그래야 그들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국' '해방' '통일' 이런 낱말을 말하기도, 듣기조차도 싫어했다. 순희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피증이 극단으로 심했다. 순희는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와 아버지의 전력을 모두 꽁꽁 숨기도 싶었다.

그 시절 순희는 그렇게 변신했기에 설사 준기가 남쪽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다시 만나는 일은 순희 쪽에서 기피했을 것이다. 순희는 준기와 가졌던 정사조차도 한때 철없던 시절의 풋사랑이요, 그가 위험한 사지에서 살아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덮어버렸다.

환경은 사람을 변모시켰다. 그게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처세였다. 순희도 그런 예사 사람이었다. 그래야 몸뚱이밖에 없는 그들 가족은 그 시절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a  의정부 미제2사단,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2013. 8. 25.).

의정부 미제2사단,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다(2013. 8. 25.). ⓒ 박도


데이비드

어느 하루 퇴근길에 순희는 예사 때처럼 외투 속에 미제 피엑스물건을 잔뜩 감춘 채 귀가했다. 거기에는 양담배, 껌, 루주, 크림, 시계, 라이터 돌 등, 별별 게 다 숨겨져 있었다. 순희는 동네 어귀에서 그의 뒤를 계속 쫓던 외래품 단속 경찰에게 연행되어 의정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순희는 자신이 미제2사단 의무실 간호사라고 신분을 밝혀도 경찰은 그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순희는 미제 물건을 신체 곳곳에 잔뜩 소지한 현행범이기에 풀려날 수 없었다. 순희가 사흘이나 유치장에서 갇혀 의무실에 출근치 못하자 미 제2사단 피엑스 담당 데이비드(David)라는 미군 상사가 경찰서로 찾아왔다.

그는 경찰서장을 만나 순희는 자기 부대 간호사로, 그날 순희가 소지한 물건은 자기가 순희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둘러대면서 강력히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서장은 데이비드 상사의 진술이 빤한 거짓인 줄 알면서도 순희를 그 자리에서 풀어주도록 지시했다.

그 무렵 한국 군인과 경찰들은 미군에게는 꼼짝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창한 명분은 그만두고라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휘발유로 그들 차량을 대부분 운행하였으며, 피엑스 단속 물품이 그들의 돈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순희는 데이비드와 매우 가깝게 되었다. 이따금 데이비드는 순희의 퇴근길에 지프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럴 때마다 지프차 안에는 미제 피엑스 물건이 가득 실려 있었다.

a  한국전쟁 무렵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1951. 8. 20.)

한국전쟁 무렵 서울 청계천변 판자촌(1951. 8. 20.) ⓒ NARA, 눈빛출판사


(*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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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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