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왜 도망가지? 부끄러운가봐"

[하부지의 육아일기⑪] 하은이에게도 가을이 왔어요

등록 2013.09.17 11:05수정 2013.09.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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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여인 하은이는 가을이 되지 생기가 넘친다. 놀이터에서, 푸른 길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닌다. ⓒ 문운주


가을 하늘이  파랗게 익어간다. 하얀 구름은 몽실몽실 떠 있다. 실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고 코스모스가 빨간 꽃잎을 내민다.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던 잠자리가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소나무는 구름을 뚫을 듯 솟아오른다. 답답하기만 하던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지난 13일 오후, 손녀딸 하은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손을 잡고 이끈다. 갈 곳이라고는 마트나 도서관·놀이터 등이다. 그런데 오늘은 색다르다. 어렸을 때 유모차 타고 시간을 보내던 푸른 길이다. 무더위 때문에 여름내내 방에만 박혀 있었다. 그런데 하은이도 가을을 느끼는 모양이다.

중부지방과는 달리 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피서랍시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워지는 것은 어릴 적에 뛰어놀던 고향 마을이요, 소꿉쟁이 친구들이다. 당시에는 여름방학 과제로 곤충과 식물채집이 필수였다.

곤충 채집은 잊을 수 없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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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나비 이꽃 저꽃 옮겨다니는모습이 하은이와 술래잡기 하는 것 같다. ⓒ 문운주


고향의 마을 숲에는 다양한 곤충이 서식했다. 참매미, 쓰름매미, 애매미, 물잠자리, 실잠자리, 고추잠자리 등을 장대로 만든 채집기로 잡곤 했다. <좀머씨 이야기>에서처럼 자연은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 시절은 어른이 된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우리 하은이도 좋은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푸른 길 산책


푸른 길은 폐선 철도 부지를 광주 시민들의 힘으로 가꾼 도심 속의 숲이다. 이곳에서는 산책, 자전거길, 운동시설, 휴식 공간 등 다양한 놀이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봄에는 연록색의 이파리들이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과 휴식공간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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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 하은이가 쫓아가면 날아가고, 쫓아가면 또 날아간다. ⓒ 문운주


"잠자리가 왜 도망가지? 부끄러운가봐."

고추잠자리를 뒤 쫒던 하은이가 하는 말이다. 잠자리가 빨갛게 나무 끝에 앉아 있다가 쫓아가면 날아가고, 또 쫓아가면 날아간다. 호랑나비, 노랑나비, 하얀나비 색색이 날아다닌다.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잠자리 등과 어우러져 뛰어 논다.  어린 시절의 고향 숲에서 놀던 착각에 빠져들었다.

가을의 꽃,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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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꽃 가을의 꽃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 문운주


길가에는 도시텃밭을 만들어 여러 가지 채소들을 가꾸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들깨, 무, 배추 등을 심어 놓고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무척 여유롭다. 코스모스 꽃이 수줍은 듯 다리를 꼰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가냘프다. 하은이가 꽃 속에 들어갔다. 하은이는 꽃이 되고 나비가 됐다.

요즈음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하는 한 기자는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알파벳을 가르쳐 주면서 국내언론은 다 거짓말이니까 진실을 알려면 영어를 배워라고 했다"고 했단다. 용기를 내 SNS에 올린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분도 있다.

잠자리도 부끄러워하는데….
#유하은 #하부지의 육아일기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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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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