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 모음 낱자 카드가 너무 많다.한번 쓰고 버릴 쓰레기로 주지 말고 좋은 질감으로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교구'로 만들어서 교사에게 제공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희정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의 대체적인 흐름은 낱자에서 낱말, 낱말에서 문장, 문장에서 일기 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 국어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서의 말하기와 듣기, 우리말 읽기 교육과 쓰기 교육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런 단선적이고 위계적인 흐름이 얼마나 '교과서적'인지 알 수 있다.
언어의 통합성을 고려하여 기능별로 분책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교과서를 구성해 놓았으면서도 여전히 언어를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례이다. 아이들 가운데 자기 이름은 쓰고 글도 읽지만 자음과 모음을 통한 낱자의 구성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긴 이야기를 줄줄 이야기하지만 한 문장도 못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음·모음에서 낱자, 낱말, 문장, 단락, 글과 같은 형태로 학습하지 않으며, 낱말을 읽는다고 낱자의 구성원리를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낱말을 쓴다고 바로 문장을 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문장은 쓰지만 낱자가 틀리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맞게 쓰지만 어떤 낱말은 틀리게 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교과서를 이렇게 단선적으로 구성한 것은 아마도 어쩔 수 없는 방편적인 구성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너무나 소박하고 피상적인 관찰에 근거한 것이며, 어린이의 발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면 어떨까?
아이들이 낱자 학습을 좋아하나, 이야기를 좋아하나. 자음·모음을 배우는 것을 지루해하나, 이야기 듣는 것을 지루해하나. 답은 너무나 뻔하다. 아이들은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사고하며, 분석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스턴은 감옥에 갇혀서 물잔이 놓인 식탁에 앉아 있는 죄수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나 3~4세 어린이는 사람, 의자, 책상, 물잔과 같이 낱말로 답을 했고, 9~10세의 어린이는 '죄수가 감옥에서 물잔이 있는 식탁 앞에 앉아 있어요'라고 답을 했다.
이에 대해 스턴은 어린이의 지각은 분석적인 것(낱말 수준)에서 통합적인 것(문장 수준)으로 발달한다고 해석을 했다. 이에 대해 비고츠키는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그것을 '말 뿐 아니라 동작이나 그림'으로도 설명해보게 했다. 그랬더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어린이의 지각은 통합적인 것에서 분석적인 것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스턴의 실험은 아이들의 언어 능력을 측정한 것이지 지각능력을 측정한 실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턴과 같은 오류가 국어교과서의 내용 구성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문장을 분석하고, 낱말을 분석하고, 낱자를 분석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기능이다. 물론 그런 분석 과정은 다시 새로운 차원에서 통합되겠지만 1학년 아이들이 그것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낱자를 이해했다고 모든 낱말을 바로 적을 수도 없다. 물론 학습이 발달을 선도할 수 있다는 이해를 갖고 분석 기능 발달을 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구성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교사용 지도서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